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立冬)의 쌀쌀한 하룻밤을 소백산(小白山) 자락의 품에 안겨 포근하게 보내고 왔다. 단풍은 이미 끝물이었고 둘레길 옆으로 펼쳐진 과수원에는 사과 따는 농부들의 일손이 바빴다. 그래도 소백산은 영산(靈山)답게 웅혼(雄渾)한 자태(姿態)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천년고찰(千年古刹) 부석사(浮石寺)의 석양(夕陽)은 눈부시었고 서산(西山)에 걸린 노을은 나그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영주(榮州)는 낙동강 상류 문화권의 중심지다. 유교(儒敎)와 불교의 성지(聖地)답게 부석사와 소수서원(紹修書院)을 비롯한 역사의 숨결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세상이 어수선하면 많은 민초들이 찾아드는 정감록(鄭鑑錄)의 금계동(金鷄洞)도 겨울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단종복위(端宗復位)에 앞장섰다가 관노(官奴)의 밀고로 참화를 입은 순흥부사(順興府使) 이보흠(李甫欽)에 대한 옛이야기가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해 줬다. 세조(世祖)의 보복으로 순흥부(順興府)는 폐부되고 이보흠 또한 처형을 당했지만 당시 순절한 인사들의 목에서 쏟아진 피가 7km나 흘러 내려가다가 멈췄다는 '피끝마을'(현재는 동촌부락) 이야기는 오늘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퇴계 이황이 썼다고 알려진 '경(敬)'자의 석각(石刻)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관광영주'에 대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소백기행에서 새롭게 알게 된것은 '선비의 고장 영주'가 '호반(湖畔)의 도시'로 모습을 가꾸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번 태풍 '마이삭'이 많은 비를 몰고 와서 '영주댐'이 물을 가두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만수(滿水)가 됐다고 했다. 영주댐은 댐 시설만 준공됐을 뿐 아직 부대사업 공사가 계속되고 있어 완전개방은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댐 중앙을 가로지르는 흔들다리 '용두교(龍頭橋)'와 '용미교(龍尾橋)'는 벌써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들고 있었다.수몰로 사라진 '평은역사(平恩驛舍)'의 복원과 유람선 운항 등이 이뤄지면 '호반의 도시, 관광영주'의 명성은 기대를 모으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영주댐은 부족한 수자원(水資源) 확보라는 긍정적 측면과 환경훼손이라는 부정적 견해가 오랫동안 논쟁거리였다. 지금도 만수가 된 뒤 나타난 녹조류의 등장은 환경론자들의 공격 대상이 되고도 있다. 이번 소백기행은 '선비의 고장 영주'가 '호반의 도시'로 새롭게 태어 나고 있음을 확인한 나들이였다.소백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역사의 숨결과 함께 새롭게 용틀임하려는 영주인(榮州人)들의 의욕과 기상을 느끼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