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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칼럼  |  김원율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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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ying in the chapel - 울면서 예배를 -

글 | 김원율 안드레아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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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 친구가 유튜브의 동영상으로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른 ‘Crying in the chapel’이라는 노래를 보내주었습니다. 제가 옛날에 좋아하였던 노래입니다.

You saw me crying in the chapel. 당신은 내가 chapel에서 우는 것을 보았지요.
The tears I shed were tears of joy. 제가 흘렸던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Now I know the meaning of contentment. 저는 이제 만족이 무엇인지 압니다.
Now I am happy with the Lord. 이제 저는 주님과 함께 행복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하였으나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었지만 바로 교회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는 것이 노래의 내용입니다.

죄인이 교회에서 회개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경험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마음의 평화’가 아닙니다. 고난 속에 있지 않고 세속적인 평안함을 누리는 사람도 마음의 평화를 지닙니다. 신앙인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지 ‘감각적인 위로’, ‘마음의 평화’가 아니라 주님이신 창조주를 우리의 내면에서 만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는 감각적인 부분이 정화(淨化)되고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항심(恒心)을 지녀야 합니다.

십자가의 성요한은 ‘가르멜의 산길’이라는 책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체험하는 것은 황홀경을 느끼는 것이나 환시를 보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감각적인 부분이 완전하게 정화(淨化)되지 않은 영성생활의 초보자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오류라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피상적이며 감각적인 사람들이 흔히 묵상 중에 ‘감각적인 위로’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황홀경과 같은 피상적인 경험을 가지고 하느님을 만났다는 영적인 교만이나 허영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냥 조용히 우리의 내면에 머무르면 됩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엄청난 보화가 숨겨져 있고 그기에서 우리는 조물주를 만날 수 있습니다. (토마스 키팅 ‘내 안에 숨어계신 하느님’) 저는 영적으로 성숙되지 못하여 내면에서 하느님을 만난 적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바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저술하여 일약 유명해진 현각 스님은 ‘선의 나침반’이라는 책에서 세계에서 3대 생불(生佛)이라고 일컬어지는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숭산스님은 수행을 하는 도중에 ‘아! 나는 지금 너무 좋아!’ ‘지금 이 순간 나는 너무 평화로워’라는 자기만족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아주 좋지 못한 습관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예전에 성령 세미나에서 갑자기 대성통곡하는 신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무언가 좀 낯이 익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나름대로 그 신자가 하느님을 영접하면서(개신교에서 많이 쓰는 표현입니다) 느낀 회개의 심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신자가 얼마 안 있어 성당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신앙을 유지하기 위하여 중요한 것은 ‘감각적인 위로’가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숭산스님도 ‘항심(恒心)’,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9월 20일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이며 교회에서는 9월 17일 오늘 대축일 미사를 드립니다. 이 분들이 서슬 푸른 칼 아래 스러지면서 신앙을 지킨 것은 바로 주님에 대하여 ‘움직이지 않는 믿음’을 지녔기에 가능하였을 것입니다.

(2017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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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7-09-1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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