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프로그램을 능숙하게 진행하는 인기 연예인이 있었다. 타고난 말솜씨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흡인력 같은 것이 있었다. 자선 봉사를 위한 마라톤 완주코스에 도전하는 그의 모습을 화면에서 보기도 했다. 그는 대중의 우상이었다. 흙수저 출신인 그는 사업으로도 성공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똑똑한 그를 미국의 레이건 같은 대통령감으로 얘기하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 그의 스캔들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뜨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은밀하게 여대생을 만나 놀다가 성폭행을 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이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었다. 여러 시간 얘기하면서 그 여성을 관찰했다. 그 여성에게서는 원인 모를 어떤 모멸감과 함께 돈을 받아내자는 저의도 엿보였다. 모멸감은 여성으로서 존중받지 못했다는 그런 감정 같기도 했다.
  
  나의 아내는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인 그의 팬이었다. 힘들게 성공한 그의 앞길을 막지 말고 도와주라는 것이다. 유명인으로 욕구를 억압하면서 살자면 그렇게 몰래 여자들을 만나 숨을 쉴 기회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일리가 있었다. 듣고 보니 별 내용이 아니었다. 카페에서 옆에 있던 여성과 주차장으로 갔다가 거기서 순간적으로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순응할 것 같던 여성이 갑자기 다른 태도를 보이자 그는 당황해서 달래기 시작했던 것 같았다. 언론은 좋은 먹이를 본 것 거처럼 달려들었다. 합의를 하고 그가 기자회견을 해서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면 잠잠해질 사건 같았다.
  
  나는 여성을 대리해서 조용히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그러나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의 입장은 다른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변호사를 보내어 그날 밤 일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 주면 섭섭지 않게 인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건 아니었다. 여성의 말도 있었고 뭔가 찜찜한 게 있는 것 같았다. 환호를 받는 스타는 현대의 영웅이었다. 팬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자회견을 하는 그의 말만 듣고 싶어 했다.
  
  나는 진실은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 여성을 속칭 ‘꽃뱀’으로 만들어 버리자는 얘기였다. 그러면 나는 꽃뱀을 도와준 공갈방조범이 되는 것이다. 내가 처음에 품었던 선의와는 달리 나에 대한 온갖 비난과 험담이 전해져 왔다. 내가 중간에서 뒤틀어서 그들의 계획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도 힘을 동원하면 당신 이상 할 수 있는 사람이요. 나이 먹은 사람이 좀 똑똑히 행동해요.”
  
  그와 그의 변호사가 하는 연출에 따라 움직여 주지 않았다는 데 대한 오해인 것 같았다. 그 얼마 후 나는 그 사건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피해 여성이 외국으로 가서 행방불명이라는 기사가 났다. 누군가의 회유를 받고 그렇게 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유명변호사들이 붙어 화려한 법정 드라마가 전개되는 것 같았다. 차 안에서 성폭행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그가 최고급 외제 승용차를 반토막으로 잘라 검증자료로 제공했다는 기사를 보기도 했다. 무죄가 선고되고 그가 기자회견에서 팬들에게서 박수와 함께 위로의 꽃다발을 받는 걸 봤다.
  
  그 후 이상한 말이 전해져 오는 걸 들었다. 판례 하나를 만드는 데 거액이 들었다면서 그가 사건을 수사했던 형사들과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는 내용이었다. 어쨌든 그는 완전한 승리자였다.
  
  얼마 전 나와 친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살을 했다. 인터넷으로 여직원에게 성적 내용이 담긴 글과 자신의 사진을 보냈다가 고소가 되려고 하자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인 이재명 도지사는 성관계를 폭로한 한 여배우와 오랫동안 치열하게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변호사를 하면서 여러 형태의 모습들을 보곤 한다. 토스토엡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 소냐라는 여성이 마지막에 외친 것처럼 죄를 세상에 외치고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며 벌을 기다리는 건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