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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小花)데레사! 그 영원한 순결함이여!

글 | 김원율 안드레아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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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오늘은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학자 대축일’입니다. 제가 어릴 때 교리시간에 수녀님으로부터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의 하나가 소화(小花) 데레사 성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화라는 말은 데레사 성녀가 향기 짙은 장미나 백합이 아니라, 들판의 이름 모를 꽃 속에 있는 작은 꽃으로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었음을 뜻합니다. 수녀님께서는 성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순교를 하거나 위대한 성덕(聖德)을 이루어야만 성인(聖人)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 앞에 어린 아이처럼 자신을 맡기는 순결함’만으로도 훌륭한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에게 어린 아이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야말로 조상이 원죄를 짓기 이전 ‘에덴동산의 순결함’을 간직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영에 가장 가까운 선함을 지닌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수도회에서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와 같은 위대한 성녀는 태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장상이라는 수녀들은 돈에 관심을 쏟으면서 정치에 개입하여 온갖 구설수에 오르고 있으며 교구의 주교와 짝짜꿍이 되어 시국미사에 자원 봉사하는 것을 하느님에 대한 봉사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 대한 지극한 신심을 가진 수녀들은 따돌림과 핍박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수도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최근 수년 동안 단 한명의 지원자도 없는 수녀원이 상당수라고 합니다. 아마 신자 중에는 밀양 송전탑 건설 때 수녀님들이 구덩이 안에 들어가서 몸에 사슬을 묶고 격렬하게 저항하는 모습을 기억하는 분도 많을 겁니다.

참으로 순결함, 청빈, 순명을 지켜야 할 대한민국의 수도회가 어찌하여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눈앞이 캄캄합니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순결함을 생각하면서 제가 3년 전에 썼던 글 ‘교만과 허영’이라는 글을 아래에 첨부합니다.

교만과 허영 -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 -

교만과 허영이 지닌 위험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세상이 지닌 갖가지 유혹 중에서도 교만과 허영, 즉 자신이 이웃의 눈에 돋보이려는 욕망을 우리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교만과 허영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허영은 외적인 화려함이 있으나 교만은 내적인 화려함을 지향합니다. 영적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교만이 허영보다 훨씬 집요하고 교묘합니다. 따라서 허영보다 교만이 훨씬 다루기 어렵고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교만은 남의 결함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이 남보다 영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이에서 만족을 찾는 것입니다. 성직자도 이러한 유혹에서 자유스럽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도 영적인 교만에 빠진 사람들이 수없이 있습니다.

교만과 허영이 이웃사랑에 크게 반대된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교만한 자는 하느님의 기쁨과 너그러운 눈길을 찾지 않고, 그 대신 사람들의 눈길과 찬사에 신경을 씁니다. 이런 영혼은 하느님을 생각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대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합니다. 교만한 자는 즐겨 이웃의 결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가치를 좀 더 부각시키는 데서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오로지 가난한 영성만을 원했던 소화 데레사 성인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poor in spirit)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오로지 영적으로 가난하게 해주실 것을 하느님께 청하였고 그 표지로 모래알 영성을 지니셨습니다. 성녀는 해변 가에 쌓인 하찮은 모래처럼 사람들에게 밟히면서 잊혀져가기만을 주님께 청하였던 것입니다. 성인은 늘 잊혀지는 영성, 가난한 영성을 갖게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항시 두 가지를 하느님께 청하였습니다. 하나는 이웃으로부터 존경을 받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연약하고 작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의 것은 이웃 앞에 선 인간의 태도이고 둘째의 것은 하느님 앞에선 인간의 태도입니다.

이웃의 눈에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을 원치 않고 주위의 시선을 끌려고 애쓰지 않는 것은 곧 자신을 더욱 하느님의 현존 안에 살게 하고 그분 앞에서 자기가 작다는 것을 의식하게끔 이끕니다. 이웃으로부터 불완전하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기뻐한다는 것은 영적 가난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다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참된 영광이라는 것은 영원한 것이며, 이에 이르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눈부신 업적을 쌓는 것이 아니라, 숨어살며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듯이' 덕행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데레사 성인이 이를 깨닫도록 허락하신 것은 그녀의 나이가 열 살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참된 영광은 지상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나타납니다. 이를 깨달았음은 데레사 성인이 받은 은총 중 가장 큰 은총이었으며 이 은총은 그녀에게 참된 겸손의 덕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데레사 성인은 자신의 공덕에 의지하지 않고 성덕 자체이신 하느님께 의지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녀가 가진 겸손의 두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의 눈에 숨어 있고 싶다는 소망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도움없이는 연약하고 불완전하다는 자기인식입니다.

데레사 성인은 언제나 영원에 대한 큰 갈망, 영생에 비해 이 세상의 기쁨이나 칭찬 따위는 참으로 하잘 것 없다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이미 아홉살 때에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위대한 성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데레사 성인이 가르멜 수도원을 동경한 이유는 교만과 허영이 지닌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성녀가 되고 싶어서였습니다.

가톨릭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성인 33인 중 한 분

데레사 성인은 24년 9개월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죽고 그녀의 회고록 <한 영혼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자 그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급속도로 세상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대한 짧고 겸손한 이 글이 어떻게 이처럼 영적인 힘을 내뿜게 되었는지 참으로 놀라울 뿐입니다. 그녀의 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한없이 감동시켰습니다. 사망한지 28년 후 1925년 그녀는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그녀의 사망 100주년인 1997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성하께서는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포함된 33명의 최고 엘리트 성인에 데레사 성인을 올렸습니다. 또한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에게 교황성하께서는 ‘교회의 박사’라는 칭호를 부여하였습니다.

오로지 사람으로부터 잊혀지기만을 원했던 가난한 영혼에게 이 얼마나 놀라운 영광입니까? 하느님께서만 알아주시는 작은 희생의 꽃송이만을 바치기 원했던 이 겸손한 믿음에 대하여 이 얼마나 위대한 보상입니까? 우리가 비록 광야에 핀 작은 들꽃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하느님만이 아시는 작은 희생을 통하여 얼마든지 위대한 성덕을 이룰 수 있으며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될 수 있음을 작은 꽃 소화(小花) 데레사 성녀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2017. 10. 1. 김원율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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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7-10-0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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