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가난한 아버지가 방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죽었다고 했다. 그의 고학이 시작됐다. 남의 집에 들어가 그 집 아이를 가르치며 밥을 얻어먹었다. 한 가구점 사장의 장학금을 조금 지급받는다고 했다. 서울대를 가기 위해 그의 눈에서 퍼런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풀던 수학 문제를 마무리하느라고 참는 모습이었다. 참 독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서울대에 떨어지고 다음해에도 떨어졌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세 번째 도전해서 합격을 했다. 그는 대학시절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그는 진급에 날개를 달기 위해 유학을 준비했다. 그는 국비 장학생으로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청와대 비서관을 거쳤고 고위공직자가 됐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가 목표로 했던 장관이나 차관의 벼슬은 주지 않았다. 정년을 채우고 그는 자리에서 물러나왔다.
  
  그는 로펌의 고문으로 들어가 그가 일했던 부서의 로비를 담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동창 모임에서 그를 잠시 본 적이 있다. 옆에서 그의 절박한 삶을 보았던 나는 그의 성공에 누구보다 박수를 쳐 주고 싶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늙어서 만난 그의 모습은 변해 있었다. 그는 지위와 자격을 우상으로 섬기는 그냥 세상 사람인 것 같았다. 알맹이를 놓쳐버린 껍질만 남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공허했다. 그게 그의 목적지였던가.
  
  또다른 친구가 있다. 초등학교 사학년 시절 우리 반 반장을 하던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 아이는 자기가 판자집에 살고 있다는 걸 감추었다. 내가 그 아이의 판자집으로 몰래 따라가 친하자고 제의했었다. 그 아이가 마음을 열어 주었다. 그 후 다니는 학교가 달라도 우리는 평생 친구다. 아버지가 없는 그 아이는 고등학교 시절 변두리의 산자락 오래된 낡은 집 방에서 혼자 밥을 해 먹고 남의 집 아이들을 가르치며 학교를 다녔다. 라면 수프를 뜨거운 물에 풀으면 아침에 먹을 국이 된다는 그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 아이는 아버지가 왜 자기를 낳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절규를 하기도 했었다. 그 아이의 수프 국물에는 눈물이 반인 것 같았다.
  
  그는 명문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시절 그는 지방학원의 강사로 일을 했다. 일년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일년 대학을 다니고 그렇게 반복을 했다. 남이 사년 동안 다니는 대학을 그는 팔년을 다녔다. 어쩌다 그를 만나면 돈이 없어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는 꿈을 꾼다고 하면서 불안해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가 종합상사에서 일할 때였다. 그가 다루는 수백 가지 섬유제품의 샘플을 조금씩 조각을 만들어 대학노트의 귀퉁이에 붙이고 그 옆에는 그 섬유에 대한 정보를 빽빽하게 기록해 그걸 외우고 또 외운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밤이 되면 불을 끄고 그가 다루는 수백 가지 섬유샘플을 손으로 만져 식별하는 연습을 했다.
  
  얼마 후 그는 회사를 나와 혼자 무역회사를 차리고 마카오의 거리를 돌아다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고 그는 부자가 됐다. 그는 뉴욕의 최고급 주택가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청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동산 가격이 높은 홍콩섬의 넓은 아파트에도 나를 불러 자랑했다. 서울의 여의도에도 아파트가 있었다. 다른 부동산들도 많은 것 같았다. 가족도 직접 보지 않은 어린 시절의 자신을 아는 내가 칭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같았다.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마음의 박수를 쳐 주었다.
  
  다시 세월이 흐르고 그나 나나 머리가 하얀 눈으로 덮였다. 우리는 등도 꾸부정한 노인이 됐다. 그가 한국에 와서 같이 밥을 먹을 때면 그의 얼굴은 기쁜 얼굴이 아니었다. 허무와 우수의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다. 그 역시 돈을 따라가다가 그게 우상이 된 면이 있는 것 같았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이재명은 소년 시절 공장에서 얻어맞으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했다고 한다. 아침에 출근하면 작업반장이 때리고 퇴근할 때 때렸다고 했다. 점심시간이면 공원 두 명을 뽑아 권투를 시키는 그런 야만적인 노동환경에서 고학을 했다고 한다. 그는 장학금을 주는 대학으로 진학해 공부하고 고시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고 시장이 되고 도지사가 되고 대통령 후보가 됐다. 이따금씩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그의 얼굴을 보면 그의 웃음 뒤에 메마른 눈물이 보이고 그의 미소는 슬프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영혼 속에 그 알맹이가 없다면 뒤에 남은 것은 정상에 꽂아놓은 허무의 깃발일지도 모른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도 잠시 따라간 우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혼에는 가난을 가난으로 여기지 않고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않게 해 주는 그런 존재가 있어야 한다. 가난을 벗으로 삼고 고통을 스승으로 삼게 하는 그런 존재다. 그게 있으면 고학은 이미 고학은 아니고 가난한 속에서도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있다. 세상의 연민을 구걸하지 않는다. 영혼에 그런 존재가 있어야 수챗가의 독초(毒草)가 난초(蘭草)로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