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2일 낮, 남쪽 항구에는 폭우가 내리퍼붓고 있다. 장맛비다. 주룩주룩 한 줄기 소낙비가 쏟아지다가도 금새 변덕을 부려 햇볕이 나기도 한다. 가랑비가 되었다가 다시 뇌우(雷雨)가 퍼부으며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엎어 씌우기도 한다. 여름 장마철의 전형적인 날씨 변덕이 수시로 나타난다.

잠시 쏟아지는 소낙비를 피해 해운대 명당 ‘오산마을’의 한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전직 국립대 총장 J 박사, 원로 Y 의학박사 등이 일행이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세상 돌아가는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던 중 잠시 눈길을 돌려 창박을 내다보니 오산교회 울타리밑 풍경이 정겨워 보였다. 붉고 흰 봉숭아와 접시꽃이 비를 맞으며 활짝 피어 있었다.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꽃밭의 풍경이 마치 어릴적 고향동네의 울타리밑 같아 보였다. 비가 내릴때면 모종삽으로 꽃모종을 옮겨 싶던 어머니 얼굴도 떠올랐다.

“울밑에 선 봉선화야”란 오래된 대중가요가 떠올랐다. 접시꽃을 팔아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이 된 어느 탈선 시인도 문득 떠올랐다. 봉숭아와 접시꽃은 여러가지를 떠오르게 했다. 봉숭아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건만 “울밑에 선 봉선화야”를 눈물 흘리며 불렀던 일제치하 이땅의 사람들과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해졌다. 

일행은 “울밑에 선 봉선화야”를 콧노래하며 타관 땅 돌고 도는 나그네의 고달픈 인생사를 서로 위로했다. 봉숭아가 안겨준 오늘의 명상은 추억과 회상, 향수와 시국을 돌아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