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위험 경고를 6번이나 받고도
  시공사가 묵살했다는 기사는
  저리도록 아픈 내 기억을 또 불러냈다.
  
  4년 전 그분도 화재로 사망했다.
  비정규직으로 용접을 하며
  발전소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한 것.
  
  화재 사고의 유형과 경과는
  이번 이천의 물류창고와 판박이,
  쌍둥이처럼 아주 똑같다.
  하나도 다르지 않다.
  
  정규직들이 기피하는 위험한 작업은
  당연히 비정규직이 도맡아야 한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약자인
  탈북자 출신 계약직이 우선 맡는다.
  그 다음이 외국인 노동자.
  그 다음은 조선족.
  
  지방의 작은 발전소 현장에서 일하다
  예견된 화재로 돌아가신 그 분은
  우리 물망초학교 학생의 아버지였다.
  
  그 아버지는 북한에서 사무직으로
  나름 잘 나가던 분이었지만
  막상 탈북해서 한국에 오니
  막노동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공사판을 따라 지방을 전전하느라
  그 딸은 기숙학교로 운영되던
  물망초학교로 들어왔다.
  
  그녀는 예뻤다.
  눈이 왕방울만하고 아주 차분했다.
  책 읽기를 좋아해 공부도 잘했다.
  
  일반 고등학교에 다닐 때
  담임 선생님이 탈북자 전형을 몰라
  대입에 실패하고 물망초학교로
  일종의 재수를 하러 들어왔으면서도
  그 고등학교나 담임선생님을
  원망하거나 속상해 하지도 않았다.
  
  아주 담담하고 조용했다.
  '1년 더 준비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더 나은 것, 아니겠느냐'면서.
  
  놀랍도록 진중하고 성실했던 그녀는
  비록 원하던 의대엔 가지 못했지만
  좋은 대학에 수시로 입학했다.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러던 늦봄의 어느 날,
  그녀의 아버지가 화재현장에서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었다며
  그녀가 울면서 전화를 했다.
  
  서울의 화상전문병원으로 바로 이송하도록 조치하고는
  우리 물망초가 이른바
  보호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일은 그 다음부터 일어났다.
  
  물망초가 돕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 발전소의 노조가
  자기들이 주도해서 손해배상금을
  많이 받아 주겠다며 나선 것이다.
  
  그 아버지는 비정규직이라
  노조원도 아닌데, 노조원들이
  미성년자인 그녀를 수시로 불러냈다.
  
  단호하게 거절하라 이르고
  우리 물망초 간사들이 나서서
  회사의 불법행위 등을 지적하고
  노조가 받아주겠다던 금액보다
  훨씬 많은 손해배상금을 받아냈다.
  재발방지 요구와 함께!
  
  그러면 뭐하겠는가?
  그녀는 아버지를 여의였는데...
  
  여전히 제2, 제3의 그녀 부친같은
  힘없는 이들이 화마로 쓰러지는데...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더니...
  비정규직 없는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겠다, 하더니 해마다 사람들은
  불구덩이 속에서 까맣게 죽어간다.
  
  이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여주겠다는 말에 속아
  오늘도 굶주린 배를 부여안고
  어버이 수령탑 앞에 서서
  머리를 조아리는 북녘의 동포들처럼
  
  우리는 곧 나올 재난지원금 앞에서
  모두가 침묵하며 통장만 보고 있다.
  
  다음 번엔 내가 그 불구덩 속으로
  들어가야 할 순번인 것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