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은 다르잖우?>
  
  이십 년 전쯤 딸이 결혼을 앞 둔 시점이었다. 정월 초 처가에 인사를 갔을 때 나온 화제가 아이들의 결혼 혼수였다. 처가의 조카들 중에도 결혼을 한 아이도 있고 또 혼기가 찬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나 법조인을 사위로 보려면 최소한 집은 마련해 줘야 된다고들 그래요. 그게 일반이에요.”
  
  작은 아파트 한 채 값만 해도 월급쟁이가 평생 받는 돈과 맞먹는 많은 돈이었다. ‘황금깃털’이라는 소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들을 결혼시키면서 모든 걸 주어버리고 무능한 아버지가 되어 버린 교사의 서글픈 얘기였다.
  
  “나는 귀족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인연을 사고 파는 게 싫어. 소박하게 시작해서 하나하나 행복을 쌓아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나의 속에서 거부감이 들끓었다. 내가 고시에 합격을 하고 사법연수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중매를 전문으로 하는 속칭 ‘뚜 마담’들이 검사나 판사를 할 사위감들을 찾아다녔었다. 부자집 딸들과 한번 만나게 해 주는 것만 해도 비싼 수수료를 받았고 결혼이 성사되면 높은 중개료를 받는다고 했다. 졸부 집에서 판사 사위를 보게 되자 판사의 부모에게 큰 돈을 준 적이 있었다. 전문 중매꾼에게도 억대가 넘는 돈이 수고비로 건너갔다. 부자집에서는 사위가 살 빌라나 아파트를 사주기도 했다. 우리들은 그걸 ‘매매혼’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사법연수원 교수가 우리들이 모인 강당에서 이런 말을 한 게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여러분 절대로 돈에 팔려가지 마십시오. 그 돈이라는 거 지금은 금액이 커 보여도 절대로 별 게 아닙니다. 세월이 조금만 지나가면 여러분의 손으로 직접 그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각자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젊어서 조금 편하고 화려해지고 싶다고 몸을 팔려고 합니까?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진실하게 사랑할 상대를 찾아 결혼하십시오. 그리고 행복을 찾으십시오.”
  
  그 연수원 교수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의 이 층에 있는 두 평짜리 쪽방에서 살림을 시작했었다. 양철 찜통을 들고 마당의 수돗가로 가서 물을 길어다 석유풍로에 밥을 지어 먹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면 따뜻한 온기가 도는 아랫목에 배를 대고 추리소설을 읽었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냄비에 우동을 끓여 김치와 함께 먹었다. 퇴락한 일본식 목조가옥에서 살던 내게 그 쪽방은 천국이었다. 가난에 절어 온 나는 결핍의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보다 못한 장모가 아파트를 얻어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걸 거절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으면 움막에 산다고 해도 나는 행복할 것 같았다. 처가의 신세를 지기 싫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내는 나중에 그 시절을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벌어서 처음으로 산 물건이 칠 인치짜리 들고 다닐 수 있는 흑백텔레비전이었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기쁨이 물안개 같이 가슴 속에 잔잔히 퍼진다. 그 작은 흑백화면을 통해 나는 ‘소설극장’이라는 프로를 열심히 보았었다. 직장에서 나오는 점심값을 아껴 주택청약통장을 마련하고 아파트 분양 때마다 아내가 아이를 등에 업고 추첨을 하러 다녔다. 변호사 개업을 하고 사다리를 한 단계 한 단계 오르듯이 돈을 벌어 살림을 늘려 나갔다. 결과보다 그 과정의 기쁨이 진짜 알맹이였다. 고생을 하지 않고 단번에 아파트를 얻는다면 자기 집을 구한 그 기쁨을 알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혼기의 딸을 둔 아내는 다른 것 같았다.
  
  “당신은 어려운 집 출신인지 모르지만 이제 우리 아이들은 다르잖우?”
  
  아내의 조심스러운 설득이었다. 내가 변호사를 개업할 때만 해도 전국에 변호사가 몇백 명 되지 않았다. 변호사라고 하면 지성과 재력을 가진 존경받는 직업에 속했다. 아내는 그걸 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고생하면서 시작하라고 하면 난 그럴 수밖에 없지.”
  딸 아이의 대답이었다. 그 표정에 섭섭함이 배어있었다.
  
  “난 내 자식에게만은 내가 겪은 고생을 다시 시키기 싫어”
  아내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 자리에 있던 의사를 하는 동서가 거들었다.
  
  “막상 아이들 결혼이 닥쳐봐. 엄 서방도 그렇지 않을걸”
  현실을 알라는 소리였다.
  
  나는 판검사나 의사같은 사위보다 인간 냄새가 나는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 회사원이던 착한 사위를 맞았다. 처음 인사를 왔을 때 자기 팔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으면서 아직은 무슨 냄새가 나는지 잘 모르겠지만 세월이 흐르면 인간 냄새가 나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던 사위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지 십 년이 되어 간다. 정이 깊고 반듯한 사람이다. 베트남에 가서 일하던 아들이 어느 날 베트남 며느리를 데려왔다. 예쁘고 순박한 아이였다. 착한 사위와 순박한 며느리를 데리고 밥을 먹으면서 인간은 무엇으로 살까를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