浩然의生覺(회원)
홍콩 있는 처남이 전화가 왔다.
“안 서방 중국 와서 사업 한번 안 할래?”
그래서 중국 형편도 살필 겸 1차로 북경을 거쳐 백두산 태산 산동성(山東省) 청도시(靑島市)를 방문하였다. 당시 중국은 외자를 유치하는데 총력을 쏟던 때였다. 현장에 가보니 넓고 넓은 땅을 원하는 대로 택하라고 한다. 조건은 우리 평수로 한 평에 한화 1만 원, 50년 조차(租借) 1회 한하여 연장 조건이다. 처남은 홍콩에 있으며 사람도 좋고 한국에서 오가는 많은 사람들과 교제도 좋아 우리나라 굴지의 식품회사 1차 가공품을 납품하는 회사를 하기로 한다.
공장은 청도(靑島)에 있는 교주시(胶州市)에 설립한다. 청도시(靑島市)와는 자동차로 30분이고 공항(空港)에서도 20분 거리라 교통도 편리하다. 공장 부지는 약 1만 평 정도다. 땅값은 평당 1만 원이고 50년 조차(租借) 기간에 1회 연장, 50년이니까 100년간 임대할 수 있다. 공장 건물의 건축비는 공상은행(工商銀行)을 통하여 마련하였고 설비는 한국에서 가지고 왔다.
당시 잘난 놈이든 못난 놈이든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무조건 상전이다. 한국에서 공장 투자한다고 오면 일단은 호텔에 체크인하고 바로 중국식당에 모시고 커다란 라운드 식탁에 주빈이라고 앉히고, 그것도 문을 바라보고 앉아야 상석이라나?
그 독한 50도가 넘는 백주(白酒)로 술을 못 먹는 사람을 떡이 되게 만들어야 대접을 잘해주는 걸로 안다. 매일 같이 건배(乾杯)를 하며 친구(朋友)의 관계를 유지하고 잘 지냈다. 중국을 모르는 사람도 이야기할 정도로 이 사람들은 관계(关系)를 중요시했고 잘도 먹혀들었다. 한국 기업들에게 무엇이든 협조적이었다. 특히 시정부(市政部)에서 협조를 하라는 지시도 있었고, 은행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공장은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오다 보니 은행을 부당하게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한국의 섬유회사들이 국내 사업이 어려워 청도(靑島)로 대량 이동하였는데 중고기계를 페인트칠하여 새 것같이 속여 부정 대출을 하여 한국 사람들의 신용도가 추락한다. 자연히 한국 사람 전체로 신용을 잃게 되었고, 차츰 많은 기업들이 물밀듯이 들어오다 보니 임금도 오르고 사업적인 매력도 차츰 잃어가고 있었다.
거기다가 중국의 분위기가 한국 사람에게 찬바람이 불 정도로 냉랭해진 것은 사드 배치 때문이었던 같다. 우리 정서적으로 볼 때는 사드는 사드고 친구는 친구인데 이곳 사람들은 한국 사람에게 완전히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것 같다. 우리를 미국의 꼭두각시라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 회사는 잘 되었다. 처음 사무실 직원들이 필요했다. 연변에 있는 조선족 여자들이 경리 겸 통역으로 있었다. 우리가 한국어로 하고 통역이 중국어로 하고 또 그쪽에서 중국어로 하고 통역이 한국어로 돌아오면 뜻이 50%도 전달되지 않았다. 한국어라 하지만 조선족들은 함경도 말이고 한국에 살아 보지도 않았고 중요한 것은 그 나라 습관과 문화를 잘 알지 못하면 통역이 제대로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세월이 가면서 회사 직원은 우리가 쑥떡같이 지껄여도 찰떡같이 알아먹게 되었다. 한국과 중국이 축구 경기를 할 때 회사에서 관람 중 응원하는 걸 보면 그 사람들은 중국 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착각하는 건 조선족도 한국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그 사람들은 엄연히 중화인민공화국의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중국 사람이다.
공장의 전기는 24시간 정전은 없었지만, 전압이 고르지 못해 기계고장이 많았다. 겨울에는 하루에도 수십 톤의 원료가 들어온다. 고추를 가공하는 것으로 8시부터 작업 시작인데 새벽 6시부터 아주머니들이 공장 앞에서 기다린다.
공장의 작업 시작은 오전 8시부터인데 아침 7시부터 기다리다 정문이 열리면 500여 명의 아주머니들은 달리기하며 자리를 찾는다. 고추의 꼭지를 따는 일인데 그날 작업한 것을 무게를 달아 정산하기 때문에 야단들이다. 추운 날인데 회사에서 주는 따뜻한 보리차에 빵 하나 먹고 일하시는 것 보면 정말 마음 아팠고, 우리나라 태어난 게 정말 고마웠다. 어떤 아주머니들은 작업한 고추를 퇴근할 때 옷 속에 숨겨서 나간다. 할 수 없이 경비실에 여자 경비원이 몸수색을 하면 중요한 부분에까지 꽉 차게 숨겨 나간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
한국에서 지인이나 친구들이 가끔 방문한다. 그러면 관할 시정부(市政部)에 연락하면 비행기 도착 시간을 알려 달라고 한다. 경찰차 에스코트를 받고 호텔에 짐 풀고 나면 바로 식당으로 안내된다. 우리 손님은 두 사람이라도 그쪽 관계되는 사람은 항상 5~6명이다. 그 나라는 식당에 꼭 운전수를 대동한다. 우리나라같이 기사 취급 안 한다. 마음껏 백주(白酒) 따르고 또 따르면 한국 손님은 기절 1분 전이지만 그 사람들은 그것이 일상이라 끄떡없고 투자 유치를 위한 일이라면 그렇게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이다.
가끔 식당에서 중국말로 이런 말 한번 하면 깜짝 놀란다. “백두산에 가보지 않으면 진정한 사나이가 아니다(不到長城非好漢)”
생각해 보았다. 나는 한국인이란 그것 하나 때문에 환대를 받는다. 국가에 대하여 또 한 번 감사를 느꼈다. 내가 방글라데시나 콩고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4년 동안에 너무 많은 경험도 하고 즐거운 생활을 했다. 홍콩의 처남은 한 달에 한 번 방문하였고 올 때마다 많은 선물을 가져왔기 때문에 꽌시(关系) 관계가 좋았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김(金)씨를 jin先生 이라 하고 박(朴) 씨를 pyo 先生이라고 부르며, 서울을 (漢城) han chung 이라고 불렀는데 얼마 전부터는 서울로 부르고 있다. KBS 뉴스를 우리나라는 저녁 9시에 하는데 중국에서는 실시간 저녁 8시에 한다. 그것은 중국과 1시간의 시차가 있어서 그렇다.
중국은 날짜 변경선으로 봐서 한국과 700km 서쪽, 비행기로 1시간 30분 정도인데 1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는 일본 동경(日本東京)까지 2시간 30분 떨어져 있는데도 동일 시간대를 쓰고 있다. 처남은 4개 국어(영어 일어 중국어 한국어)로 성경 필사를 마친 대단한 분이다. 작성한 4개 국어 필사본은 홍콩 한인 본당 설립 25주년을 맞아 열린 본당에 전시됐다.
중국에서 자동차 특히 일제 자동차는 상당히 비쌌다. 우리 투자 회사의 한국 직원들에게는 1대씩 면세 혜택을 줘서 우리는 토요타, 닛산 등 좋은 차를 가졌다. 그 당시 사무실 직원과 운전기사 월급은 10만 원 정도면 아주 좋은 대우였다. 운전기사 근무 시간은 없었다. 어떨 때는 손님을 맞으려 공항을 하루에 몇 번씩 다니고, 자다가 호출해도 불만이 없다. 운전을 하고 싶어 운전 면허 시험을 보았다. 시험장엔 시험관과 1:1로 앉는다. 시험문제는 전부 중국어로 가득하다. 시험문제는 하나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통역을 붙여준다. 전부를 통역이 시험 보는 것과 같다. 다음은 도로 연수다. 먼저 시험 본 한국 사람들이 가르쳐준 대로 옆에 탄 감독관에게 슬며시 준비한 봉투를 내밀면 싱긋 웃으며 합격증을 받는다. 오해하지 마라. 옛날에는 그랬다는 말이다. ㅋㅋ
청도(靑島)는 해변도 아름답고 독일 조차(租借) 지역이라 해변의 건물들은 독일식 주택들이 많았고 기후도 해양성 기후에 사람 살기는 아주 좋다. 해변에는 경복궁(景福宮)이라는 한국 고급 식당이 있었다. 당시 한국 사람들에게는 환율 차로 인하여 우리는 부담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인천에서 청도 공항까지는 비행기로 약 1시간 30분 정도라 기내식 식사하고 나면 바로 내리라고 한다. 공항이나 시내의 도로는 한산하고 건물들은 옛날 건물이고 길가의 자동차는 우리나라 90년대 수준이다.
나는 한 달의 25일은 중국 공장에, 5일은 한국에 오는 조건으로 시작하여 4년 정도 중국 생활을 하였다. 나는 자칭 역마살(驛馬煞)이 있는 사람이다. 신기한 걸 보면 꼭 가보고 알아봐야 직성이 풀려. 주말에는 여기저기 관광지도 다니고 자동차 타고 인근 도시는 물론 수도 없이 다녔다. 아무나 부딪히다 보니 중국말 하는데도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한번은 북경까지 혼자 운전해 가서 돌아갈 때는 엄두가 나지 않아 회사 기사를 불러서 차는 기사가 가져가고 나는 비행기를 타고 온 적도 있다.
프로펠러 비행기도 탔다. 여름엔 공장이 한 달간 쉰다. 그동안 공장은 기계 수리 및 다음 작업을 위한 준비를 한다. 겸사겸사 동북삼성(東北三省) 여행을 떠난다. 청도(靑島)에서 장춘(長春)까지는 프로펠러 비행기로 그 비행기가 얼마나 시끄럽고 동체가 흔들리는지 나는 무서웠는데 그래도 제트기보다 프로펠러가 안전하다고 한다.
장춘(長春)은 일본 사람들이 살려고 만든 도시로, 도시 계획도 잘 되어있고 이름도 신경(新京)이라고 일본 사람들이 이름을 지었다. 장춘(長春)서 연변은 기차로 10시간 정도 되는 것 같았는데 연변에는 조선족들로 구성된 연변 오동팀을 맡아 중국 프로축구 감독으로 복귀한 최은택 선배가 놀러 오라고 해서 갔는데 그 인기는 대단했다.
중국 사람들은 축구라면 열광하는데 연변의 오동팀을 만년 꼴찌에서 중국 내 랭킹 2위까지 했으니 영웅 같은 존재였다. 숙소는 학생들의 문전성시 시민들은 환호 자체였다. 내가 최은택 감독과 함께 있으니 나도 대단한 사람인 줄 알고 식당이고 어디고 가는 데마다 환대를 받았다. 그 최은택 감독도 6년 전 세상을 하직하셨다. 나도 4년의 경험을 뒤로 하고 귀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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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20일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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