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24일자 조갑제닷컴 기사
  
  김대중의 유산은 ‘햇볕정책’으로 북한 문제와 관련해 한미(韓美)양국의 여론을 둘로 갈라놓은 것이다. 그런 그가 지난 18일 사망했다. 오랜 투병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기 전 까지 빌 클린턴의 2000년 방북실패를 되새기며 오바마 대통령의 방북이 실현되길 희망했다. (주: 이 글을 쓴 돈 커크 기자는 그동안 클린턴의 방북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한반도 문제 전문기자다. 최근에는 주한미군 철수에 따른 한반도의 공산화 가능성을 지적했다.)
  
  그는 또 지난 달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기 전 빌 클린턴의 후임자인 부시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폄하한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첫 임기 내내 유지했던 대북강경책을 재임 후 마지막에 가서 유화책으로 수정했다.
  
  오바마와 클린턴은 모두 김대중의 죽음과 함께 그에 대해 무조건적인(unstinting) 찬양(praise)을 했다. 이달 초 클린턴은 중북(中北) 국경지대를 취재하다 북한 당국에 발각되어 140일간 억류됐던 두 명의 미국 기자를 귀환시키기에 앞서 북한 지도자 김정일을 만났다.
  
  그러나 오바마와 클린턴이 김대중의 죽음과 함께 발표한 성명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오바마는 김대중이 "자신의 삶을 위험에 처하게 하면서까지 정치활동을 했으며, 이를 통해 한국의 역동적 민주주의 시스템을 정착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칭송(praise)했다. 이는 과거 군(軍) 주도(mitary-led regimes)의 한국 정치 체제 하에서 이에 맞서는 과정에서 투옥, 체포, 암살의 대상이 됐던 김대중의 활동을 평가한 것이다.
  
  오바마는 그러나 김대중의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건드리지(touch) 않았다. 반면 클린턴은 김대중이 “한반도 평화를 진척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언급했다. ‘햇볕정책’이 한국전쟁 이후 그 어떤 때 보다 오랜 기간 동안 평화를 지속시켜 준 정책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클린턴의 자신의 자유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2000년 자신의 재임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당시 미 국무장관)가 김정일을 만난 것과 맞물려 있다.
  
  당시 클린턴은 올브라이트 다음으로 자신이 직접 북한을 방문할 생각이었다. 이 시기는 또 플로리다 재검표 문제로 엘 고어와 부시가 티격태격하기 바로 전이다. 클린턴은 또 김대중을 평가 하면서 한술 더 떠서(step further) “힐러리와 나는 우리의 좋은 친구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그는 분명히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 국무장관을 지내고 있는 자신의 아내의 이름(그녀가 햇볕정책을 지지하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을 넣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정말로 북한과 화해하길 바라는지 김대중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초 서울기자클럽에서 가진 공개연설에서 김대중은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의 안전보장과 세계 경제로의 편입, 그리고 미북 외교관계의 정상화를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 핵 프로그램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 계획의 포기, 그리고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의 정착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조건으로 “북한이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김대중은 “1953년 ‘정전협정’을 종식시키고 북한과 ‘무기통제’ 및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지금 자신들이 지난 4월5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5월25일 두 번째 지하 핵실험을 하는 등 미국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오바마 행정부가 묵묵부답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클린턴은 얼마 전 오바마와의 만남에서 김정일이 6자회담 보다는 ‘직접대화’를 좋아한다는 점을 강조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스탠스(stance)는 점증하는 식량부족 문제로 인해 다소 부드러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정일은 그동안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뇌졸중과 당뇨병으로 투병 중이다.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의 막내아들인 김정운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과정에서 전개될 권력 약화 가능성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김대중은 오바마가 클린턴의 대북정책을 이어받아 지난 2000년 성사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스펙터클한 사건이 다시금 일어나길 희망했다. 당시 김정일은 김대중을 북한으로 불러들여 지난 50년 동안의 남북 적대 관계를 해소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리고 두 김씨(two Kims)는 인도주의적 문제를 포함, 남북국경 개방과 이산가족 상봉을 약속했다. 6개월 후 김대중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정상의 약속은 산산조각(shattered)이 났다. ‘화해’를 가장한 모든 시도가 그래왔던 것처럼, 두 사람의 약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이산가족상봉은 형식적이고 짧은 만남이었다.
  
  한국전쟁이후 무수히 많은 이산가족들이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1만6천여 명의 이산가족들이 대면상봉을 했을 뿐이다. 서신왕래와 전화연락도 불가능한 상태다. 남한의 이산가족들이 북한을 방문하려면 북한 정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만에 하나 북한에 간다해도 극심한 통제와 모니터링을 감수해야 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지구는 북한의 의도에 따라 열렸다 닫혔다. 한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1백10만 달하는 병력을 감축하지도 않았다. 휴전선 일대에 전진 배치한 군사력을 후방으로 돌린 적도 없다.
  
  물론 북한 내에서 자행되고 있는 끔찍한 인권유린을 멈추지도 않고 있다. 그렇다면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왜 이토록 화해와는 거리가 먼 정책으로 전락하게 됐을까?
  
  김대중-노무현 10년 집권기간 동안 남한은 북한에 수백만 톤에 달하는 비료와 식량을 매년 퍼주었다.(pumped) 이 과정에서 김(金)-노(盧) 두 사람은 선의와 협력이라는 미명하에 북한에 대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이들은 또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이 들어간 핵무기 제조프로그램을 진척시키고 있었던 점에 대해서도 눈을 감았다.
  
  이는 북한이 지난 94년 미국과 맺은 제네바 합의를 명백히 파괴하는 행위였다. 김대중은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동아태담당차관보가 북한을 방문,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진척시키고 있음을 확인한 직후에도 ‘햇볕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에 조지 W.부시 대통령으로 하여금 대북 강경책을 포기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김대중은 2003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이 시기 제네바 합의에 따른 대북 경수로 건설이 중단됐다. 제네바 합의의 파기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은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김정일에게 남북정상회담의 대가로 5억 달러를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김대중이 북한에 지원한 자금이 김정일 체제를 기사회생시켰으며, 1백10만에 달하는 북한군을 먹여 살리고, 핵 프로그램에 전용됐다는 점이다. 햇볕정책은 노무현 집권시기에도 지속됐다. 그러나 한국민들은 엄청난 비용이 지불된 햇볕정책에 대해 회의적 이었다.
  
  그러던 중 2007년 전 현대그룹 CEO출신의 이명박이 좌파 성향의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한국민들은 그동안 북한에 대해 온정적인 자세를 취했던 과거 정부에 대해 보답을 받고 싶어 했다. 북한이 이명박을 ‘반역자’, ‘미국의 종놈’(lackey)이라고 부르는 사이 ‘햇볕정책’은 석양 너머로 사라져 갔다. 한국의 지난 대선은 엄청난 패러독스가 있었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되면서 미국의 보수 성향 정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제임스 켈리의 후임자였던 크리스토퍼 힐은 북한과 핵 포기 문제를 두고 거래를 했다. 이 사이 김대중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이 북한과의 화해를 방해했다고 주장했고, 그의 후임자인 노무현은 2007년 10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나 항만-철도 등 북한의 인프라 건설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과거 정부와 비교해 현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화가 나 있는(furious) 상태다. ‘햇볕정책’은 ‘신기루’(mirage)에 불과하다. 오바마 행정부는 UN제재를 통해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대북 강경책도 쓰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독재를 지속시키려는 자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다. 이 같은 방식은 김대중이 까마득히 잊고 있던 전략이다. 물론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사랑(loved)한 빌 클린턴도 이를 몰랐다.
  
  번역-정리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
  
  [원제] Kim Dae-jung fought for an elusive dream
  [출처] 홍콩 아시아 타임스(Asia Times), 2009.08.20
  [필자] 도날드 커크(Donald Kirk), 前 인터네셔널헤럴드트리뷴(IHT)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