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화면에 백두 살의 김형석 교수가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검버섯이 핀 얼굴에 호수같이 잔잔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 눈앞에 닥친 칠십대를 통과해서 살아본 사람이었다. 그 시간을 내가 어떻게 보내야 할지 그의 말에 힌트가 있을 것 같았다.
  
  “제가 칠십 육세가 됐을 때였어요. 팔십대 말의 선배와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내 나이를 묻더라고요. 그래서 말씀드렸더니 ‘참 좋은 때요’라고 하시더라구요.”
  
  인생이 그런 것 같다. 나이가 오십이 됐을 때 나는 이미 늙은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의 시점에서 그때를 보면 한참 젊었을 때 같은 느낌이 든다. 십년 후에 지금을 돌이켜 보면 또 젊어보일 게 틀림없다. 지금이 가장 젊은 순간인 걸 비로서 알게 된 것 같다. 김형석 교수가 말을 계속했다.
  
  “저는 사람의 정신력은 늙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기억력이 떨어지면 대신 사고력과 창조력이 늘어가는 것 같았어요. 뇌의 기능은 좀처럼 늙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퇴직 후에도 열심히 공부했어요. 같은 나이의 철학교수인 김태길 교수나 안병욱 교수도 구십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했죠.”
  
  톨스토이는 노년에 이태리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주위에 보면 노년에 본격적인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교수를 하던 고교 동기 한 명은 주위와의 연락을 거의 두절하고 삼 년간 도서관을 다니면서 ‘장자(莊子)’를 연구하고 책을 발간했다고 들었다. 대학 선배 한 사람은 퇴직 후 지리산 속에 들어가 십일년째 참선 수행을 하면서 불경을 연구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
  
  젊어서는 빵과 의자를 위한 공부였다. 외국어를 잘하고 전문분야에 능통해야 안정된 직장과 승진을 할 수 있었다. 늙어서 저세상이 가까워지니까 이제야 삶의 본질과 다른 세상이 궁금해지는 것 같다. 영어단어 하나를 공부하기보다 여러 경전을 읽으면서 그 주인공들이 순간순간 어떻게 난관을 헤쳐나갔나를 살피지 못했던 게 아쉬운 생각이 든다. 요즈음 나는 유튜브에서 ‘철학’을 검색해서 거기서 튀어나오는 여러 강좌를 들어보고 있다. 어느 날 화면에 남방셔츠에 바지를 입고 앉아 있는 퉁퉁한 얼굴의 장년 남자가 보였다. 칸트철학과 동양철학을 강의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저는요 시간이 나면 도서관에 가서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구석 자리에서 화엄경을 읽고 싶어요. 산 속에 들어가서 도(道)를 닦는다고 하거나 절에 가서 중이 되도 제대로 공부를 하는 게 아닌 걸 알았어요.”
  
  그는 일찍부터 그런 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 보였다. 연세대 철학과를 나오고 성균관대학원에서 사서삼경을 공부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명상수련도 하고 다양한 분야를 관찰한 것 같아 보였다.
  
  “산 속에 들어가 혼자 도를 닦는 사람들을 보면 아침에 일어나면 점심을 뭘 만들어 먹을까를 생각하느라고 바빠요. 점심이 되면 저녁은 어떻게 하지가 관심사구요. 저녁을 먹으면 명상한다고 잠시 앉았다가 자요. 텔레비전 프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에서처럼요. 그렇게 하면 산 속에서 사는 데는 달인이 되는 거죠. 그런데 다시 도시에 나와 사는 건 적응이 되지 않구요. 도를 닦겠다고 산에 간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 것 같더라구요.”
  
  그의 말은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있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절에 가서 중이 되는 것도 그래요. 도를 닦으려고 절에 가지만 거기도 군대 생활 비슷해요. 머리를 깎고 유니폼인 승려복을 입고 그 안의 규칙을 지키면서 일을 해야 하죠. 그 시스템에 있다 보면 도가 멀리 있는 거죠.”
  
  그의 말은 일면적이지만 뭔가 강하게 찌르는 게 있는 것 같았다. 그가 강의하려는 본질인 ‘칸트철학’이 나왔다. 나는 지적 허영심인지 몰라도 사십대에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의 철학서를 번역판으로 읽었다. 지적 허영이라고 한 것은 단 한 줄도 이해를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읽어봤다고 하기 위해서 자를 대고 한 줄 한 줄 넘어갔을 뿐이었다. 말을 하는 젊은 강사가 칸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칸트는 신이 존재하고 초월적인 세계가 있다고 그래요. 인간의 영혼이 영구불멸하고 말이죠. 칸트는 인간은 적극적으로 신과 영혼불멸을 요청해야 한다고 하죠. 그런데 그 초월적 세계는 자기가 경험하지 못해 알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감으로 감지할 수 있는 현상계에 대해서만 자기는 논리로 설명했다는 거죠. 그게 순수이성의 핵심이죠.”
  
  그가 잠시 말을 끊고 옆에 있는 작은 하얀 칠판에 글을 쓰면서 덧붙였다.
  
  “칸트의 실천이성이라는 것도 관념적인 용어들이 현란하게 많아도 따지고 보면 양심이라는 한 마디예요. 양심대로 살라는 거죠. 양심이 시키는 대로 말이예요.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뭔가요? 그 양심이 아닌가요? 서양철학을 공부해보면 웃겨요. 사차원 초월의 세계를 인간의 글과 말로 논리로 표현하려고 하니까 그게 되지도 않고 복잡하죠.”
  
  그 젊어 보이는 강사는 남이 가지지 못한 예지력이 있어 보였다. 순간적으로 그에게서 흘러나온 어떤 걸 받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