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이 지배하는 세상>
  
  지금도 그가 살인범인지 아닌지 나는 모르겠다. 그는 오랜 세월 징역을 살고 나와서도 자기는 억울하다고 하면서 재심을 청구하고 있다. 그의 의식 속에 살인은 없는 것 같았다. 그의 동생이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그의 결백에 대해 확신이 없다. 확신없는 변론은 회칠한 무덤이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사건들이 종종 있었다.
  
  기억의 들판 저쪽에 있는 그 사건이 발생한 때로 돌아가 봤다. 아마도 이천이년 촉촉한 봄비가 내리던 날이었을 것이다. 국수집에서 만난 친구 민 변호사의 부탁으로 사건을 맡게 됐다. 부장판사로 재판장을 오랫동안 하다가 변호사를 개업했다. 그가 점심을 사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기록을 열심히 읽어도 무죄라고 느껴지지가 않아. 오히려 유죄의 믿음만 점점 커져 가는 거야. 이런 상태에서는 도저히 무죄 변론을 하지 못하겠어. 아마도 오래 해 왔던 판사 시각이 굳어서 그럴지도 몰라. 다른 시각에서 한번 봐줘.”
  
  나는 그에게서 사건기록을 넘겨받아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 내용대로라면 그는 잔인한 살인범이었다. 구치소를 찾아갔다. 사건기록이 아닌 인간 그 자체를 보고 싶었다. 바짝 마른 체구에 유난히 누런빛이 도는 눈동자를 가진 사십대의 남자가 나타났다. 내가 그에게 말을 던져 보았다.
  
  “제가 기록을 보니까 살인을 부인하면 중형이 선고될 것 같습니다. 자백을 해서 정상참작을 받는 쪽으로 가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그를 살폈다. 그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도 감옥 안에서 잔꾀를 많이 배웠습니다. 버티는 것보다 안 했어도 한 것처럼 자백하고 재판장한테 싹싹 빌면 형이 훨씬 가벼워지는 걸 알아요. 또 범행을 부인하면 괘씸하게 보여서 중형이 선고되는 것도 압니다. 그래도 안한 건 안한 거지 어떻게 했다고 합니까? 사형을 당해도 안한 걸 했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는 갑자기 ‘흑’하고 내면의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듯한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정말 살인을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그가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저를 동정해서 오신 거라면 돌아가세요. 저 누구한테도 변호받지 않고 그냥 여기 감옥에서 죽을랍니다.”
  
  나는 그의 삶을 살펴보았다. 그는 비닐하우스에 혼자 살면서 채소를 키워 팔면서 살았다. 이웃들도 그가 성실하고 착하다는 평가였다. 그는 남는 채소를 이웃의 노인들에게 가져다 주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라는 평이었다. 도끼로 사람의 두개골을 깬 살인현장을 본 목격자도 흉기도 없었다. 그가 범인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몇 사람의 추측이 증거였다. 그렇게 말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찾아가 만났다. 검사 앞에서 참고인 진술을 하고 검찰측 증인으로 채택된 그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그 형한테 잘했었어요. 그리고 그 형이 나무와 채소를 팔아서 번 돈을 많이 꿔 썼죠. 그런데 그 형이 석방이 되면 골치가 아파요. 돈도 갚아야 하고 혼도 날 것 같아요.
  그래서 검사한테 가서 충분히 그 형이 사람을 죽일 만한 나쁜 놈이라고 진술해 줬어요. 월남전에 참전해 인간백정을 한 놈이라고 했죠. 그 후에도 공수부대에서 근무했다고 말해 줬어요. 검사가 아주 좋아하면서 진술을 절대 번복하지 말라고 하던데요? 아마 그 형한테 빚진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 형이 몸도 날렵하고 주먹도 세고 무섭거든요. 나오면 골치 아파요.”
  이해관계에 따라 사람들은 그렇게 악독해질 수도 있었다.
  
  나는 그 사건을 맡아 끝까지 무죄 변론을 전개했다. 마지막에는 결정적인 검찰측 증인이 나타났다. 피해자가 도끼에 맞아 살해되기 며칠 전부터 그 주위를 배회하던 그를 보았다는 목격자였다. 그 아파트에서 박스를 줍던 여자였다. 그 여자는 그를 보더니 배회하던 남자가 틀림없다고 증언했다. 피해자의 언니인 여자가 법정에 나와 그를 보더니 겁에 질려 기절할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절규했다. 피해여성과 사귀던 사람이 그였기 때문이다. 그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선고되는 순간 그는 억울하다면서 재판장석을 향해 개구리 같이 튀어 올랐다. 뒤에 있던 교도관 네 명이 미식축구를 하듯 그에게 달려들어 제압했다. 형이 확정됐다. 그는 수감생활을 하면서 감옥 안에서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고소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무고죄가 되어 추가된 형을 선고받았다. 긴 세월이 흐르고 얼마 전 그가 석방이 됐다. 나는 지금도 진실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예전에 강력계 형사 한 명이 한 이런 말이 떠오른다.
  
  “골치 아프면 범인으로 지목한 놈의 머리털 하나를 몰래 살인현장에 가져다 놔요. 그걸 채취한 과학수사반의 감정서에서 유전자 감정서가 나오면 판사가 아니라 하나님도 무죄를 선고하지 못하죠.”
  
  변호사를 하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검은 우물 바닥을 볼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