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세종, 모차르트, 밀)의 아버지

 
   천재들의 어머니에 대한 감동적인 말은 참 많지만, 그 아버지에 대한 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별로 없다. 아마 교육은 어머니가 담당한 데서 그렇지 않나 한다.
  
   그런데, W. A.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나 J. S.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의 경우를 보면 어머니 얘기는 거의 없다. 아버지가 그들의 교육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와 밀의 아버지]
  
   이 두 천재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Leopold Mozart)와 제임스 밀(James Mill)은 그들 자신도 천재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일찍이 아들의 천재성을 알고 레오폴트는 오로지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 자기 인생을 포기했다. 아들 볼프강은 그냥 천재가 아니라 천 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하는 천재임(음악 그 자체 music itself, 이런 영광의 칭호는 어떤 예술 분야에서도 나오지 않음)을 알고 자기 정도의 천재는 썩혀 버려도 하나도 아까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얼마나 대단한 음악가였는지는 그가 작곡한 '장난감 교향곡'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위대한 곡은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하이든의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는데, 음악사가들에 의해 그것이 레오폴트 모차르트 것임이 밝혀졌다. 이런 곡을 지을 정도의 천재가 자기 음악 인생을 포기하고 오로지 아들을 위해 헌신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희생이 아닐 수 없다.
  
  [부자간의 갈등]
  
   부자간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을 역사에서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저 유명한 처칠도 자기 아버지가 일찍 죽자, 드디어 그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활짝 필 수 있다고 은근히 좋아하지 않았던가.
  알렉산더 대왕도 아버지 필립이 주변의 나라를 차례로 정복하자, 낙심천만했다. 다행히(?) 부왕이 일찍 죽자,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것이다.
  당 현종은 아들 수왕의 아내 곧 며느리(양귀비)를 데려와 온갖 호사 다 시켜 주다가 저 화려한 '개원의 치'를 끝내 피로 물들이고 말았다.
  성경에도 아름다운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왕에게 반란을 일으켜 한 때 궁궐을 짓밟고 아버지의 첩들을 유린했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두고두고 영조가 똑똑한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갇혀 죽인 일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인류 5대 성인은 아버지가 유명무실]
  
   실지로 아주 위대한 인물에게는 아버지가 없거나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아버지가 천재들에게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석가가 예외인 듯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왕궁에서는 자신의 큰 이상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예 궁에서 나와 버렸던 것이다. 이를 가출(家出)이라 하기는 좀 뭐해서 출가(出家)라고 한다. 그게 그 말이다.
  공자는 일흔이 넘은 아버지가 겨우 열 여덟 살의 어머니와 야합하여 낳은 사람이다. 아버지의 정은 전혀 못 받고 자랐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목수였다.
  소크라테스는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아예 없다. 어머니가 별 볼 일없는 조산원이었다는 것밖에 없다. 거기서 비범한 그는 아이 낳는 것을 도와 주듯이 대화로 제자들이 스스로 모르고 있는 잠재된 옥동자 곧 지혜를 끌어내게 도와 주는 방법, 대화법을 발전시킨 것이다.
  마호메트는 돈 많은 연상의 과부와 결혼하는 것으로 비로소 위대한 인간으로 태어난다. 아내가 어머니 역할을 한 경우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록은 아예 없다. 신분이 천했다는 말이다.
  
   위대한 천재들은 현실의 아버지를 뛰어넘는, 거의 신과 동일한 아버지 상을 스스로 만들어 내어 그를 닮아가려다가 마침내 거인이 된 경우가 많았다.
  
  [위대한 아버지들-레오폴트 모차르트, 제임스 밀]
  
   이러저러한 걸 감안할 때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니 숭고한 아버지 중 한 사람이 아닐까 한다. 스스로의 천재성을 썩히고 아들을 위해 희생했으니까.
  
   제임스 밀도 레오폴트 모차르트 못지 않게 훌륭한 어버지이다. 영국이 서양 철학계에 비로소 명함을 내밀게 만든,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 J. S. 밀의 자서전을 보면, 오로지 아버지 얘기로 일관한다. 특이한 것은 그도 다섯 살 무렵부터 천재 교육을 받았는데, 그 내용이 인문학이었다.
  대개 천재들이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부분은 음악, 미술, 시 등 예술 계통과 자연과학, 수학 등 이과 계통이다. 여기서는 인간의 성장과 더불어 얻어지는 인생에 대한 이해가 필요 없기 때문에 나이가 어려도 얼마든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은 아버지로부터 저 어려운 그리스 철학을 라틴어로 배웠다. 이를 이해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아버지는 꼭 아들과 함께 산책하면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놀랍게도 아들은 이것을 다 이해했다. 특이한 천재이고 특이한 천재 아버지였다.
  
   제임스 밀은 레오폴트 모차르트와는 달리 자기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전히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의 길을 걸어갔다. 동인도 회사에 근무도 했다. 현대인으로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 아닌가 한다.
   아들 밀은 아버지 밀의 사상을 누누이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벤담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이라는 공리주의가 사실은 자기 아버지의 학설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자기 아버지의 업적이 뛰어나다는 것을 강조한다.
  
   밀과 모차르트는 아버지가 스승이기도 하고 형이기도 하고 둘도 없는 친구이기도 했다. 그들은 평생토록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차르트 부자의 관계는 너무도 각별하여 1787년 아버지가 죽자, 아들은 갑자기 어쩔 줄 몰라 한다. 거의 날마다 시시콜콜 편지를 써서 대화했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차지한 비중은 상상을 초월했다. 볼프강은 그런 아버지 사후 불과 4년 후에 너무도 아까운 나이(35세)에 허무하게 죽는다. 저 유명한 레퀴엠을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아버지는 71세나 장수했는데. 아버지가 죽자 아들은 끈 떨어진 연 같은 삶을 살았다.
  
  요새 식으로 말하면 전혀 재테크를 할 줄 몰랐던 볼프강 부부는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다 썼기 때문에 늘 가난에 쪼들렸다. 아내는 소꿉놀이 상대에 지나지 않았다. 둘 다 정신적으로 어린애였다.
  
   밀 부자는 각자 서로의 삶을 독립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모차르트 부자같이 어찌 보면 기형적인 '하나됨'이 없었다. 모차르트와는 달리 밀은 부부애도 참 좋았다. 존의 아내도 아주 총명한 여자여서, 둘은 환상적인 대화 상대가 되었다. 둘도 없이 좋은 친구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아버지가 죽고도 30년 이상을 더 살았다. 아버지는 향년 63세, 아들은 향년 67세. 둘 다 천수를 누렸다.
  
  
  [천재 아버지로서의 태종]
  
   세종대왕의 천재성은 오히려 그분이 왕이었던 관계로 덜 알려져 있다고 본다. 당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최고였던 경이적인 업적들이 다 신하들이 하지 않았나, 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이 때는 실명제를 도입하여 누가 무엇을 하면 다 이름을 밝혀 놓았다.
  유독 두 부문만은 세종이 직접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훈민정음 창제와 작곡이다. 조정의 어느 누구도 그 음운학이 세종의 근처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겸손하기 그지없었던 세종대왕이 이 부문에 대해서는 조금도 자신의 능력을 숨기지 않았다. 여러 고증 끝에 그래서 국어학자 이기문 교수는 훈민정음이 세종대왕의 작품이라고 결론지었다. 무엇보다 정치가로서 세종은 두말할 것도 없이 천재였다. 이건 누가 뭐래도 그분이 최고였다. 솔로몬을 능가한다.
  
   세종대왕이 베토벤보다 작곡을 많이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박연은 아악을 정리한 사람이고 대금 연주자였다. 지휘자였다. 작곡은 세종이 직접 했다. 그것도 무려 260명이 연주하는 한 시간, 두 시간 짜리 대곡이 주를 이루었다(세계 유수의 현대 교향악단은 대개 약 100명으로 구성됨). 편경의 붓 자국이 조금 남은 것을 즉시 알아챈 세종은 절대 음감을 타고났음이 틀림없다.
  
   태종은 이런 아들을 우여곡절 끝에 왕으로 임명하고 스스로 한창 나이에 상왕이 되었다. 그 전에 한 일을 보면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피 흘릴 일은 완전히 자기 대에 끝낸다. 혹시 누가 '까불까 봐' 병권만은 그대로 쥐고 있었다.
  나라 안에서 완벽하게 손을 봐 준 다음에 상왕으로 있으면서 이종무를 시켜 대마도를 정벌하게 한다. 나라 밖에까지 세종에게 감히 덤벼들지 못하게 해 준 것이다. 세종은 스스로 이 때 군사들이 출전 전에 활터에 가서 활을 쏜다. 문약한 왕이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다.
  
   천재의 천재 세종(어떤 분야든지 세종과 토론해서 이기는 사람이 없었다.)이었지만, 군사에 대해서는 미심쩍어 하던 태종이 아들이 군대를 다루는 탁월한 능력을 보고는 그 후에 병권도 완전히 넘겨 준다. 세종은 이에 보답하여 조선의 강토를 김종서와 최윤덕을 시켜 두만강과 압록강까지 넓혔다.
  
   태종이 겨우 17살에 고려말에 문과에 급제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내가 알기로는 고려와 조선 1,000년 통틀어 최연소합격자다. 보통 서른 안팎에 합격하는 게 문과다. 평균 1년에 30명(조선 518년 동안 총 문과 급제는 겨우 1만4천 여명에 지나지 않는다.)밖에 안 뽑았기 때문에, 17살에 문과에 급제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태종은 원래 무인이 아니었다. 17살에 문과에 급제한 경이적인 천재 문인이었다.
  
   그런데 그는 셋째 아들이 자기보다 더 뛰어난 천재임을 알았다. 아들을 직접 가르치진 않았지만, 언제나 말없이 그 성장을 지켜보면서 예의주시했다.
  왕이 된 후 그는 모든 악역을 도맡았다. '자기' 손에 피를 묻혔다. 그러나 백성에게는 전혀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 역사에 달통했을 이방원은 중국에서 또는 조선에서 한 왕조를 개창하는 것보다 그를 지키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500년 사직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혈기방장할 때 스스로 물러났다. 그의 웅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전세계 어떤 역사를 보아도 뒤떨어지지 않는 찬란한 평화 시대를 그 아들이 조선에서 꽃피었다. 천재 태종을 천재의 천재 세종의 아버지로서 재조명해야 할 줄 안다.
  
  [태종은 재평가해야]
  
   살상력이 크게 뒤떨어졌던 청동기 시대의 주나라를 동경하여 역사를 기술한 공자의 춘추필법에 의거해서, 가공할 철기 시대의 살상력을 수천 년 갈고 닦고 이어 천하제일고수도 단 한 방에 날려 버리는 화약까지 동원한, 주(周)로부터 무려 3천년 후의 태종을 사회나 국가 윤리가 아닌, 개인 윤리 차원의 흑백론으로 폄하함은 스스로의 역사를 비하하는 행위가 아닐까 한다.
  제왕으로서 국방과 치안을 확보하지 않으면, 나라는 오히려 도적의 소굴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부 특권층이 나라를 갈라서 자기 영지 안에서 무법 천지를 이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무에 달통한 최고의 제왕을 태종이라 하거니와 신라의 태종 무열왕과 조선의 태종은 중국의 당태종과 청태종에 못지 않은 훌륭한 왕이라고 본다. 나라가 크다고 꼭 더 위대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태종 링컨, 전국토를 피로 물들이다]
  
   미국의 태종이라면 링컨을 들 수 있다. 피 흘림으로 따지면 그를 능가할 지도자도 없지만, 미국 남부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를 나쁜 놈이라고 욕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한다.
  
   당시 북군의 총사령관이 전쟁에 나가서 남군을 공격 않고 멀거니 쳐다보고 그랬었다. 왜 같은 나라끼리 싸우느냐는 '거룩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당시 언론이나 여론도 이런 장군을 오히려 두둔했다.
  그러나 링컨은 단호하게 이런 자를 해임시키고 전쟁을 계속했던 것이다. 미국인들이 링컨의 뜻을 제대로 헤아린 것은 그의 사후였다.
  북의 상공업과 남의 농업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으면, 미국은 끝장났던 것이다. 통일은 사활이 걸린 문제였던 것이다. 링컨이야말로 100년 앞을 내다본 비전의 지도자였다.
  
  [피카소의 아버지]
  
   제일 재미있는 천재의 아버지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어버지. 그 자신도 유망한 화가이자 미술 교사였는데, 어느 날 우연히 아들 파블로가 혼자 긁적거리는 그림을 보고 기절초풍했다. 그 천재성은 죽어도 자기가 따라가지 못할 것을 직감했다. 그 길로 그는 분필도 내던지고 붓도 꺾었다. 술만 마시다가 일생을 마쳤다.
  
   과연, 중간에 붓을 단 한 번도 떼지 않고 사진보다 더 정교한 그림을 그리던 파블로는 '스스로 자라서' 입체파(cubism)를 창안하여 당대에 세계 최고의 미술가로 우뚝 섰다. 그가 긁적거린 것은 무조건 돈이 되었다. 피카소는 여자도 여럿 바꿔 가며 무려 92년이나 살았다. 참 재미있는 부자이다.
  
   (2000. 1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