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같은 두 청년>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는 공원에 깨끗하게 생긴 청년 한 명이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옷도 깨끗했다. 앞에 놓인 구걸하는 박스가 아니면 보통 사람들과 구별하기 힘들 것 같았다. 혹시 인생체험을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밤 우연히 그 청년이 가는 모습을 봤다. 초점이 없는 눈이었다. 떴어도 아무것도 보는 것 같지 않았다. 영혼이 사라진 투명인간의 흐느적거림 같았다. 싱싱하게 피어날 청년이 왜 그럴까 의문이었다.
  
  청년세대의 정신이 벌레 먹어 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웃에 사는 부인의 아들이 인터넷 도박에 빠져 입건이 됐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부인이 변호사인 나를 찾아와 발을 동동 구르며 호소했다. 우리 집 가사도우미를 하는 분이 내게 하소연을 했다. 딸이 인터넷 도박을 해서 많은 돈을 잃었다는 것이다. 도박 중독이라는 것이다. 신문을 보면 젊은 세대중 상당수가 증권이나 비트코인에 목숨을 걸고 있다는 기사가 나기도 한다. 정기적으로 로또복권을 사면서 대박을 터뜨리는 꿈을 꾸기도 하는 것 같다.
  
  사무실에서 일하던 젊은 직원들 중에는 나갈 때면 ‘해고’로 처리해 달라고 불법을 부탁한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다. 그런 돈으로 유럽여행을 하기도 한다. 제도만으로 곰팡이가 슬어가는 정신을 깨끗하게 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젊은 세대가 의지할 만한 시대를 이끄는 윤리적 기둥이 없다. 민정수석을 하고 국회의원을 했던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가 거래하는 회사에 입사해 천문학적 돈을 받았다. 탐욕이 가득한 정치인들. 법조인들이 활개를 치면서 사회 전체에 고약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요즈음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들이 서로 상대방의 비리를 까발리면서 진흙밭에서 개싸움을 하고 있다. 그걸 보는 젊은 세대의 정신이 흐려지지 않으려고 해도 흐려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지나보면 세상이 다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연꽃같은 존재들이 있었다.
  
  내 또래의 고교 선배가 있다.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자기만의 실존을 찾았다. 스스로 광부가 되어 탄광의 막장으로 갔었다. 그는 내게, 삽을 들고 트럭 적재함에 석탄을 퍼 올리는 작업을 하는데 정말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더라고 했다. 그는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짓기도 했다. 햇빛이 쨍쨍한 여름 열기를 훅훅 뿜어내는 밭에서 무릎걸음으로 잡초를 뽑을 때 독이 오른 잎들이 눈을 콕콕 찌르는 게 고통이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추수를 해서 말리기 위해 마루바닥에 올려놓은 푸른 콩 한 알 한 알이 마치 보석 같았다고 했다. 그는 갯마을에 가서 어부도 했다. 겨울 바다가 그렇게 얼어붙는 것같이 찬지도 전에는 몰랐었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었다. 그는 지금 사회에서 존경받는 은자(隱者) 노인이 되어 있다. 그는 예술계의 우상이기도 하다.
  
  변호사를 하면서 알게 된 청년이 하나 있다. 그는 노숙하는 바닥까지 내려갔었다. 사채업자에게 쫓겨서 인생의 막판까지 간 것이다. 사채업자의 마수에서 그를 빼내는 과정에거 그 청년과 인연이 됐다. 그 청년은 뒤늦게 공부를 해서 외국의 대학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러나 사회현실이 만만하지 않았다. 그가 들어갈 틈이 없는 것 같았다. 청년은 골목길에 작은 식당을 차렸다. 그 가게를 찾아간 내게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전골 국물을 만드는 데 목숨을 걸고 싶습니다. 망하더라도 이 자리에서 끝장을 내고 싶습니다. 주방에서 쓰러져 죽겠습니다.”
  나는 그 청년을 위해 기도했다. 그에게 약간의 돈을 투자해 주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주방 한구석에 성경을 놓고 일하는 주방장이면 아름답지 않을까. 주방이 예배 장소가 되고 음식을 만드는 게 기도가 되면 좋겠어.”
  
  그의 일터가 삶터이고 수행터였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청년들의 구원은 정치인들이 선전하는 정책이나 제도만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의 절망하는 영혼에 맑은 샘물 같은 정신이 먼저 부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