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자락의 품에 아늑하게 안긴 도시, ‘선비의 고장’ 영주(榮州)는 안동(安東)과 함께 낙동강 상류 문화권의 중심지이다. 국보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부석사(浮石寺)와 ‘석보상절’이 나온 희방사(喜方寺)와 비로사(毘盧寺)를 비롯한 불교 유적과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인 소수서원(紹修書院) 등 유교문화의 역사적 자산이 잘 보존되고 있다. 그래서 영주를 두고 유불성지(儒佛聖地)라고 흔히들 말하기도 한다.

‘선비의 고장, 영주’의 뜻을 같이하는 향인(鄕人)들이 모여 ‘사단법인 영주문화연구회’를 만들어 향촌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고 있다. <영주문화>라는 계간잡지도 발간하고 있다. 2021년 봄호가 통권 78호째이다. 필자는 고향에서 보내주는 <영주문화>를 통해 고향 소식도 듣고 ‘영주인(榮州人)’이란 자긍심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타관(他官) 땅 돌고 돌아 어언 60여 년이 되었건만 고향을 생각하면 어린애처럼 마음이 먼저 앞장서 달려가고 있다. 어릴 적 눈에 익은 아름다운 산천이며 순후한 인심이 나그네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음은 누구나 그리워하는 향수(鄕愁)요, 그리움이란 수구초심(首丘初心)이요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영주문화>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필진과 작품 내용, 장정(裝幀)이 아주 준수한 잡지다. 영주의 문화유산은 물론 영주정신(榮州精神)을 지키려는 노력 또한 아주 돋보이는 잡지이기도 하다. 2021년 봄호를 펼쳐보니 몇 가지 내용들이 눈길을 끌었다. ‘특집/ 영주, 그리고 철도 이야기’와 ‘영원한 대장장이 석노기 씨: amazon으로 간 영주대장간의 호미, 우리 전통 농기구의 맥을 잇는다’도 있고, ‘자연의 질서 雲行雨施’ 등이 필자 혼자서 읽고 넘기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자연의 질서 운행우시’는 오늘의 위정자(爲政者)들이 꼭 한번 읽어보고 국정 운영의 통치 철학으로 삼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해서 그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한다.

<영주시 부석면 용암1리 마을회관에서 용암2리 방향 400미터쯤 되는 지점에 넓고 야트막한 바위가 누워 있다. (중략) 이 바위 중앙에 가로세로 30센티미터 정도의 장방형 틀 안에 ‘雲行雨施(운행우시)’라는 글자가 초서로 새겨(石刻)져 있다. 필핵으로 보나 결자(結字: 글자의 짜임새)로 보나 장법(章法: 전체적인 어울림)으로 보나 범상치 않은 글씨다(石刻, 필자 첨). 

 

구름 雲(운) 자는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이 뭉실뭉실 떠 움직이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行(행) 자의 마지막 획을 길게 늘어뜨린 것이 역시 구름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느껴지게 한다. 雨(우)는 구름이 뭉쳐 빗방울이 만들어진 모습이고 施(시)의 끝 획을 사선으로 곧게 처리한 것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雲行雨施(운행우시)’는 구름이 비가 되어 내려 만물을 적신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제13권 천도(天道) 편에서 순(舜)임금이 요(堯)임금에게 천자(天子: 통치자)로서 마음을 어떤 데 써야 하는지에 대해 말한 부분이 있다. 

[舜曰, 天德而出寧, 日月照而四時行, 若晝夜之有經, 雲行雨施而.] 

“순 임금이 말하기를, 하늘의 덕이 있으면 나라가 편안해지고, 해와 달이 제대로 비치면 사철이 제대로 바뀝니다. 낮과 밤의 법도가 있고 구름이 흐르고 비가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됩니다.” 즉 모든 이치는 순리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천자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순리에 따라야 한다 뜻이다. 

이 글씨는 구한말 만석꾼 김규수(1865~1933)의 글씨로 보고 있다. 김규수의 자는 화일(華一)이고 호는 지암(止巖)이다. 김규수는 1882년 18세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 1902년 궁내부주사. 1906년 중추원 의관에 올랐으나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落鄕), 칩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규수는 ‘운행우수’의 석각을 통해 당시 순리에 거스르는 세력들에게 나라를 다스림에도 순리에 따라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당당하게 말하려 한 것으로 이 글의 필자 정용환(영주문화 편집위원)은 추정하고 있다.>

<영주문화>가 게재한 ‘운행우시’처럼 오늘의 이 나라 위정자들도 쓸데없는 허욕과 위선을 버리고 순리대로 마음을 쓰고 행동도 하며 순리에 따라 국정운영과 실천이 있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영주문화>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