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어둠 속>
  
  나는 아주 어려서 독특한 장소를 좋아했다. 동네가 개발되느라고 집 공사들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건축 중인 집의 캄캄한 지하실에 숨어들어 가만히 있으면 평안이 오는 것 같았다.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 길가에 놓인 뚜껑이 덮힌 리어카의 어두운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히 있는 게 좋았다.
  
  동네에 이중으로 담이 있는 한옥이 있었다. 집과 축대 끝의 담 사이에 좁고 어두운 공간이 있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그 공간 속에 들어가 가만히 서 있다가 나오곤 했다. 아마도 원인 모를 편안함 같은 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육십 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어려서 살던 동네를 가보면 골목길 구석의 그 공간은 아직도 남아 유년의 질감을 내게 느끼게 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 그런 장면들을 더러 묘사하고 있다. 농밀한 어둠이 가득 들어찬 우물 속의 메마른 바닥에 줄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그는 혼자 앉아 있다. 우물 주변으로는 스산한 바람만 불 뿐 그 누구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우물의 깊은 바닥에서 그는 우물 위쪽으로 난 작고 동그란 허공을 본다. 어떤 때는 아예 우물의 뚜껑을 닫고 들어가 짙은 어둠 속에 함몰된다. 칼로 베면 덩어리로 잘라질 것 같은 어둠으로 그는 묘사하기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떤 때는 아주 오래된 신비한 고분 속에 사람이 유폐되는 장면을 작품 속에서 묘사하기도 했다.
  
  깊은 굴 속에서 안정감을 얻는 동물의 본능이 인간에게도 잠재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건 우물이나 굴을 빠져나올 가능성이 있을 때의 얘기다. 우물 속에서 올라갈 줄사다리가 없거나 깜깜한 막장에서 올라가는 길이 매몰됐을 때는 절망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런 게 엉뚱한 형태로 나타난 적도 있다.
  
  어느 날 꿈에서 나는 감옥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그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억울했다. 그곳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나갈 수가 없었다. 그곳에 있는 그 누구도 나의 말을 들어줄 기색이 아니다.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았다. 갇혀 있는 나는 절규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갇힌 나를 찾아온 변호사의 얼굴에서마저 빙글빙글 비웃는 표정이 감돌았다. 실망감이 들었다. 그는 나를 구해줄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몸부림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나의 책상이 보이고 그 위에 내가 보던 책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유로운 평범한 일상이 환희와 감사로 다가왔다.
  
  변호사는, 비유하자면 깊은 우물 속에 있는 사람을 들여다 보는 위치다. 감옥에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일이다. 편지 한 장을 받고 남쪽 도시의 외곽 벌판에 있는 눈 덮힌 교도소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 소년 시절 감옥에 들어와 장년이 될 때까지 징역생활을 하는 남자를 만났었다. 겨울 햇살에 철창 위의 눈이 녹아 물방울로 똑 똑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의 한(恨) 서린 얘기를 오후 해가 설핏해질 때까지 들어주었다.
  
  또 다른 경우도 있었다. 냉기가 가득한 이른 봄 삼십 년 동안 징역살이를 하던 사람을 만나 그의 처절한 삶의 얘기를 들어준 적도 있었다. 찾아가 봐주고 들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는 될 것 같았다. 법정은 그 인간의 내면을 파헤칠 수 없다. 형사나 검사도 내면을 모른 채 결과로 나타난 행위의 일부만을 파악할 뿐이다. 나는 감옥을 드나들면서 그들의 내면에 있는 얘기들을 듣곤 했다. 행위가 빙산의 일각이라면 내면은 수면 아래 있는 거대한 산 같은 얼음덩어리였다.
  
  하나님이 고깃집 숯불을 피우는 종업원의 입을 통해 내가 한 일의 의미를 알려준 적이 있다. 법조인들의 등산 모임이 끝나고 큰 식당에서 떠들썩하게 뒷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 자리에는 법원장, 검사장 등 기라성 같은 법조계 선배들이 가득 차 술잔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 무렵 내가 거지 출신 도둑을 찾아가 사정을 듣고 무료 변론을 하는 것이 신문의 귀퉁이에 작은 기사가 나간 적이 있었다. 종업원 청년 한 명이 말석에 앉아 있는 내 앞에 와서 갑자기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순간 옆에 있는 사람들이 의아한 듯 그 종업원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 청년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돈도 없고 가족도 없이 불쌍하게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주는 변호사가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법원장이니 검사장이니 하는 저런 높은 사람들을 저는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 삼십 년 징역을 사는 거지 출신을 변호해 주시는데 대해 제가 대신 감사를 드립니다.”
  
  그 청년의 한 마디가 강한 울림이 되어 퍼지고 있었다. 결국 인생이란 아픈 이웃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 성경 속에서 예수는 감옥을 찾아가 보아 주라고 했다. 힘들지 않은 일인데도 쉽지가 않다. 그냥 한번 들여다 보아 주는 것, 그게 절규하는 사람에게는 빛인 줄 알면서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