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탈취법

 
   2005년 12월 9일 사학탈취법이 통과되었다. 국회의원 154명 참석에 찬성 140, 반대 4, 기권 10이었다. 144석의 열우당, 11석의 민주당, 9석의 민노당이 합작한 결과다. 몸을 던져서라도 한나라당은 막으려 했지만, '남이 하면 날치기, 내가 하면 다수결'이란 어디서 많이 듣던 방식으로 사학탈취법이 통과되었다. 한나라당은 중의 머리끄덩이만 끌어당긴 모양이다. 저들은 193명이 찬성한 것도 원천무효 시켰는데! 127명이나 되는 웰빙족이 뒷북이라도 제대로 울릴지 자못 궁금하다.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원회에서 추천하는 경우가 두 가지인데, 그 중에서 개방형 이사는 4분의 1이고 감사는 1인이다. 대학평의원회 의무화, 교장 임기제 (4년 중임) 도입, 노동 운동 관련자 면직 불가 등이 사학탈취법의 핵심이다.
  
   OECD 기준으로 보면, 한국에는 이미 초중고에서 사학이 단 한 학교도 없다. 교원의 월급을 국가에서 받고, 교육과정을 거의 99% 교육부가 정해준 대로 따르고, 평준화 지역에서는 학생선발권도 없고 등록금도 교육부가 정해 준 대로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학은 이미 오래 전부터 허울만 남았다. 열 손가락으로 헤아리는 자립형 사립고마저 지역학교 등록금의 3배를 초과할 수 없다. 이 경우에는 월급을 국가에서 받지 못한다. 등록금으론 학교 운영이 불가능하다. 이들도 교육과정은 교육부가 정해 준 틀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한다. 이를 어기면 당장 교문을 닫아야 한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국가 외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육에 관한 한 한국은 공산독재국가나 다름없다. 한국 사회는 대부분 시장경제과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을 따르는데, 교육만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부실한 공교육을 보완하기 위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 세세년년 번성하는 게 사교육이다. 사교육에선 철저히 시장경제의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거기는 오로지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으로 그 생명을 유지한다. 설립도 쉽지만 부도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쉽다. 종로니, 대성이니, 중앙이니, 정일이니, 청솔이니, 메가스터디니, 눈높이니, 대교니 하는 사교육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그 주가를 순식간에 또는 오랫동안 끌어올리거나 유지하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등을 돌리면 그 날로 문을 닫아야 한다. 조금만 자만하면 왕관을 벗고 깡통을 차야 한다.
  
   대한민국의 교육부는 이 사교육 시장에마저 뛰어들었다. 그것이 바로 교육방송(EBS)이다. 그러나 요란한 선전과 유혹과 협박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끌어들였지만, 하품과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EBS 사교육은 온갖 불공정행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게 되었다. 2004년에 일거에 이를 뒤집어 버렸다. 모의고사에서부터 진짜 몇 문제 거기에서 내고 수능에도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이미 약발이 다 떨어졌다. 메가스터디와 강남구청의 강의와 교재가 훨씬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학교와 학원의 강의가 그보다 훨씬 나은 게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부 주도 사교육을 차마 완전히 외면하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제 사학탈취법으로 사학의 비리를 원천봉쇄한다는 미명하에 사학은 완전히 정부의 입김과 전교조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공익이라는 명분으로 웬만한 도시에서는 학생선발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하고 전국 모든 학교의 등록금도 철저히 통제하여 하늘에서 날마다 금덩이가 떨어지는 행운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전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명문을 만든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교육부의 교육독재를 틈타 엉터리 학교가 독버섯처럼 자라날 수밖에 없었는데, 교육부와 전교조는 이를 빌미로 사학을 완벽하게 탈취할 구실을 찾았다. 정부의 교육독재 때문에 생긴 사학비리건만, 주범인 교육부는 더욱 힘을 더하고 피라미 종범인 일부 사립을 구실 삼아 이제는 헌법과 법률이 허가한 법인의 사유재산을 개방이사와 감사와 학교운영위와 대학평의원회를 실세로 내세워 전국 모든 사학의 소유권 행사를 사실상 박탈하게 이르렀다.
  
   삼성과 현대, LG만이 아니라 전국의 중소기업과 할인 매장과 미용실까지 비리를 구실 삼아 아예 그 소유권을 빼앗고 관선이사를 파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교육과 경제는 다르다고? 천만에! 교육이야말로 경제 중의 경제다. 첫째, 경제가 없으면, 돈이 없으면 교육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개인이나 국가나 교육보다 지출항목이 큰 게 없다. 둘째, 경제를 성장시키지 못하거나 최소한 유지하지 못하는 교육은 이제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 대학 나온 사람이 초등학교도 안 나온 사람보다 무슨 일을 하든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하면, 그런 교육을 시킬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차산업이든, 2차산업이든, 3차산업이든 모든 경제영역은 이제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국내교육이든 외국교육이든 교육을 통하지 않고는 존립자체가 불가능하다. 3차산업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국제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짐에 따라 교육도 이젠 나날이 새로워져야 한다. 평생교육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세이다. 지식근로자(knowledge worker)가 되지 않을래야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지식근로자란 말의 대전제는 교육과 경제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예술과 문화마저 교육을 통하지 않고는, 아니 예술과 문화일수록 더욱더 교육을 통해야 한다. 게다가 경제와 제일 무관한 듯하던 예술과 문화가 경제의 블루 오션으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다.
  
   한국이 이 블루 오션에 남 먼저 뛰어들려면, 교육에 자유와 자율과 개방이 필수적이다. 사립부터 풀어주어야 한다. 사학재단에겐 학생 선발권과 등록금 책정권과 교육과정 편성권을 허용해야 한다. 그 후엔 학원강사에게 국가가 월급을 안 주듯이 사립학교 교원에게도 국민세금으로 월급을 주지 말아야 한다. 사교육처럼 사학이 담당하는 공교육도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시원찮은 건 법원에 갈 것도 없이 절로 망한다. 망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기 때문에 제3자가 사학비리를 걱정할 필요도 비분강개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한국은 21세기로 나아가지 않고 20세기 중반으로 50년이나 뒷걸음치고 있다. 2차대전 후 소련의 군사적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산주의를 택한 나라나 마르크스 아편에 취한 후진국들처럼 국가가 교육을 독점하려는 망상을 개혁이라며 사학탈취법을 통과시킨 후에, 정부와 여당과 일부 야당과 전교조는 일제로부터 해방을 쟁취한 듯이 환호하고 있다.
  
   이제 한국 교육은 겁나게 뒷걸음쳐서 머잖아 북한과 어깨동무할 것 같다.
   '수령님 만세, 장군님 만만세!'
   '대통령님 만세, 전교조 위원장님 만만세!'
  
   (2005. 1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