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32) - 보인다 보인다 세상이 보인다
  
  조갑제닷컴의 <못 배운 한을 아십니까>글을 감명 깊게 읽었다. 동시에 내가 직접 가르치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그분들의 한 맺힌 사연들이 떠올랐다. .
  
  1980년대 중반, 미국 유학 대신 미국여행을 택한 뒤 1년간 여행을 마치고 귀국. 마침 종로 2가의 어느 대형 K 외국어학원에서 영어를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강사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지원했다. 원장 포함 직원들 여러 명 앞에서 ‘성문 종합영어’를 가지고 시강(試講)을 했다. 통과. 내가 맡은 건 ‘아카데미 토플’과 ‘토익’. 대상은 대학생과 직장인들(*내가 미국 유학<석사> 준비 때 사용한 토플 교재사용.) 어느날 원장이 나에게 물었다. 성인 영어 기초 반도 맡아 줄 수 있냐고. 담당 강사가 포기했다는 것. 그 이유가 그럴듯했다. 50대 이상 여성들인데 영어 기초가 전무(全無)해서 강의에 한계를 느꼈다는 것. 수락했다. 그것을 계기로 나는 요즘 말하는 ‘배우지 못한 한’을 가지고 산 분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 .
  
  한 분 한 분의 사연이 기가 막혔다. 조갑제 닷컴에 실린 내용 그대로였다. 배울 기회가 없었다. 아니, 불가능했다. 첫째, 가난 때문에, 둘째 딸보다 아들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가난은 아들도 외면했다. 남자분들도 있었다. 이분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못 배운 한을 안고 살았으되’,사회적으론 성공했다는 것. 여성분들은 좋은 남편 만나 안정된 삶을 살면서 자녀들도 잘 키웠고, 남자분들은 개인 사업을 해서 성공했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한 외적(外的) 성공을 이뤄냈어도 남에게 보이기 싫은 내적(內賊) 빈곤감은 어쩔 수 없었다.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은 자기기만(自己欺瞞)이라는 자책감(自責感)에 시달렸다.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 과잉 행동이었다. 과공비례(過恭非禮) 혹은 '허례허식(虛禮虛飾)' 자격지심(自激之心) 혹은 자화자찬(自畫自讚). 어느 쪽이든 부자연스럽고 자신을 속이는 자괴감에 빠졌다.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에 묶인 노예적 삶이었다. .
  
  또 하나의 공통점은 영어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었다는 것. 영문법 설명에서 계속 반복되는 명칭인 용어 자체를 몰랐다. 가령, 명사(名詞), 동사(動詞), 형용사(形容詞) 그리고 주어(主語), 서술어(敍述語), 목적어(目的語) 수동태(受動態) 등의 기본 개념 등. 이미 성인이 된 후 외국어를 배우려면 누구나 최소한의 문법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 먼저 개개의 명칭 개념부터 이해시켰다. 문법 용어 역시 대부분이 한자(漢字)로 구성돼 있으니 한자 뜻풀이도 중요했다. 각 명칭의 의미를 세세히 가르쳤다. 그래서 나는 영어 선생이라기보단 한자 선생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한자의 중요성을 더 많이 강조했기 때문. 물론 그 과정은 말처럼 간단치 않았다. 그러나 나도 그분들도 포기하지 않고 기본 과정을 마쳤다. .
  
  영어 사전 사용법, 간판에 적힌 영어(로마자) 명칭과 사람 이름 읽는 방법, 나아가 로마자로 자기 이름을 직접 만들 수 있고, 또 영어로 된 영화 제목과 팝송 이름을 혼자 힘으로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그분들이 보여준 만족감과 행복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었다. ‘조갑제 닷컵’에 실린 모든 분의 감동적 글 가운데 특히 내가 가르친 분들의 정서(情緖)와 맥(脈)을 같이 한 것은 다음 글이다. .
  
  *보인다 보인다(김선숙)
  
  보인다 보인다
  ㄱ ㄴ ㄷ ㄹ ㅁ ㅂ ㅅ
  보인다 보인다
  가나다라마바사
  보인다 보인다
  간판이 보인다
  보인다 보인다
  세상이 보인다
  좋다!
  -----------
  
  *보인다 보인다(A B C D E F G가 보인다)
  
  *보인다 보인다(간판도 보이고 음식 이름도 사람 이름도 보인다) Korea, Seoul, Bus, Baby, Bank, Book, Coffee, Cup, Milk, Banana, Apple, Orenge, Chicken, Cake, Desk, Doctor, Hospital, Hotel, Restaurant, Stop, Taxi, House, Happy Birthday, My Family, My life, Seven Eleven, etc.
  
  *보인다 보인다 (세상이 보이고 우주가 보인다). Sky, Sun, Star, Moon, Earth, Sea, World, America, England, France, Switzerland, Mexico, Peru, Egypt, Uganda....
  
  *좋다!(이렇게 좋은 걸 왜 진작 배우지 않았을까!!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정말 그랬다. 각계각층을 다 가르쳐봤지만, 이분들만큼 기뻐하고 감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억누를 수 없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다. 함께 울기도 했다.) .
  
  몇 분의 사례를 소개하면; .
  
  1) 5급 공무원 남편을 둔 50대 여성.
  2) TV 방송 아나운서 딸을 둔 60대 여성
  3) 이태원에서 상당 규모의 의류상을 하는 남편을 둔 50대 여성
  4) 중장비 대여업을 하는 남편을 둔 50대 여성
  5) 아들을 의사로 만들 뒤 역시 의사 며느리를 본 50대 여성
  6) 미국 이민 간 아들을 둔 50대 여성
  7) 임대업을 하는 남편을 둔 50대 여성
  8) 미국인 사업가와 결혼한 50대 여성
  9) 목걸이 등 액세서리 제조업을 하는 50대 남성
  10) 독일에서 의료 기구를 수입 납품업을 하는 50대 남성 .
  (*이분들이 생존해계신다면 100세 이상 되셨다.) .
  
  대체로 이분들이 결혼을 한 60~70년대엔 특히 신붓감으로 학력이 중시되는 시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라의 경제 성장과 더불어 국민 소득이 올라가면서 모든 문화생활 수준도 높아졌다. 동시에 남녀 공히 고등교육이 일반화되면서 학벌 사회가 됐다. 정보가 넘쳐나는 지식 사회가 된 것이다. 자식들과의 대화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급기야는 자식들로부터 그것도 모르느냐는 핀잔을 듣는 등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 대학 나온 며느리도 아들 편이다. TV는 물론 어딜 가나 영어 이름과 간판이다. 우리 말(한국어)은 큰 문제가 없지만, 영어는 그렇지 않았다. 아는 척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찾은 곳이 영어학원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이분들은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가재는 게 편(同病相憐). ‘배우지 못한 한’이 이심전심(以心傳心) 통했다. 서로 감출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자존심이 상할 것도 없었다. 그처럼 편안해 보일 수가 없었다. .
  
  두 남자 분의 사연도 매한가지. 사업이 잘 되어 활동 영역이 넓어질수록 대인관계 역시 그랬는데, 문제는 스스로 ‘배우지 못했다는 열등의식(劣等意識)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는 것. 특히 영어와 관련된 상표나 문서 등을 봐야 할 땐 긴장했다. 오랜 경험으로 영어로 말하고 듣는 건 괜찮았지만, 읽고 쓰는 데는 항상 불안하고 겁이 났다. 그 심정(心情)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혼자 운 적도 많았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것은 역시 세상을 살아가는 총체적(總體的) 삶의 기술일 것이다. 이론과 실무를 겸하는 것이다. 책에서 머리로만 배우는 공부(학문)의 기초(기술)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생활 속에서 온몸으로 터득하는 생존 기술의 기초이자 기본이다. 어느 쪽이든 한쪽으로만 치우친 상태는 삶의 질에 문제가 생긴다. 아무리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삶을 살아도 정신적 빈곤감, ’배우지 못한 한‘을 안고 사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결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어떤 경우든 한은 풀어야 한다. 한편, 적게 가지고 적게 배웠지만 감사하면서 잘 사는 사람들 또한 많다. 그들의 지혜(智慧)를 배우는 것도 큰 공부라고 생각한다.
  ------------------------------------------------------------------
  What I’m thinking about(32) - People who desire to see the wider globe.
  
  I thoroughly read CHOGAPJE.COM's "Do you know a deep regret not having received an education" article. At the same time, I reflected on my own experience teaching and witnessing them.
  
  In the mid-1980s, I chose to take a trip to the United States rather than study there, and I went home after a year abroad. I taught English in a big Korean foreign language institute in Jongno 2-ga, Seoul. I taught TOEFL and TOEIC. I also taught a basic English lesson for adults. The adult class consisted of ladies in their fifties or older. They lacked fundamental understanding of English. They lived in terrible grief since they had missed out on the opportunity to learn.
  
  First, poverty prevented them from attending school. These individuals shared something in common. They were socially successful despite their lack of education. Regardless of how rich their lives were, they had an inward sense of poverty that they did not want others to perceive. The more they attempted to disguise it, the more guilty they felt.
  
  They also shared the fact that they lacked basic English knowledge. They were unfamiliar with the words, which appears frequently in the English grammar explanation such as nouns, verbs, adjectives, and so on. After becoming adult, everyone needed a basic understanding of grammar in order to learn a foreign language. So I attempted to make sure they grasped the specific grammar names. Of course, the method was not simple. Luckily neither I nor they gave up and completed the basic course.
  
  They eventually got enough confidence to use English dictionaries on their own, read English names and people's names on advertisements, write their own names in Roman characters, and read English movie titles and music songs on their own.
  
  In general, when people married in Korea in the 1960s and 1970s, education was not considered vital, particularly for women. However, as the country's economy grew, so did all levels of cultural living. At the same time, the quality of schooling improved. It evolved into a knowledge-based civilization rich in information. Their discussions with their children became further apart. They gathered their confidence and went to the English academy. Within a few days, they had become good friends. There was nothing to conceal from one another, nothing to be embarrassed of, and nothing to damage their dignity.
  
  *I believe that the talents required to live in the world are the most difficult to master. It mixes theory with practice. For a human, I believe that learning survival skills with one's entire body in life is just as vital as learning from books. In any case, a biased state will have a negative impact on quality of life.
  
  In my opinion, no matter how much worldly wealth we have, a society with many individuals suffering from mental poverty, or deep regrets about things we haven't learned, can never be healthy or joyful. As a result, I believe it is an excellent study to absorb wisdom from those who have studied less yet are appreciative and live happily.
  
  Thanks for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