연세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한 김동길(金東吉)의 <대통령의 웃음> 제2장 ‘한평생을 웃음으로’의 고려장 노모의 아들 생각에 이렇게 실려있다.
‘옛날에 고려장이라는 악습이 있었다. 늙고 병든 사람을 산 채로 업어다 구덩이에 두어 죽으면 그대로 묻어버리는 고약한 풍습이었다(70쪽, 1979년 정우사). 또한 초등학교 국어 3학년 1학기 <읽기>교과서에 게재된 둘째마당 ‘마음으로 보아요’의 ‘소년과 어머니‘내용 중 ’옛날 부모가 늙으면 산에 버려야 하는 풍습이 있었다’는 데 대하여 고려장은 문학의 한 장르인 극본의 구성을 위해 ‘전해오는 고려장의 이야기를 빌려 쓴 것’일 뿐 역사적 사실로 묘사한 내용은 아니라고 하였다(교학사 교재부 과장 이충화, 한겨레신문 2004.11.15 17면)
위의 글을 보통사람들이 읽어보면 고려장을 역사적 사실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고려장의 전래이야기를 빌려 썼다고 하였으니 역사적 사실처럼 인정하기 십상이다.
참외 밭길을 걸어 갈 때에는 신발을 고쳐 신지 않고(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오얏나무 아래를 걸어갈 때에는 손을 들어 갓을 바로 쓰지 말라(이하부정관李下不正冠 「明心寶鑑」正己편)는 강태공의 말처럼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의심을 살 만한 것이다.
즉 전해오는 고려장의 이야기를 빌려 쓴 것이라면 삼국시대나 고려조의 사회가 늙거나 병든 노인을 내다 버린 유기(遺棄)의 잔인한 패륜의 악습이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국어사전에 고려장은 ‘고구려 때에 늙어서 쇠약한 이를 산 채로 묘실(墓室)에 옮겨 두었다가 죽은 뒤에 그 곳에 장사 지내던 풍습’이라고 풀이하였으나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제2대 유리왕28년(서기 9년) 3월에 왕태자 해명(解明)이 부왕으로부터 효도를 모르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고 21살 때에 자결을 하였고 제9대 고국천왕16년(194) 10월에는 늙고 병들고 궁핍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자는 국가에서 구호하였다는 사실로 보아 국어사전에 실린 고구려에서 고려장을 지내던 풍습이 있었다는 것은 미끼지 않으므로 설화라고 표기하여야 한다.
고려조에서는 노인을 국가에서 공경하여 주었지 늙은 사람을 상대로 내버리고 돌보지 않는 유기(遺棄)는 하지 않았다. 즉, 「고려사」고려 성종9년(990) 10월부터 인종4년(1126) 윤 11월까지 136년 동안 15회<현종 즉위년(1009) 7월 辛巳일, 동왕 13년(1022) 9월 己巳일, 정종 원년(1035) 4월 甲寅일, 문종11년(1057) 7월 甲午일, 동왕13년(1059) 8월 癸酉일, 선종2년(1085) 7월 壬寅일, 동왕17년(1090) 10월 甲寅일, 헌종 즉위년(1094)11월 壬子일, 숙종 즉위년 11월 癸酉일, 예종3년(1108)2월 辛卯일, 동왕5년(1110) 10월 壬子일, 동왕8년(1113) 4월 己亥일, 동왕11년(1116) 4월 辛卯일>에 걸쳐 80세 이상 노인을 초청하여 궁궐에서 향연을 베풀고 비단도 나눠주는 경로잔치를 베풀었다(「고려사」 세가)고 기록으로 나오는데 어떻게 노인을 고려장 시켰단 말인가!
다만 송(宋)나라 서긍(徐兢 1091-1153)이 고려의 사신으로 왔다가 돌아가서 지은 <고려도경(高麗圖經)> 잡속(雜俗)1에 의하면 부모라 할지라도 병이 들면 보살피거나 약을 쓰지 않는다(疾病雖至親不視藥至) 하였는데 이것이 와전 되지 않았나 보여진다.
고려말기에 추성 량절 동덕 협의 찬화공신(推誠亮節同德協義贊化功臣) 벽상 삼한 삼중대광( 壁上三韓三重大匡)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영 예문춘추관사(領 藝文春秋館事) 문충공(文忠公)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 81세졸)이 60세 때 지은<효행록(孝行錄)>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연로한 부친을 유기 하고자 시도한 사건이 미수에 그친 사례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중국 고대에 원각(元覺)이란 15세 소년이 아버지 원오(元悟)의 지시로 90세 된 할아버지를 광주리에 담아 지게에 지워가지고 깊은 산속에 갖다 버리라고 하여 산속에 버리고 지고 갔던 지게와 광주리는 도로 지고 돌아오니 이를 본 아버지는 화를 내면서 “그까짓것을 무어라고 가지고 온단 말이냐 그것도 산에 갖다 버리라”고 하여 아들 원각(元覺)이 말하기를 “이 다음날에 다시 아버지가 늙으면 갖다 버릴게 아닙니까?” 하니 아버지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산속에 가서 할아버지를 모셔다가 정성껏 봉양했다고 한다<1947년 손진태(孫晋泰)가 지은 「조선민속설화의 연구」에 실린 중국의 효자전(孝子傳) 에는 할아버지 대신 할머니(老母)로 표기됨, 04.11.11 한겨레 게재 김수문 삼척여중교사 ‘고려장은 없었다’에서 인용>.
「고려도경」에 의하면 고려 왕족이나 귀족이 죽으면 염(殮)은 하여도 관(棺)은 쓰지 않았다가(死殮不拊棺雖王與貴冑亦然 「고려도경」 잡속1>고려 희종(1204-1211)때부터 사대부 이상은 남송(南宋)때 주희(朱熹, 1130-1200, 2, 71세졸)가 지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거 석실을 조성하여 관곽(棺槨, 겉관과 속관)을 쓰고 3개월장을 하였다가 「태종실록」 태종6년(1406) 윤7월28일부터 사대부 이상은 고려풍습인 석실을 쓰지 못하도록 금지 하였다.
이를 살펴볼 때 고려의 사대부(士大夫, 종4품, 중대부부터 종1품 숭록대부)이상은 생전에 석실을 조성한 후(수묘壽墓, 살아 있을 때 만들어 놓은 묘소) 죽으면 장례지냈기 때문에 후하게 장례치른다는 뜻의 후장(厚葬)인 고려장이란 말이 등장한 것으로 늙고 병든 사람을 산채로 묘실(墓室)에 유기하여 죽어 그 곳에서 매장하는 풍습은 설화로 널리 사람의 입에 회자(膾炙)된 것이지 실재로 있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고대의 매장법에는 와관장, 옹관장, 전축장, 즐주장, 석관장 등이 있어 고려의 일반서민은 석실을 쓸 수 없고 사대부 이상은 석실을 조성할 수 있으므로 이를 일컬어 생시에 쓰던 생필품을 부장으로 묻는 고려장이란 용어가 어느 시기에 사용한 듯 여겨진다.
위와같은 전거에 의거 전염병으로 인하여 환자를 격리 수용하기 위하여 움집에 두고 보살피지 아니하였는지는 몰라도 늙은 사람을 구덩이에 넣었다가 죽으면 고려의 풍습대로 장례지냈다는 고려장은 없었다고 2004년 11월 11일 한겨레신문 21면 ‘왜냐면’에 삼척여자중학교 교사 김수문씨가 게재한 내용에 동감한다.
다만, 유명대학의 부총장까지 지낸 지식 엘리트라는 분이 역사적 문헌을 밝혀내지 못하면서 늙고 병든 사람을 유기하여 죽으면 매장하는 고약한 풍습인 고려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들여준 이야기로 썼다고 하나 일반 대중이 이 글을 읽고 설마 지성인이 쓴 글에 거짓말을 할 쏘냐하고 굴뚝같이 굳게 믿고 고려장을 역사적 사실로 인식시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이를 인용하여 ‘부모가 늙으면 산에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실려지지 않았나 추정해 본다.
2022년 11월 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