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 어느 지역이나 알량한 돈 몇 푼 가진 토호(土豪)들이 관리(官吏)들과 결탁하여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며 노다지를 캐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운 때가 잘 맞아 떨어지면 수천억, 또는 수조 원대의 개발 차익을 낚아채기도 한다. 그러나 재수(財數)가 없으면 공무원과 토호들이 한꺼번에 옥(獄)살이를 하는 것이 다반사다. 법이 살아 있는 경우에 그렇다. 권력과 짜고 치면 당대에는 무사한 경우도 있다.

지역 토호와 권력이 손잡고 저지르는 부정부패를 흔히들 토착비리(土着非理)라 하고 큰 권력과 짜고 치며 놀아나는 것을 권력형 비리 또는 권력형 범죄라고들 한다. 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자 부산시 경제부시장 유 모 씨의 비리범죄행위에 대해 “전형적 탐관오리”라고 공판검사가 지적했다. 일개 중앙부처 국장의 뇌물수수 비리가 “전형적 탐관오리”라고 한다면 국무총리에다, 장관, 국회의원을 지낸 자의 경우는 “왕초 탐관오리”란 지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해운대해변의 펄럭이는 현수막에 적힌 구호(口號)들을 하나하나 읽어보자.

“천혜자원 동백섬(문화재 46호)을 파괴하는 마리나 조성사업 및 공유수면 매립 절대 반대”
“공공재인 동백섬 공유수면을 매립하여 OO에게 땅을 주는 것은 특혜다”
“자연공원 동백섬 파괴하는 공유수면 매립 마린시티 입주민들 결사반대”
“특정 기업을 위해 동백섬을 팔아먹는 부산시와 해수부는 각성하라”
“특정 기업에게 동백섬 일대를 통째로 갖다 바치는 해수부와 부산시는 사업계획을 철회하라”
“부산시와 해양수산부는 각성하라”
“운촌항 마리나 개발이 왠 말인가. 동백섬 죽어 간다”

해운대를 비롯한 부산시민들이 이렇게 들고 일어난 이유는 부산시와 해양수산부가 원인 제공자다. 부산시와 해양수산부가 자연문화재 46호인 동백섬(冬柏) 앞바다를 매립하여 요트계류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마리나(Marina) 조성작업’을 추진하면서 시공사업자로 부산의 토착 기업인 ‘S건설’과 협의 중이란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고 있다. 부산시와 해양수산부의 자발적 추진인지 건설회사의 요청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관할 해운대구청은 여론에 대한 공청회까지 열어 찬반여론을 확인한 뒤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동백섬 앞바다는 파도를 정면에서 받는 해역으로 마리나 조성해역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시민들이 들고일어나고 있는 것은 ‘S건설’ 측에도 책임이 있다. S건설은 일반건축물의 건축허가가 어려운 곳에 해양스포츠시설 건축이란 명분 아래 기부체납 조건으로 동백섬 입구 공원 부지와 해수면 일대에 요트 간이(簡易) 계류장과 부품 등 요트 관련자료 전시관 용도의 건축허가를 받아낸 뒤 수백억 원대를 투자하여 시설을 확보했다. 그러나 주된 용도의 요트 관련자료 전시는 형식적으로 일부 설치하고 불고기 식당과 커피숍 등 영업장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요트 계류장이 설치된 해수면은 육수(陸水)와 해수(海水)가 만나는 기수(汽水) 해역인 데다 장산(萇山)의 자연수와 해운대 신시가지에서 흘러내리는 춘천(春川)의 하구(河口)수역이다. 인체로 말하면 항문에 해당된다. 요트 계류장으로는 적합하지 못한 해역이다. 태풍이 불어 닥치면 안전이 보장되지 않고 얼마 전 태풍 때 계류시설이 파손된 적도 있다. 부근 해상관광호텔도 태풍 ‘매미’ 때 파손된 바 있다.

부산시의 해안관리는 해안이란 특수성을 외면한 채 마구잡이식으로 건축허가를 내주는 것이 자연재해의 화근이 되고 있다. 영화 ‘해운대’의 한 장면이 재연되기도 한다. 부산은 해안 건축물의 경우 높이 90미터 이상은 제한하고 있다. 해운대의 명물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해운대 미포(尾浦)의 신축 주상복합아파트 LCT 같은 마천루는 최고 높이가 460미터나 된다. 해안의 자연조건을 무시하고 건축허가를 한 결과 이번 태풍 ‘마이삭’때 빌딩풍이 밤새도록 불어닥쳐 입주민들이 공포에 떨었다.

또 허리케인급 강풍에도 견뎌낼 수 있는 고강도 유리를 사용해야 함에도 초속 30~40미터에도 견뎌내지 못하는 강도 약한 유리창을 설치해서 수십 장의 유리창이 산산조각나기도 했다. 그 결과 입주민들은 빌딩풍에 시달리고 깨어진 창문으로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공포와 불안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입주민들은 아파트값 떨어진다고 쉬쉬하고 있지만 명품 마천루가 아니라 불안과 공포의 마천루가 되고 말았다.

부산시가 하는 매사가 그렇다. 명품 마천루 LCT 허가과정에서도 부산시와 고위 공직자, 시행사 관계자 등 여러 명이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토착비리가 남긴 더러운 유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