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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포은 정몽주선생 묘 답산기(踏山記)
작성자 송촌산인 작성일 2018-05-26 오전 11:29:49  (조회 :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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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은선생 묘 길라잡이
용인 죽전전철역에서 43번국도 포은대로를 따라 동쪽으로 죽전교차로를 지나 대치고개를 넘어 달리다가 능원천과 오산천이 합수하는 곳의 능원교를 통과 후 동림나들목에서 좌회전하여 57번국도 오포로를 따라 가다가 능평교다리에서 능원리 방향의 포은묘 입구 포은교에 도착하니 죽전에서 약 11Km거리이다.
포은교 난간석 오른쪽에 자연석 받침돌위에 자연석을 세워 포은선생의 단심가(丹心歌) 시조비를 1986년 5월에 세웠으니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 시비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쓰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한자와 한글로 음각하였으니 곧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此身死了死了一百番更死了 白骨爲塵土魂魄有也無 向主一片丹心-)고 쓴 시비를 둘러보고 포은교다리를 건너 능곡로 안골의 한국등잔박물관(1997. 9. 28 개관) 방향 못미쳐서 왼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길 왼쪽편에 영모재가 있고 조금더 올라가면 오른쪽 산기슭에 저헌(樗軒) 연안이씨 판중추부사 연성부원군 이석형(李石亨 1415-1477)과 부인 포은선생의 증손녀이고 손자 정보(鄭保)와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3남 6녀중 3째딸과의 합장묘(경기도기념물 제171호)가 있다.
저헌선생 묘소를 지나 문수산(文秀山 211.2m) 자락의 서북향 진좌술향(辰坐戌向, 서쪽에서 북쪽으로 30도 방향)으로 포은선생과 부인 경주이씨의 합장묘가 있으니 포은교에서 500m남짓 거리이다.
 
2. 포은선생 묘 조성
경기도 해풍군(현 개풍군)에 장사 지냈던 것을 태종6년(1406) 3월 용인 모현촌<신도비 음기에 나옴, 현 모현면 능원리 능곡로 45(산3번지)> 문수산(文秀山) 자락에서 진손방(辰巽方)으로 입수(入首)하여 서북방향 진좌술향(辰坐戌向)으로 이장하여 부인 경주이씨와 합장하였다.
모현촌은 원래 쇄포촌(灑布村) 이었던 것을 포은 선생묘를 이장한 후 어질 현(賢)자와 사모할 모(慕)자의 합성어 어진 현인을 사모한다는 마을이란 뜻의 모현촌(慕賢村)으로 고치었다가 1914년 일제강점기 때 마을 촌(村)자를 빼고 모현으로 고친 것으로 보인다.
숙종25년(1699)에 신도비(길이 236cm, 폭 90cm, 두께 40cm)를 세우고 비각을 1980년에 세웠는데 조선조에서 내려준 벼슬과 시호를 배제하고 고려 수문하시중 익양군 충의백 포은선생(高麗 守門下侍中 益陽君 忠義伯 圃隱先生)이라고 영의정 겸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관상감사 김수항(金壽恒 1629-1689)이 전서(篆書)로 썼다.
묘 전면에 석상 2기와 묘 우측에 중종12년(1517)에 세운(묘에서 내려다 볼 때) 묘표석(높이 153cm, 폭 61cm, 두께 17cm) 전면에 고려수문하시중정몽주지묘(高麗守門下侍中鄭夢周之墓)라고 해서체로 새기고 좌우에 문인석 2기만 있었던 것을 1971년 8월 구석상을 교체하고 사대석(둘레석, 병풍석), 난간석, 망주석, 문인석(신구 문인석 종행으로 세움), 석양, 장명등을 신설하였고 이듬해 경기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개성에서 영천 고향으로 이장하기 위하여 운구 하던 중 구성면 청덕리(현 기흥구 청덕동)에 와서 명정이 회오리 바람에 날려 모현촌 내곡리 문수산 기슭에 떨어져 현 위치에 모시게 되었다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한편 이석형의 부인 영일정씨가 용인에서 명당중의 하나라는 말을 듣고 밤에 몰래 광중에 물을 붓고 다음날 이를 본 산역군들의 난리가 나서 지금의 자리로 선정한 후 이석형(李石亨)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여 후손들이 불 일어나듯 출세하니 출가외인이라는 말이 전해졌다고 하나 이석형은 1477년에 졸(卒)하였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가. 문화재 지정 의아하다
2품이상 대신의 문인석 높이를 5자 5치<성종실록 성종5년(1474) 9월 19일조>로 규정하였는데 1971년 새로 세운 문인석은 구문인석보다 1자 정도 높게 만들었으며 장명등은 어둠을 밝히는 등불을 상징하여 왕릉에만 세우고 대신(大臣) 이상은 「세종실록」세종7년(1425) 6월 27일부터 세우지 못하게 금지 시켰는데 문중에서는 어떻게 조선조에서 내려준 벼슬과 시호도 마다하고 기피하면서 장명등을 세웠으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한 석양은 왕릉 곡담안에서 밖으로 향하여 설치하였는데 좌우 문인석앞에 서로 마주보게 세웠으니 남이 장에 갓을 쓰고 가니까 덩달아 할 일없이 따라가는 격이다. 석양은 암수구별이 없고 뿔이 양쪽으로 갈라지고 성질이 유순한 양과 비슷한 땅의 요사스런 괴물인 분양(墳羊)을 가리켜(「사기」공자세가) 광중을 팔 때 토신의 노여움을 사서 생기는 동티(동토, 빌미 수祟)의 재앙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것을 문인석앞에 잘못 세운 것으로 보인다.
위와같은 경우를 두고서 1972년 문화재지정심의 과정에서 경기도문화재위원회에서는 무엇을 보고서 지정하였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3. 포은선생 생애
영일(迎日, 현 포항) 정씨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 12-1392. 4, 56세) 선생의 부친 정운관(鄭云瓘)은 성균관 복응재생(成均館 服膺齋生)으로 일성부원군(日城府院君)에 추봉되고 어머니는 변한 국대부인(弁韓 國大夫人) 영천(永川) 이씨 사이에서 고려 충숙왕 복위 6년(1337) 12월 무자일(戊子)에 포항시 오천읍(烏川邑)에서 태어나 23세 때 공민왕 9년(1360) 10월 정몽주외 2명이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 동지밀직사, 정당문학, 예문관대제학을 거쳐 수문하시중에 이르렀다.
공양왕4년(1392) 3월 이성계의 5째아들 우부대언(右副代言) 이방원(李芳遠 1367. 5-1422. 5)이 이성계의 이복 아우 의안대군(義安大君) 양소공(襄昭公) 이화(和, 1348-1408. 10, 61세, 조선개국공신)의 사위 이제(濟)등과 함께 포은을 제거하여야 된다고 논의가 분분하더니 이성계가 황해도 해주에서 사냥하다가 말에서 낙마했다고(사실 여부 확인 불가) 공양왕이 연이어 중사(中使)를 보내어 안부를 물을 때 포은은 이때 가서 문병을 하지 않고 4월 4일에 문병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방원의 문객 풍양조씨 조영규(趙英珪 ?-1395. 1. 9), 한양조씨 조영무(趙英茂 ?-1414, 묘소 광주시 퇴촌면 광동리 산8)등 네다섯명이 선죽교(善竹橋) 다리 위에서 쳐 죽이고 저자거리에 머리를 효수하였다.
머리를 베어 장대에 달고 방문(榜文)을 붙였는데 그 방문에 ‘사실이 없는 일을 꾸며서 대간(臺諫)을 꾀어 대신(大臣)을 모해하고 국가를 요란시켰다(揭榜曰 飾虛事 誘臺諫 謀害大臣 擾亂國家 「고려사절요」공양왕조)’ 고 썼다. 그리고 가산을 적몰(籍沒, 중죄인의 자산을 몰수함)하였다.
이때 이방원의 나이가 26세이고 포은과는 30년 차이이다. 이는 분명히 조영규, 조영무 등은 암살범인데 처형하지 못하고 어떻게 효수까지 하는가! 또한 조영규와 조영무는 조선조에서 개국공신에 봉하고 예조전서와 우의정까지 각각 지낸 것을 보면 공양왕은 이성계 일파의 국정농단에 허수아비 왕이 되었고 포은 살해 후 3개월 13일이 지난 7월 17일 조선이 개국하였다.
「태종실록」 태종원년(1401) 11월 7일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를 증직하고 태종5년(1405)에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부사 수문전 대제학 감예문춘추관사 익양부원군(大匡輔國崇祿大夫 領議政府事 修文殿 大提學 監藝文春秋館事 益陽府院君)에 증직되고 시호를 문충(文忠)으로 내려주었다.
 
4. 산 형세
가. 백두대간
산 내맥(來脈)은 백두산(2,744m)에서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수천리를 넘어 내륙의 지리산(1,915m)까지 1,625km(남한690km)를 뻗어 한반도의 척추를 이루는 백두대간(白頭大幹)으로 형성된 두류산(2,309m), 함남 안변군 신고산면(新高山面)과 강원도 회양군 경계의 철령(鐵嶺 685m)에서 동남쪽으로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1,638m)으로 뻗어내렸다.
금강산에서 7개의 봉우리와 진부령(陳富嶺 529m)을 넘어 마산(1,052m), 신선봉(神仙峰 1,204m), 미시령(彌時嶺, 彌矢嶺이라고도 함), 마등령(馬等嶺 1,326.8m), 무내고개를 넘어 양양 설악산(1,708m)이 된다. 한계령(寒溪嶺 1,003.8m)에서 3개의 산과 5개의 봉우리를 거쳐 강릉 오대산(1,563m)이 된다. 오대산의 동대산(東臺山 1,434m)에서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대관령면 경계의 대관령(大關嶺 832m) 고개를 지나 동해시와 삼척시 경계의 청옥산(靑玉山 1,407m), 두타산(頭陀山 1,353m)에서 남쪽으로 함백산(含朴山 1,573m)에서 태백산(太白山)의 정상 장군봉(1,567m)이 된다. 태백산의 천재단에서 천왕산(1,560.6m), 무쇠봉(1,548m)를 거처 충북 단양 가곡면과 경북 영주 경계의 국망봉(國望峰 1420.8m), 풍기의 소백산(小白山) 비로봉(1,439.5m)이 된다.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 경계의 청화산(靑華山 988m)으로 뻗어내려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시 경계의 문장대(文藏臺 1,028m), 청법대(廳法臺 1,019m), 신선대(神仙臺 1,026m), 입석대(立石臺 1,012m), 비로봉(毘盧峰 1,030m)으로 이어져 굽어졌다가 우뚝 솟아나 속리산(俗離山)의 최고봉 천왕봉(天王峰 1,058m)이 백두대간으로 이어져 지리산에서 멈춘다.
 
나. 한남금북정맥
속리산(俗離山) 천왕봉(1,058m)에서 기이하게 빼어난 봉우리가 앞뒤에서 호응하여 용골을 바꾸어 용절마다 변화하며 동으로 가고 남으로 가다가 큰 돌 가운데서 서리고 몸을 뒤틀어 북서쪽으로 분기한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이 남한강 발원지와 금강 북쪽의 물줄기를 따라 머리를 남서쪽으로 돌리어 구룡치(九龍峙)와 수철령(水鐵嶺 554m)고개를 넘어 광대수산(631m)에서 서쪽으로 머리를 돌리어 구치(九峙), 시루산(464m), 구봉산(九峰山, 516m)에 이른다.
구봉산에서 신선들이 노닌다하는 선도산(仙到山, 547.2m)을 거쳐 청주 동쪽 상령산(上嶺山)에 이어진다. 산령산에서 거북이가 앉아있는 모양과 흡사하다고 이름 붙여진 좌귀산(座龜山 657m), 칠보산(七寶山 552m), 보광산(普光山 530m)이 되고 음성, 이천, 안성 3개 시군의 접경지를 이루는 마이산(馬耳山, 472m)에서 불끈 솟았다가 서쪽으로 향하여 안성 죽산(竹山)의 칠장산(七長山, 492m), 칠현산(七賢山, 516m) 연봉으로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이 된다.
다. 한남정맥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북서쪽으로 분기한 한남금북정맥의 칠장산에서 한줄기가 다시 북쪽으로 관해봉(457m)과 도덕산(366m)으로 내달리어 비봉산(飛鳳山, 372m)이 되며 구봉산(九峰山, 465m), 문수봉(文殊峰 404.2m), 쌍령산(雙嶺山, 512m), 시궁산(時宮山, 515m), 함박산(函朴山 349m), 부아산(負兒山, 403m), 석성산(石城山, 471m)으로 솟아나고 이 산이 바뀌고 변하여 경부고속도로 신갈분기점을 넘어 용인 서쪽 20리 지점에 있는 광교산(光敎山, 592m)이 우뚝 솟아 있다. 광교산 북쪽의 백운산(白雲山, 560m)에서 한줄기가 서쪽의 지지대 고개로 갈라져 한남정맥으로 내려간다.
이렇게 백두대간에서 한남금북정맥을 거쳐 한남정맥을 나열한 것은 풍수에서 수천리를 뻗어내린 산줄기에 수도가 들어서고 수백리에는 도청소재지가 들어서며 백여리에는 시군이, 수십리에는 읍면이 형성된다(陽基之龍 京都則數千里 省都則數百里 州邑則百餘里 市鎭鄕村亦必數十里)고 「탁옥부(琢玉斧)」논양기(論陽基)에 실려 있어 음택 명당도 동일시하게 취급하기에 서술한 것이다.
라. 석성 지맥
한남정맥의 석성산에서 북쪽으로 마성(馬城)고개 계곡을 지나 작고개와 백현고개를 넘어 선장산(禪長山 349.7m)으로 뻗어내려 한고개를 넘어서 두갈래로 갈라져 한줄기는 서북쪽으로 무푸레고개를 넘어 법화산(法華山 383m)에서 무등치고개를 넘어 용인천주교공원묘지로 내려가고 다른 한줄기는 에버랜드 북쪽에 위치한 백련사 뒷산으로 하여 457.7고지를 거쳐 366.4고지에서 서북쪽으로 짧게 뻗어내렸다가 서쪽으로 잠깐 꺾이고 다시 서북쪽으로 꺾어 242.4고지에서 안골고개를 넘어 혈처의 주산(主山)인 문수산에서 멈춘다.
 
5. 호승배불형국(胡僧拜佛形局) 이다
안수(案水)는 법화산에서 발원한 능원천이 혈처를 좌선수로 감싸 오산천에 합수되어 왕산리에서 경안천에 합류한다.
안산(案山)은 백호안산이고 조산(朝山)은 수미산(292.4m)이 되어 문수산이 문수보살(文殊菩薩)의 형상이 되어 지혜가 부처님 버금가는 고승이 불곡산(佛谷山 335.4m) 산줄기에 불교의 세계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높게 솟아 있다는 수미산을 바라보고 있는 형세로 스님이 부처님께 경배드리는 호승배불형국(胡僧拜佛形局)으로 간주되어 저승에서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의 상징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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