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사진틀 속에서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어머니가 육이오 전쟁 중이던 그날 총살당했으면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 인민군 전사 얘기를 내게 했었다.
  
  전쟁이 터지고 사흘 만에 서울은 골목마다 붉은 깃발이 휘날렸다. 대학을 다니던 아버지는 마루 밑에 구덩이를 파고 숨어 있었다. 아마도 학교 내의 좌익학생들과 이념적 지향이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어머니도 단순한 주부였다. 어머니는 여맹위원장이 되라는 권고를 거절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어머니의 인상은 좋지 않았다.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에서 성당의 신부가 공개처형을 당하는 처참한 광경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머니 기억의 영상 속에는 파놓은 흙구덩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독일인 신부가 있었다. 평소 다니던 성당의 인자한 신부였다. 공산당원이라는 사람이 신부의 등 뒤에서 총을 쏘자 신부가 앞의 구덩이로 엎어지듯 들어가던 장면을 어머니는 내게 얘기해 주었다.
  
  어머니에게 남조선 해방이라는 건 행정관청의 이름이 바뀐 것이었다. 파출소가 내무서로 이름이 바뀌더라고 했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그곳에 불려가서 아버지가 있는 곳을 대라는 추궁을 받으며 벌을 받았다고 했다. 그들 앞에서 양손을 들고 한쪽 다리를 드는 벌이었다. 힘이 빠져 손이나 들었던 다리가 처지면 완장을 찬 사람이 곤봉으로 어머니의 어깨를 내리쳤다고 했다.
  
  그렇게 뜨겁던 그해 여름이 지나고 바람 속에 가을 기운이 묻어날 즈음이었다. 먼 곳에서 쿵 쿵 하며 희미하게 포를 쏘는 소리가 들리던 날 새벽 따발총을 어깨에 멘 인민군이 집에 와서 문을 두들겼다. 문을 열어주니 수염이 텁수룩한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인민군이 서 있었다. 어머니는 순간 삶의 마지막인 걸 직감했다. 인민군들이 후퇴하기 전에 반동으로 찍은 집마다 한 사람씩 끌고 가 처형한다는 소문이 은밀하게 돌고 있었다. 방에는 세 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포대기에 싸서 업고 늙은 인민군을 따라 아직 어둠이 짙은 골목길로 나섰다.
  
  두만강가인 회령에서 자란 어머니는 해방 다음 해에 결혼식을 올리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신랑을 따라 서울로 왔다. 그렇게 서울생활 삼년 만에 갑자기 반동 가족으로 분류되어 죽어야 하는 운명이 된 것이다. 북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의 얼굴이 머릿속 화면에 떠올랐다. 어머니가 인민군의 뒤를 따라 동대문을 지나고 종로 오가 부근으로 갔을 때였다. 앞에 가던 늙은 인민군이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보면서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아주머니 나도 남조선 사람이요. 우리 가족이 여기 종로 오가에 살았었소. 나는 좌익으로 월북을 했다가 해방전쟁의 전사가 되어 다시 서울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내 가족이 어디에도 없는 거요.”
  
  어머니의 눈에 수염이 더부룩한 인민군 전사의 얼굴이 비통해 보였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아주머니, 이 모든 게 우리 모두 불행한 시대를 만난 탓이요. 내가 죽이지 않고 살려서 돌려 보내줄 테니 아들 키우고 사시오. 내 집사람하고 아들 새끼 생각이 나서 차마 명령대로 그렇게는 못하겠소.”
  
  어머니의 명줄은 그렇게 이어졌다. 그 인민군이 잘 키우라고 한 어린 형은 그 다음 해 다시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하려고 내려올 때 피난하는 어머니와 함께 가다가 죽었다. 어머니는 나중까지도 그 인민군 전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인 것 같았다. 좌익과 우익으로 편을 갈라서 서로 대립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말이나 글이 아니라 총을 손에 들면 그런 극한적인 전쟁과 죽음이 생기는 것 같다. 그 늙은 인민군 전사의 가슴 밑바닥에는 사상보다 짙은 휴머니즘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
  
  반공을 국시로 하는 이 나라에서 나는 철저히 공산당을 증오하도록 세뇌되어 자라났다. 북한 역시 남한에 사는 우리들을 미워하도록 사상교육을 했다. 고성의 휴전선 지역을 통과해 금강산으로 간 적이 있었다. 북측 검문소의 낡은 나무탁자 뒤에 앉은 군인의 붉은 눈동자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사상교육을 받고 미움에 길들여진 로봇 같다는 느낌이었다.
  
  금강산의 한적한 온천탕에서 혼자 목욕을 즐겼다. 남북관계가 경직되어 방문객이 줄어들었을 때였다. 휴게실에 관광객은 없고 군복을 풀어헤친 북한군 병사 몇 명이 대형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직 소년 티가 가시지 않은 얼굴들이었다. 텔레비전에는 한국드라마 ‘제5공화국’이 방영되고 있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검은 라이방을 쓰고 권총을 찬 이학봉 중령과 참모총장을 공격할 계획을 짜는 장면이었다. 북한군 병사들은 그 장면을 보고 납득이 안되는 듯 어이 없어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주입식으로 꾸겨 넣은 설익은 사상을 본 것 같았다. 관념이고 허상인 집단적 이데올로기보다 개인 개인이 소중한 게 아닐까? 자기 아내와 자식을 생각해서 어머니를 살려주었던 늙은 인민군 전사 가슴 속에는 사상이 아니라 사랑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나님은 성격이 급한 사람이나 느긋한 사람이나 다 필요한 그릇으로 쓰시지 않을까. 이런 사상이든 저런 사상이든 사랑이 없으면 그냥 울리는 꽹과리일 것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