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연애>
  
  가야산의 한 암자에서 고시 공부를 하던 이십대 중반쯤의 겨울이었다. 그때 연애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대구로 나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내 몰골이 참 초라했다. 재래시장 귀퉁이 가게에서 산 싸구려 한복에 때로 얼룩진 점퍼를 껴입고 빡빡 깎은 머리는 털실로 짠 모자로 덮었다. 남이 보면 정체가 모호한 차림이었다.
  
  사랑의 경쟁자도 있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장교훈련을 마친 고교 일년 선배 되는 사람이었다. 그가 아내에게 들려 구애의 표시로 장교 반지를 정표로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한겨울 암자 구석방에 있던 나는 선물을 주고 싶어도 빈 손이었다. 돈도 없고 줄 만한 물건도 없었다. 우연히 그 암자 안에 잘 만들어진 목각들이 놓여있는 게 눈에 띄었다. 내 또래의 행자승 한 명이 손재주가 좋아 목각으로 작은 부처상이나 보살상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보살상을 보면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스님에게 내가 연애를 시작했다는 걸 고백하고 그녀에게 선물 할 목각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주지 스님이 아시면 내가 혼이 날 텐데….”
  행자승은 주저했다. 그는 나무도 해 오고 불도 때고 밥도 해야 했다. 산 속에 살아도 바쁜 사람이었다.
  
  “내가 만들어둔 부처님상이나 보살상을 하나 가져다 주면 안될까?”
  행자승이 안됐다는 표정으로 내게 제의했다.
  
  “내가 믿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그런 걸 선물해요? 제발 좋은 목각 하나만 만들어 줘요. 그 은혜는 잊지 않을께.”
  나는 두 손을 모아 사정사정했다.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 행자승의 마음이 녹은 것 같았다.
  
  “알았어, 학생. 목각을 만들려면 먼저 산에서 좋은 나무토막을 구해다가 최소한 십사 일은 얼음물 속에 담궈 놔야 해. 그래야 나중에 나무가 비틀리지 않아. 그 다음에 정성으로 조각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행자승은 다음날 일 미터쯤 되는 굵은 나무토막을 지게에 지고 와 암자 뒤쪽의 물 속에 넣고는 내게 말했다.
  
  “학생, 뭘 조각을 해야 할까? 그 구상을 말해줘.”
  “한 소년이 세상을 등에 지고 하늘나라를 걷는 걸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
  
  막연히 상징적인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자승은 눈 덮인 가야산의 깊은 밤 주지승 몰래 조각을 하고 있었다. 불빛에 비친 그의 옆모습은 나보다 더 어떤 사랑에 빠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한 달 정도 지나면서 나무토막 속에 들어있던 내가 생각한 소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행자승은 사포로 조각을 한없이 밀고 주지 몰래 부엌에서 콩기름을 가져다 목각에 바르고 또 발랐다.
  
  마침내 조각이 완성됐다. 조각 안의 소년이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조각을 커다란 배낭에 넣고 버스로 몇 시간 걸리는 대구의 지금의 아내가 살던 아파트에 가져다 주었다. 그 행자승의 염원과 나의 사랑의 합작품이었다. 덕분에 사랑의 경쟁에서 내가 이겼다.
  
  아내와 함께 내게 온 그 소년 목각은 사십년이 지난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내 책 읽는 방 앞을 늠름하게 지키고 있다. 얼마전 아내가 그 소년의 다리 부분에 작은 구멍이 하나 나 있는 걸 발견했다. 아내는 소년이 아프겠다면서 구멍난 상처를 정성스레 메워주고 약을 발라 주었다. 상처가 거뜬히 아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소년을 보면서 나는 연애란 뭘까 되돌아 봤다. 외모나 배경을 저울질하고 동화 속의 신데렐라 같이 되고 싶은 건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건 흥정이지 정결한 연애가 아니다. 즐기기 위한 연애가 아니다. 모두 주고 싶고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라야 신선한 연애를 유지해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한다. 연애를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자식을 포기한다는 자조 섞인 말이 돈다. 진정한 사랑이 깃든 연애라면 그 모든 장애를 행복하게 넘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