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냉전시대가 재개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안팎으로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현재의 외교안보 전략을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8일 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의 압력에 맞서 기존의 군축협상 등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강경하게 나왔다. 양 측이 이렇게 계속 강대강 패턴으로 가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진영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진영으로 크게 도열이 될 것은 거의 분명해 보인다. 마치, 자기장이 약했던 막대자석에 갑자기 강한 자기가 형성되면서, 그 동안 느슨하게 흩어져 있던 주변의 쇠붙이들이 원래의 속성을 찾아 'N극' 아니면 'S극'으로 들러붙게 되는 현상과 같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취하고자 하는 대러시아 제재방침에 대해 중국은, '중국은 국제 관계에서 걸핏하면 제재를 가하는 것에 일관되게 반대한다' 는 노골적 표현을 들어가며 미국에 반기를 들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편 일본은, 오바마와 아베 간 통화 등을 통해 미국 입장을 전폭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한 상태이며 12일로 예정된 러시아 군관계자의 방일을 보류시킨 가운데, 일본NSC국장(야치쇼타로)을 러시아로 보내 러시아를 설득하고자 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 일부가 미국방침에 이견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이미 주요국들은 원래의 '극성'을 분명히 드러내며, 양극단에 있는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발신하는 자기장에 강하게 반응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과 같은 대립이 지속되고 결국 양 쪽 간의 공식 교류나 기존 협정 등이 하나 둘 보류되는 조치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그게 바로 냉전의 시작인 것이다.

'냉전'은 북한에 호재, 한국에 악재다. 냉전이 진행될수록 북한의 상대적 가치는 올라가게 된다. 러시아/중국 진영은, 기존 세계공통의 문제였던 '북한 핵'을 '진영의 전력에 보탬이 되는 자산'으로 간주하는 쪽으로 극적인 재평가를 내릴 가능성이 있다. 평온한 마을에서는, 위험한 칼을 가진 망나니가 마을 전체의 골칫거리가 되지만 마을이 두 편으로 갈려 무력대립 양상을 보일 때에는 이 망나니의 가치가 올라가게 된다. '같이 잘 해보자'는 제안과 함께, '기왕 지닌 그 칼도 일단 갖고 있어 봐라'는 기대까지도 받을 수 있게 된다. 냉전이 극단으로 갈수록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에 대한 구애 차원에서, '북한 핵'을 묵인해주는 '딜'까지도 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국이 얼마 전에 던진 6자회담 제안은 사실상 철회될 가능성이 있으며 냉전이 본격 진행되면, 6자회담은 향후 양 쪽 진영(미국 vs 러시아)간의 극적화해가 시도될 경우에 필요한 명분이나 수단 정도로만 활용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냉전은, 북한 핵 문제를 호도하고, 경우에 따라 사실상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등재시켜주는 상황까지도 초래할 수 있는, 한국에게 있어서는 초대형 악재다.

아울러, 냉전이 진행되어 가는데도, 대륙에 실크로드 철도를 깔아 뭔가 해보겠다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국과 연계한 '반일'을 계속 지금과 같이 추구한다면, 우리는 우방들로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될 수도 있음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일본 등 주요국이 본래 가진 자신의 '극성'을 분명히 하며 지금 이 순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반면, 미국의 맹방이라고 자부하는 우리가 상대적으로 좌고우면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바람직하지 못해 보인다. 이러다가는 양 쪽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아니라, 모두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 이번 사태가 이쯤에서 잘 마무리되면 큰 문제 없겠지만, 더욱 악화되어 가면 우리는 여러 가지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일본이, '북방영토 반환'이라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에 많은 공을 들여온 과거의 노력이 물거품되는 것도 감수하면서까지 이번에 미국 입장에 적극 동조하는 것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한 쪽은 잃을 수 있지만 다른 한 쪽은 완전히 얻겠다는 생각에 신속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는 아마도 양 쪽에서 다 이익을 취하겠다는 생각에 좌고우면하고 있는 듯 하다. 일본이 현명한 것인지 우리가 현명한 것인지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왠지 안타깝고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든다.

정부의 판단력보다는, 사태가 제발 여기서 종료되기만을 바라는 요행수에 차라리 기대고 싶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는, 긴박한 미래 정세에는 둔감한 채 지나간 과거에만 올인하는 정책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 정부가 그간 보여준 태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태가 이쯤에서 잘 종료되더라도 나중에 우방들로부터, '그 때 한국은 소극적이었지?'라는 식의 원망이나 불평을 받게 될 수도 있는데, 이런 것을 생각하면 가슴만 답답해진다...

정부는 부디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기대하되 최악에도 대비하는' (Hope for the best, Plan for the worst) 자세로 향후 외교안보 전략을 잘 가져가야 할 것이다. http://youtu.be/uUhSlWaKcS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