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 광복 70주년 기획 보도 [사진으로 보는 일제강점기 건축 기행]을 실었다. 전남 보성에 있는 '보성여관'을 소개하면서 앞뒤 문맥과 어울리지 않게 느닷없이 "여수∼광주간 남조선철도(현재의 경전선)까지 생겼고, 수탈은 더욱 용이해졌다."는 한 문장을 끼워 넣었다. 이 한 문장이 글 전체의 성격을 규정했다. 즉 '보성여관'을 지은 것은 수탈의 목적이요, 득량만 간척지 조성도 수탈 목적이요, 보성강 댐을 만들어 용수공급과 전기생산을 한 것도 수탈 목적이요, 당시 벌교 인구가 순천 인구보다 많았다는 것도 모두가 수탈과 관련된 것으로 규정해 버렸다. 한일합병에서부터 일본인이 한국에 들어오고 행한 모든 것이 수탈로 귀결되었다. 이 글뿐만 아니라 우리는 일본과 관련된 과거사(한일합병 기간)를 말할 때는 '강점(强占)'과 '수탈(收奪)'를 기본 인식으로 깔고 있다.
  
  한일합병 조약 전문을 보면 '한국 황제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양여(讓與)'하고, '일본국 황제는 이를 수락, 승낙'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 스스로도 왕조실록에 '양여'로 기록했다. 소유권을 넘기는 것을 양여라 하고, 요즘은 양도 또는 이전이라 한다. 그리고 합병은 '토지합병', '기업합병' 등으로 요즘도 자주 쓰는 말이다. 한일합병을 강점이란 용어로 대신하려면 무장한 일본군인들이 조선 황제를 잡아다 꿇어앉혀 강제로 이 조약에 서명한 사실 정도는 있어야 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합병이든 강점이든 힘이 없고 스스로 지탱할 수 없으면 남에게 넘어가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외환은행과 우리은행의 합병을 어느 일방의 강점이라 하지 않는다. 국가간에도 합병하고 분리한 예는 세계 역사를 찾아보면 많다. 그리고 우리가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싼 값에 물건을 들여오는 것을 수탈이라 하지 않는다. 강점(强占)이란 남의 것을 강제로 점유하는 것이고, 수탈(收奪)이란 강제로 빼앗는 것을 말한다.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점유했다던가, 조선産 제품을 강제로 빼앗아 간 사실은 내가 알기로는 없다. 벌교의 쌀값과 도쿄의 쌀값에 차이가 있었다고 수탈이라 하면 무식한 얘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