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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칼럼  |  김원율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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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밀리안 콜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글 | 김원율 안드레아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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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 사제순교자 기념일이다. 나는 새벽미사를 마치고 돌아와 오래전에 읽었던 책 ‘막시밀리안 콜베’ (마리아 비노프스카 지음, 김동소 옮김)라는 책을 책장에서 찾아 꺼내 들었다. 성인에 대한 책을 처음 읽고 느꼈던 감동이 다시 가슴에 전해졌다.

1941년 2월 17일 콜베 신부는 나치스에 의해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게 된다. 이 수용소에서 5백만 명이상의 수형자들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죽어갔으며 이 땅위의 언어로써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온갖 모독, 잔학한 행위와 고통이 펼쳐졌다. 오장육부를 찢어내고 잠마저 앗아가는 혹독하고 끊임없는 굶주림! 낮이나 밤이나 몸을 떨게 하는 추위! 신입죄수에 대한 그치지 않는 사형(私刑), 인간에 대한 교묘한 타락의 교사(敎唆)! 이보다 심한 인간에 대한 모독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신부는 이 지옥 속에서 그리스도를 증명하는 자유인이었다. 그는 가혹한 작업조에서 악독한 조장으로부터 항시 ‘돼지 새끼 같은 신부’라고 불리며 모욕당하고, 짐승 취급을 받았다. 그는 작업 중에 힘에 겨워 넘어질 때마다 앙상한 등덜미에 수없이 내려치는 채찍질을 받았다.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굶주림과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하는 죄수가 생겨나곤 하였다. 그때마다 수용소장은 죄수 중에 10명을 차출하여 아사감방에서 굶겨 죽이는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굶주림보다 무서운 것은 목마름이었다. 이 지옥과 같은 아사감방에서는 짐승과 같은 부르짖음과 저주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1941년 7월 말 막시밀리안 신부가 있던 14호 감방에서 죄수가 한사람 탈출하였다. 흡혈귀라는 별명을 지닌 프리치 수용소장은 14호 감방 죄수들을 햇볕아래 몇 시간을 세워두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쓰러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수용소장은 잔인한 눈빛으로 죄수들을 살펴본다. 이들 중 10명이 아사감방에서 굶어죽는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된다. 지명된 한 사람의 죄수가 울부짖었다. “아, 불쌍한 마누라와 아이들을 다시 못보게 되었구나!” 이들은 바로 옆 13호 감방, 사형집행실로 향하게 되었다. “좌로 돌앗!”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이 참혹한 광경에 사람들은 몸서리를 쳤다.

그런데 여기에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한 사람의 포로가 놀라고 있는 동료들을 헤치며 열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다. 순간 그 잔인하기 짝이 없는 프리치 수용소장도 당황하였다. 그는 프리치 수용소장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순간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물결치듯 이 열에서 저 열로 전해졌다. “막시밀리안 신부다!” 소장은 권총을 겨누더니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정지! 무슨 일이야? 이 폴란드의 돼지 새끼야!” 신부는 소장 앞에 섰다. 아주 침착했다.

신부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 사형수 중의 한 사람 대신 내가 죽겠소.” 그는 언제나 자신에게 반항하는 자는 권총 한발로 간단히 쓰러뜨리는 잔인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 연약한 사제의 맑은 시선에 압도당하였다. 소장은 얼빠진 사람처럼 물었다. “도대체 왜 그래?” 신부는 대답했다. “나는 늙었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살아있어도 아무 것도 못할 것입니다.” “누구 대신에 죽겠다는 거냐?” “저 사람, 부인과 아이들을 가진 사람 대신입니다.” 신부는 슬피 울던 사람인 프란치스코 가조프니체크 중사를 가리켰다. 프리치의 호기심은 한번 더 그의 잔인성을 억누를 수 있었다. 그는 알고 싶었다. “너는 누구냐?” 짤막하면서도 엄숙한 대답이 나왔다.

“나는 천주교의 사제요.”

콜베 신부는 사제로서 죽고 싶어했다. 사제는 인간이 이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존엄한 특권을 보유한 사람이요, 주님의 성체와 성혈과 사죄권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이 흡혈귀는 신부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 가슴을 지닌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지극히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감히 “안 된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막시밀리안 신부는 기다렸다. 그의 시선은 멀리 붉은 빛으로 뒤덮여 넘어가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한없이 화사해보였다. 마침내 프리치는 쉰 목소리로 말한다. “좋다, 함께 가라.” 그는 욕설도 상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프리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뒤 수용소에서 잔학한 행위는 많이 줄어들었고 많은 사람이 이로 인해 목숨을 건졌다.

14호감방의 사형수들이 아사감방에 들어간 날부터 기적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아사감방은 사형수들의 아우성으로 떠나갈 듯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그 속에는 그들의 임종을 도와줄 목자가 그들과 함께 있었다. 그들은 저주하지도 않았고 울부짖지도 않았다. 고통스럽던 장소가 성전으로 변해 이 감방 저 감방에서 기도와 노래 소리가 들렸다. 한 시체운반자는 시체를 운반하기 위하여 감방에 들어갈 때 마다 막시밀리안 신부는 감방 한 가운데에서 무릎을 꿇거나 선 채, 높은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성모승천 축일 바로 전날 이 위대한 하느님의 종은 양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이 시체운반자는 신부의 시신을 보았을 때 “신부의 시체는 깨끗하고 빛을 발하는 듯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당신의 승천축일을 교회가 준비하고 있던 날 밤, 과거 어느 날 신부에게 보여주셨던 저 희고, 붉은 두 개의 관을 손에 쥔 채 그를 찾아오셨던 것이다. 1982년 요한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를 ‘자비의 순교자’로 부르며 성인품에 올렸다. 또한 천주교 신자이면서 소설가인 일본의 소노 아야꼬(曾野綾子) 여사는 ‘기적(奇蹟)’이라는 책에서 막시밀리안 콜베 성인과 관련된 기적을 다루고 있다. 필자는 2010년 막시밀리안 콜베 성인의 발자취를 찾아 일본 나가사키에서 성인이 1931년부터 6년간 사목을 하시던 수도원과 성인이 만든 루르드의 성모 동굴을 순례한 적이 있다.

근세에 사제로서 이처럼 온전히 하느님의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한 사제가 얼마나 있을까?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13)
(2017.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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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7-08-1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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