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직한 기자>
  
  요즈음은 오래 전 일기를 꺼내어 되새김질을 하기도 한다. 일기를 들추다 보니 십이년 전 사월 사일 도산공원 부근의 참치집에서 언론인 출신의 선배와 얘기를 하던 장면이 나오고 있다. 그는 내가 존경하는 모범답안 같은 정치부 기자였다. 항상 정권을 감시하고 바른말을 했다. 내가 그 선배를 존경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는 특종감을 접하더라도 취재원의 입장이 곤란해질 것 같으면 기사를 쓰지 않았다. 쉽지 않은 행동이었다. 작은 이익에도 눈이 돌고 손톱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세상이었다.
  
  정권에 밉보인 선배는 사표를 내고 시골로 가서 소나무를 기르고 있었다. 식당 벽에 달려 있는 텔레비전 화면에는 청와대 대변인의 얼굴이 확대되어 나오고 있었다. 이어서 정보통신위원장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대변인은 같이 저녁을 먹는 선배의 부하 기자였고 장관급인 정보통신위원장은 정치부 기자였던 선배의 회사 상관인 정치부장이었다. 아래나 위나 권력의 기류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갔는데 내가 좋아하는 선배만 구름 위에서 떨어져 땅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었다. 세상적인 시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정치부 기자들의 생리를 알고 싶어 에둘러 물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정치부 기자에서 청와대 대변인이 됐죠? 그 출세과정을 알고 싶은데.”
  
  선배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남의 단점을 거의 말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친한 나에게는 조금 마음을 열어놓는 셈이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대변인이 된 저 친구를 여당 출입을 시켰어. 정치적인 면이 있는 친구였지. 우리 기자들은 신문에 나는 것 말고 이면의 얘기들을 취재해서 회사 데스크에 보고를 하지. 그런데 저 친구는 회사로 돌아오면 국장·사장실을 돌아다니면서 윗사람들이 듣고 싶은 얘기들을 잘 해줬지. 그런 정치 지향성이 있으니까 정치인들에게도 잘 해줬고 당선될 대통령 후보에게 붙은 거지.”
  
  세상에서 성공하는 인물의 한 모습이었다. 정치부 기자 출신들의 한 모습일 것이다.
  
  “저기 장관급인 정보통신위원장과 함께 일했는데 저 양반 스타일은 어때요?”
  내가 물었다.
  
  “저 양반은 실적으로 신문사 정치부장이 됐다기보다는 회장이 찍어서 부장을 시켰어. 정치부장이 되고는 직접 장관실과 총리실들을 순방하더라구. 아마 그 무렵일 거야. 박철언이 권력의 핵심이 되어 월계수회를 조직한 거야. 내가 그 월계수회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쓰려고 하니까 정치부장인 그가 도무지 지면을 주지 않는 거야. 조그만 기사조차 못쓰게 했어. 나를 철저히 못살게 하더라구. 그러더니 갑자기 나보고 남미에 출장을 갔다 오라구 하더라구.”
  
  나는 대충 눈치를 챘다. 청문회에서 정치부장 출신 장관 후보가 정권 측에 언론사 내부정보를 제공해 온 사실을 문제 제기한 의원도 있었다. 선배가 말을 계속했다.
  
  “하여튼 정치부장은 내가 눈엣가시라 회사에서 나가기를 바라는 것 같았어. 그 양반이 육 개월 동안 정치부장을 하고 그만뒀어. 내가 보기에는 글을 쓸 능력이 부족한 분이었지. 하여튼 그 양반이 가고 내가 남게 된 거야. 그 양반이 갈 때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 나를 불러놓고 그동안 미안했다고 사과하더라구. 그 후로도 계속 권력 쪽으로 해바라기를 하더니 이번에 장관이 되더라구.”
  
  세상에는 인재들이 있는 두 군데의 풀장이 있는 것 같다. 거위가 흙탕물 속에서 열심히 짧은 다리를 움직이듯 권력의 옆으로 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사람들이 있다. 권력은 그들이 모여있는 풀에서 인재를 발탁해서 쓰는 것 같았다. 또 다른 한 군데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그냥 묵묵히 자기가 맡은 일을 소명으로 알고 해나가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런 사람들이 이 나라의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강직한 기자였던 그 선배가 그 신문사에 남아 있었더라면 정말 훌륭한 신문을 만들어 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