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장을 하다가 나와 법무법인의 대표를 하는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로펌끼리 경쟁이 심해지니까 이제는 기업에서 입찰로 로펌을 결정하겠다고 해. 그래서 오늘도 브리핑을 하러 갔다왔어. 우리 로펌에서 어떻게 해줄 수 있고 가격은 얼마까지 할 수 있다고 제시를 하는 거지. 그런데 다른 로펌에 사건을 빼앗겼어.”
  
  그는 힘이 축 처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평생 품위를 지키며 살 것 같던 법원장이나 대법관이 사회에 나와서 갑자기 입찰에 참여하는 장사꾼 같이 변하는 모습을 본다. 예전에 그들은 정의를 보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돈을 보는 것 같다. 염라대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한 검사를 법정에서 본 적이 있었다. 재벌의 비자금을 파헤쳤던 그를 거물 정치인도 장군도 기업 회장도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그가 한 재벌회장의 변호사가 되어 법정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가 자기의 의뢰인인 회장에 대해 지나가는 소리로 이렇게 내뱉었다.
  
  “나쁜 새끼에요. 어제도 우리 로펌에 와서 모든 직원들에게 소리치면서 들었다 놓은 겁니다. 나 원 참.”
  
  그는 몹시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싫으면서 왜 변호를 하는지 의문이었다. 자기가 담당한 의뢰인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이 조금도 없이 사건을 변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거액의 수임료 때문에 코가 꿰어 끌려가는 염소 같은 신세인 것이다.
  
  나 역시 몇 년간 로펌에 소속되어 있었던 적이 있다. 로펌은 비즈니스를 하는 곳이고 목표는 돈이었다. 파트너 변호사마다 한달에 얼마를 버느냐가 그래프로 나타났다. 공동의 목표를 정하고 그 성을 함락시키는 작전도 있었다. 한번은 내게 재벌그룹 산하의 건설회사 사장을 만나 일을 맡아 오라는 회의의 결정이 났다. 파트너마다 회의를 통해 그렇게 일을 분담하는 것이다. 골프를 치거나 술자리를 만들어 상대방을 고객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업무였다. 재벌의 2세였던 건설회사의 사장이 식사자리에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그 로펌에 일을 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익이 거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돈을 줘 놓고 그중 오십퍼센트를 나에게 개인적으로 돌려 달라고 할 테니까요. 우리는 그렇게 비자금을 만들죠. 경쟁이 많아지면 팔십퍼센트를 도로 달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하겠어요?”
  
  그는 차라리 순진하고 솔직한 편이었다. 치열한 사건 유치의 경쟁 속에서 정의나 양심은 이미 없었다. 법을 빠져 나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로펌이나 변호사들의 실질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돈을 주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했다. 나는 내가 과연 그런 재능이 있는지 혼자 곰곰 생각해 봤다.
  
  까마득한 세월 저편 초등학교 삼학년 때의 한 광경이 우연히 떠올랐다. 쉬는 시간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한 아이가 딱지를 수북이 가지고 와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그걸 받아 챙기는 아이들마다 본능적으로 한 가지씩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미소를 지어 주기도 하고 달라고 사정을 하기도 했다. 가진 그 아이의 부하가 되기도 했다.
  
  나는 멀리서 멀뚱히 바라보면서 달라는 말 한 마디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도 속에서 그 딱지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어느 순간 나는 그 아이의 손에서 그냥 딱지 하나를 빼앗듯이 가지려고 했다. 그 순간 주먹이 날아왔다. 눈에 불이 번쩍하고 코피가 터졌다. 얻어맞고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던 기억이 영원히 뇌리에 새겨져 있었다. 그게 사회생활에 무능한 나의 본질적 모습이라고 느꼈다.
  
  중고등학교 때도 그런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사회성이 없었다. 그래서 혼자서 사는 변호사가 나의 직업이 됐다. 변호사를 하면서도 결국은 마찬가지였다. 부자인 친구들에게 부탁도 사정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사무실에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은 달라고 절실하게 빌었다. 예상치도 못하는 모르는 사람이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분이 내게 보내는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그 일을 했다. 그렇게 일을 해서 받은 품삯으로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가족이 밥을 먹고 살았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남의 비위를 맞추느니 적은 것에 만족하겠다고. 어차피 자신의 것이 아니면 어떤 방법을 써도 나의 것이 안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