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9.1.)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매년 초청받아 참석하던 9월1일 ‘제주도 해병대의 날’ 기념식에 내가 참석하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전화를 주최 측으로부터 받았다. 제주해병전우회 회장(한○○)과 사무국장(조○○)에 의하면, 외부의 제의로 나에게 내빈석을 마련해 줄 수 없고 또 내빈소개 시에도 나를 소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해병대 사령부의 지시라고 해서 해병대에 직접 확인한 결과 해병대의 지시가 아님이 밝혀졌다. 그제야 “출처는 밝힐 수 없으나 외부 부처의 제의였다”고 실토하는 것이었다. 이는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는 것 아닌가? 과거 정부의 블랙리스트 작성이 적폐라며 청산하고 있는 마당에 현 정부 부처가 자신들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있으니 이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소위 왕따 신세, 즉 기피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제주 해병대의 날’은 6·25전쟁이 발발한 해인 1950년 9월1일 제주 출신 3000여 명(여군 126명 포함)이 해병 3·4기로 징집되어 제주항구를 떠났는데, 이 출정식을 기리기 위한 행사이다. 해병 3·4기는 바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고 강원도 두솔산 전투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매년 이 행사에는 제주도 지사와 해병대사령관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왔다. 나는 제주출신 예비역 장성이고 또 제주도에 귀향하여 살고 있어서 해병선배들의 호국헌신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5년째 참석하여왔다. 해병 3·4기 선배들도 제주 출신 장성이 참석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반가워했다.

초청장까지 받았는데 갑자기 불청객의 신세로 돌변된 것이다. 나는 우리 군과 국가안보를 해치는 일을 한 적이 없다. 나는 귀향 후 봉사활동으로 고향마을 공원을 만드는 자연보호 운동을 하는 촌부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동안 예비역 장성들에게 ‘유사시 의병이 되어 총을 들고 김정은의 수뇌부를 저격하자’고 제안했고. 또 기무사의 계엄 문건과 관련하여 여당과 언론이 쿠데타 예비음모라고 주장하자 반박논리로 ‘그것은 호헌계엄 문건이고 헌법이 규정한 군의 본연의 임무’라고 주장했으며. 문 대통령이 특별수사단 구성 시 육군 제외 지시는 ‘50만 육군을 얕보고 차별하는 조치로서 육군에 사과해야 하며 이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인 공평·공정·정의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한 게 전부였다.

그런 내가 왜 경계인물로 낙인 찍혀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예비역 장성도 이렇게 간섭받는데 현역장성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우리 현역 장성들이 정치논리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란다. 일전에 전 기무사령관이 오직 개인의 영달을 위하여 기무사 계엄 문건을 폭로, 우리 군과 기무사의 명예를 훼손시켰다. 또 육사에서도 청와대로부터 점수를 따려고 육사 아파트와 위병소에 그려져 있던 육사부대 마크를 지우는 일도 벌어졌다. 이상의 두 장군은 국가와 국민 그리고 군보다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복무한 군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군인은 모름지기 국가와 국민에 충성해야 하고 헌법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상관의 명령이라도 헌법에 위배될 시에는 복종해야 할 의무가 없다. 당장 별 하나 더 못 달더라도 후에 역사가 보상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요즘 전방에 설치된 대(對)전차 장애물 철거작업과 관련하여 책임 현역장군들은 6·25전쟁 교훈을 반추하기 바란다. 6·25전쟁 시 우리는 전차가 한 대도 없는 상태에서 북한이 무려 242대의 전차를 앞세워 공격해 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트라우마에서 아직도 벗어나오지 못한 상태이다. 기동장비야 기동성이 있으니까 뺐다가 다시 집어넣으면 되지만 對전차 장애물 같은 고정구조물은 한 번 해체하면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및 군축과 보조를 맞추어 우리도 군축을 해야지 우리가 먼저 옷을 벗을 필요는 없다.

지금 좌파 정부는 북한지역의 철도와 도로를 현대화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바, 이는 북한 기계화 부대의 기동성을 제고하는 조치로서 북한 기계화 군단의 전격전(Blitzkrieg: 블리츠크리그)을 허용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악몽이다. 게다가 그런 전격전(Blitzkrieg)을 막기 위하여 설치된 對전차 장애물을 철거한다는 것은 강도에게 대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이다. 6·25전쟁 시 적의 전차의 뜨거운 맛을 보고서도 이렇게 우둔한 짓을 하는 정권과 군대는 이 세상에 대한민국 말고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책임 있는 현역 장성들의 현실인식과 역할이 그만큼 절대적인 것이다.

국군은 국가 안보의 최후의 보루다. 장성은 그 보루의 최종 책임자다.

2018. 9. 4.
한철용(예비역 육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