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올리기도 끔찍한 이 말은 북한에 있을 때
  노동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올려진 글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남포농대 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을 때이다.
  통일이 가까워지지 않는가 수군거리며 아이들까지 기뻐하였다.
  모두 박정희는 통일의 걸림돌로 의심치 않았다.
  
  그로부터 10년 후 중국 출신 대선배 손주복을 통해서
  남조선은 아세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손주복은 문화대혁명 때 북한으로 넘어온 조선족 인테리였다.
  학식과 중국어에 능통하여 통역사로 동원되기도 했다.
  추후 조선일보 기사로 확인한 데 의하면 국정원 일에 협조하다가
  북한당국에 체포, 총살당하였다고 한다.
  그 손녀가 남한에 와 있다.
  한번 만나야 하는데 출산하여 아이를 키우는 중이라고 한다.
  
  남조선이 아세아의 네 마리 용으로 된 것은 박정희 때문이라는 것을
  연변대학 정판룡 총장 댁에 가서 알았다(1992년 2월경).
  당시는 탈북하여 연변 체류중이었는데
  정판룡의 수기를 보고 공감하는 데가 있어 찾아갔었다.
  사모가 한족 출신 교수인데 미인이었다.
  공산당원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정 총장 댁 서재에
  눈에 확 띄운 것이 박정희 전기 집이었다.
  만고역적이라는 남조선 대통령 책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국이 달라져도 정말 달라졌음을 실감하였다.
  
  정 총장은 내가 탈북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꺼림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 분과의 대화에서 잊을 수 없는 말이 몇가지 있다.
  조선족은 북과 남의 이혼한 부모 사이의 자식과 같다.
  공산주의는 인간 본성을 무시한 사상이다.
  헤어질 때 의미있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돕지는 못해도) 고발은 하지 않을게>
  정말 그랬다.
  
  세상은 넓지만 좁기도 하다.
  사흘 간 수분하강 흐름을 타고 중국에서 소련으로 탈출하여
  간난신고 끝에 모스크바 주재 한국대사관에 갔다.
  대사관에서 거처지로 소개해준 곳은
  1950년대 북한유학생출신 망명자 허진 선생 댁이었다.
  허진 선생과 정판룡 총장은 모스크바 국립대학 어문학부 유학생 동기였다.
  허진 선생은 북한에서, 정판룡은 중국에서 모스크바로 국비유학 온 것이다.
  
  허진 선생은 서울 왕산로 명칭인 항일의병장 허위의 손자이다.
  임은이란 가명으로 <김일성 왕조비사>를 최초로 써서 유명한 분이다.
  고려인 사회유지로서 노태우 대통령이 러시아 방문 때 악수하는 동영상이 유트브에 있다.
  
  노 대통령 서거가 오늘, 박정희 대통령 서거와 동일한 날임에 신기하기도 하다.
  이분들이 아니었으면 경제적, 민주적으로 발전된 선진국이 되었을가
  한번 되돌아보며 두 분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