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와 뇌성마비

 
   아침에 일어나 나의 작은 서재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를 마치는 순간 전화가 왔다. 지방 교도소 안의 죄수에게서 온 것이다. 살인죄로 징역을 선고받은 그는 십사 년째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 인권이 향상되어 요즈음은 감옥 안에서도 한 달에 한두 번씩 전화를 할 권리가 있다. 그는 세상의 아무에게도 전화를 할 사람이 없는 외로운 존재였다. 밖에 있을 때 사람들은 포악한 그를 보고 모두들 두려워하며 벌벌 떨었다. 나는 그의 전화를 받아주고 있었다.
  
  “형님, 밖은 홍수가 나서 난리라고 하는데 잘 계시죠?”
  그가 안부를 물었다.
  
  “정말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인데 인사말은 생략하자. 앞으로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에이 나같은 사람은 행복을 포기했어요. 아내도 자식도 형제도 모두 날 버렸는데요 뭘. 이제는 얼굴들도 생각나지 않아요.”
  
  그의 목소리 저변에는 분노와 원망이 묻어 있었다. 그가 그렇게 된 원인은 자신에게 있었다. 그는 가족을 학대하고 형제를 미워했다. 술 먹고 행패를 일삼는 그에게서 모두 떠나간 셈이다.
  
  “무슨 마음인지 알아, 하지만 이제부터는 스스로 홀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남은 인생마저 망치고 지옥으로 끌려갈 것 같은데.”
  
  여러 번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던 그는 철창 안에서는 온순하다가도 석방이 되면 다시 마약에 손을 대고 포악해져 주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저 같은 놈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가 물었다.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봐. 마약에 취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성경을 읽고 성령에 취하면 그 안에서는 물론이고 석방이 된 후 나머지 인생도 봄비에 젖어 걷는 것처럼 행복한 느낌을 받을 거야.”
  
  “나름대로 성경을 읽고 형님이 권한 대로 시편 23장을 천 번이나 썼는데도 그런 걸 모르겠어요.”
  “성령이 그분의 뜻에 따라 때가 되면 찾아오시겠지. 알리바바의 요술램프같이 부르면 곧장 달려오시는 존재는 아니지. 네가 모르는 사이에 아침이슬 같이 와서 마음을 촉촉이 젖게 할 수도 있고 말이야.”
  “하여튼 알겠어요. 노력해 볼게요. 주어진 시간이 다 됐네요.”
  
  전화가 자동적으로 끊어졌다. 그는 빈민촌에서 자라났다. 어려서 동네 불량배들과 어울려 범죄의 세계 속으로 빠졌다. 마약을 하고 감옥을 드나들었다. 그는 오랫동안 징역생활을 하면서 어느새 나이가 환갑이 됐다. 하늘 아래 혼자인 고독한 노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며칠 전 뇌성마비로 어려서부터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여성이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었다. 그는 혼자 밥을 먹을 수도 화장실을 갈 수도 없었다. 잠을 잘 때도 이불을 덮지 못하고 보자기 하나만 덮는다고 했다. 이불에 파묻히면 혼자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의 몸을 가지고 나온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의 길다란 흰머리가 젖혀진 머리 뒤쪽으로 늘어져 있었다. 그가 나이 환갑에 가깝도록 살아왔다는 사실이 기적 같았다. 그에게 목욕을 시켜주는 봉사를 했던 여인은 돌아가면서 몸을 쓸 수 있다는 게 행복인 걸 깨달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몸으로 긴긴 세월을 살아온 것이 과연 행복인지 불행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입의 근육도 굳어진 그가 내게 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 몇 마디를 듣기 위해 나는 두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렸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어야 돼요?”
  그의 질문이었다. 감옥 안의 죄수에게도 눈앞에 누워있는 움직이지 못하는 그에게도 나는 뭔가 위로와 희망의 말을 해주어야 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성경속 욥의 친구들처럼 공허한 껍데기 말뿐이다. 그래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살아온 이 세상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고통을 참고 견디는 잠시 통과하는 훈련장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남보다 몇십 배 몇백 배 고통을 잘 견디셨으니까 앞으로는 인간이 상상하지 못하는 영원히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순간이 아닐까요?”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게 인생이 아닐까. 변호사인 나는 등에 진 짐이 무겁다고 절규하는 사람에게 그 분과 그의 나라를 소개할 뿐이다. 그리고 그 분이 성령으로 지금 여기에 오신다면 감옥에 있는 사람이나 병이 있는 사람이나 그 마음속에 하늘나라가 내려온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