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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속에 있으면서도 광명하에 있는 줄 알았다. 이 광명이 암흑이라는 것을 알게 한 단초는 남조선 삐라였다. 사실 단초일 뿐 처음엔 강하게 반발했다. 6·25를 일으킨 전범 문제였는데 삐라는 우리를 홀리려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한다.
  
  하지만 그게 단초라는 것은 차후 이런 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침략당했는데 오히려 3일 만에 서울 점령이 이상하게 느끼게 한 것이다. 그 동안은 수령님의 천재적 군사령도의 업적이라고 태어나 젖꼭지 물듯이 믿어 왔는데 처음으로 토를 달게 한 것이다.
  
  남북 누구 말이 진실일까? 도서관을 자기 집 다음으로 드나드는 습성이었던 나로서 아무리 문헌을 보아도 6·25는 미제와 괴뢰도당의 침략이었다. 문헌으로는 절대 못 찾아낼 것 같은 북한이지만 진실을 아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문헌이 아니라 체험자를 만나보면 된다고 생각해낸 것이다. 체험자는 주변에 수두룩했다.
  
  6·25 초기 참전자에게 자연스럽게 말 시켜보니 새벽 4시에 쳐들어갔다고 한다. 38선 주민에게 물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증오의 박물관을 세울 만큼 대표적 6·25 참극인 신천 대학살 사건도 살던 주민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학살자는 미제 승냥이가 아니라 동족인 빨갱이와 반동 간의 학살 악순환이었다는 것이다.
  
  철석같이 믿고 있던 진실이 도미너처럼 무너지는 속에 나도 모르게 육두문자가 튀어 나온다. 어느 정도 속이는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는 자동적으로 탈북할 결심으로 이어졌다.
  
  탈북하면 어디로 갈까. 당연히 또하나의 조국인 남조선으로 가야 하는데 그 또한 심중해야 했다. 밤낮 헐벗고 굶주린 남조선이란 세뇌교육과 선전 때문이다. 북보다 못한 남으로 갈 수는 없지 않는가?
  
  과연 남조선 실태는 어떨까? 남조선을 알아보자니 전부 욕들뿐이다. 할 수없이 그 욕들을 놓고 분석해 볼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욕인 <남조선문제>란 잡지를 참고했다. 남북한 생활수준은 월급을 비교해보면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찾아보니 자본주의 나라에서 최저인데 미국의 10분 1, 일본의 8분 1, 대만의 5분 1로서 15만 원이라고 한다. 난처한 것은 15만 원의 가치가 어떤지 모르는 것이다.
  
  역시 수많은 남조선 욕들 가운데서 찾아냈다. 남조선은 하루 자고 일어나면 인플레가 치솟는데 1딸라에 300원 하던 것이 700원으로 날개를 달았다는 욕이다. 욕은 욕이고 이 700원을 15만 원 월급에 나누어보니 헉! 200딸라가 넘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랄 정도인 것은 북한 평균월급이 1딸라 정도, 이보다 훨씬 높다는 연구사인 내 월급이 1.5 딸라 가치였기 때문이다.
  
  헐벗고 굶주린 남조선 월급이 공화국의 200배 넘는다는, 그것도 욕한 자료로 증명해낸 것인데···하여 뭔가 잘못 된 것이 아닌가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역시 최고의 방법은 체험자의 증언이라고 보았다.
  
  그러면 남조선 갔다온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없다고 봐야 하지만 의외로 수만명 있다는 간단한 사실이다. 그것은 조선족들이었다. 이들은 말조심도 없다. 중국 국적이기 때문이다. 개혁개방한 중국을 천국처럼 보는 북한 사람들인데 그 천국 사람들이 거침없이 말한다. '남조선은 중국보다 한 30년 앞서있으꾸마!' 남자는 노무자, 여자들은 시집가려 줄을 쭉 섰다고 한다.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진실에 빨려들어간 것이 나의 탈북 행동이었다. 이 해가 1990년 11월이다. 안내자도 없이 탈북하다나니 중국감옥, 북송 후 재탈북, 러시아 감옥 등 생사를 넘고 넘어 1995년 2월18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북한당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탈북자를 받지 않는다고 하여 UNHCR 제1번으로 등록하고 오게 되었다.
  
  나는 세상에 없는 것을 발명해내는 연구원이었다. 이 발명 중에 가장 큰 것은 남조선 진실을 발명해낸 것이다. 이 발명의 단초인 삐라를 그래서 날린다. 2000년 첫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부가 하지 않자 아무것도 없는 탈북자가 돌에서 꽃을 피우듯 대북풍선-.대형풍선을 개발한 원조가 된 집념의 동기이고 동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