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종암동 드럼학원>
  
  이웃에 사는 칠십대 중반의 정 회장이 노년에 드럼을 배운다고 했다. 아파트 상가의 귀퉁이에 있는 음악실에서 개인지도를 받는다고 했다. 그를 따라가 보았다. 뮤지션이 기타를 쳐 주면 노인은 드럼 앞에 앉아 손에 든 스틱으로 신나게 북을 두들겼다. 그는 환상 속에서 젊은 날로 돌아가 열광하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 연주하고 있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상념은 오십 년 전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도 돌아가고 있었다. 열평 정도의 좁은 서민 한옥이 닥지닥지 붙어있던 신설동 골목 친구네 집의 문간방에서였다. 나보다 두 살 더 먹은 동네 아이가 방바닥에 책을 두세 권식 나란히 포개놓고 그걸 드럼 삼아 손에 든 스틱으로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음악 쪽에 끼를 타고 난 소년이었다. 그 아이의 흥에 나도 모르게 취해버렸다.
  
  나도 드럼을 배우고 싶었다. 그 아이는 종암동 재래시장 근처에 있다는 드럼학원을 알려주었다. 그 드럼학원은 시장 뒷골목의 낡은 콘크리트 건물 옥상에 있었다. 옥탑방이 하나 있고 처마에 각목을 대고 비닐을 쳐서 찬바람을 막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작은 연탄난로가 있고 그 옆에 때국이 묻은 길다란 나무탁자가 있었다. 밤에 변두리 홀에 나가는 삼류 악사(樂士)가 혼자 살면서 낮에 몇 명의 수강생을 가르치는 것 같았다. 방 앞에 놓인 찌그러진 양은냄비 속에 먹다 남은 라면이 악사의 궁상맞은 살림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도 악사는 머리에 포마드를 반지르르하게 바르고 구두도 빛이 날 정도로 깨끗했다. 그가 교복이 아닌 허름한 점퍼를 입고 간 나에게 물었다.
  
  “너 음악해서 홀에 취직하고 싶어?”
  나를 그렇게 보는 것 같았다.
  
  “아니요”
  “그럼 왜 하려고 해?”
  “그냥요”
  
  “알았다. 며칠 겉폼 잡다가 그만두려는 거지?”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임마 하여튼 하긴 해 봐.”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삼십센티 정도 되는 쇠꼬챙이 두 개를 내게 건네주었다. 연탄집게를 토막 낸 것 같았다.
  
  “이걸로 저 탁자에 붙어있는 고무판을 두드려 봐. 하는 걸 보고 내가 정식으로 가르쳐 줄게.”
  
  나는 그가 알려준 간단한 리듬 하나를 쇠꼬챙이를 들고 두드리기 시작했다. 매일 학원을 찾아가 연습했다. 손가락이 까지고 피가 났다. 그만 두지 않는 걸 보고 삼류 악사는 내게 고고, 트롯트, 슬로락, 도돔바, 폴카, 부기 등 다른 리듬을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삼류악사가 나를 보고 말했다.
  
  “너 그만하면 막걸리 홀 정도는 나갈 수 있겠다. 내가 일자리 소개해 줄께. 한번 나가볼래?”
  “안 나갈래요 그냥 더 배울래요.”
  “무대에 안 나설 거면 왜 배우냐? 이상한 놈이네.”
  
  그는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삼류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나는 그 다음으로 종로에 있는 세기음악학원으로 옮겼다. 당시 서울시내에 유명한 두 음악학원중의 하나였다. 거기 선생은 한 단계 위였다. 요정에 나가 연주를 한다고 했다. 그 세계에서 나름대로 관록이 있다는 드럼 선생이었다. 그 학원에서도 수강생 틈에 끼어 열심히 고무판을 두드렸다.
  
  어느 날 내 앞에 앉아서 연습을 하는 남자아이가 보였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었다. 그는 짙은 눈썹에 하얀얼굴의 미소년이었다. 그 아이는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그 아이를 영배형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너같이 외아들이야. 그런데 나는 삼류고등학교에 다니니까 앞날이 별 볼일이 없어. 그래서 정식으로 보컬을 조직해서 음악 세계로 나가려고 해. 나는 음악세상에서 출세할 거야. 너는 명문인 경기중학교를 다니니까 공부세계로 나가야 해. 나같이 딴따라로 가면 안 돼.”
  
  나는 그 아이에게서 드럼의 기법을 많이 배웠다. 선생보다 훨씬 끼가 있고 많이 아는 것 같았다. 자기가 음악을 듣고 개발한 리듬들을 악보로 만들어 내게 주기도 했다. 얼마 후 그 아이가 문산의 미 8군으로 가서 오디션을 받고 합격했다고 했다. 교복을 입었던 그 아이의 모습이 머플러를 목에 감은 화려한 양복으로 변해 있었다.
  
  그 일 년쯤 후였을 것이다. 한국 록 음악의 대부라고 알려진 신중현 악단의 발표회가 있었다. 나는 연주회를 구경하러 갔다. 청중석에 앉아 화려한 조명이 비치는 무대의 드럼석으로 우연히 시선이 갔다. 영배가 하얀 양복을 입고 조명을 받으면서 멋지게 드럼을 치고 있었다. 그는 성공을 한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마음속으로 박수를 쳐 주었다.
  
  며칠 전 종로거리를 걷다가 오십이년 전 다니던 음악학원으로 가 보았다. 아직도 똑같은 건물의 똑같은 위치였다. 닫힌 문 안에서 쿵쿵거리며 드럼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세월 저쪽의 까까머리 소년인 내가 그 안에 앉아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앞에서 연습하던 영배형도 이제 칠십대 노인이 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