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깡통>
  
  대통령 후보들의 마지막 토론회가 과열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건 모르죠?” 하고 덤비는 원희룡에게 홍준표가 역겹다고 말한 것 같다. 원희룡은 홍준표에게 ‘빈 깡통’이라고 약을 올리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의 토론회에서 도무지 향기가 나지 않았다. 공허하고 메마르다. 급한 과외로 외운 자료들의 암기 테스트를 받는 아이들 같은 모습이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을 끌어내리고 자신의 머리 자랑 지식 자랑을 하기에 바빴다. 겸손과 온유의 촉촉한 물기가 느껴지는 사람은 없었다. 체코같이 시인이나 수필가가 대통령이 될 때는 아직 멀었나 보다.
  
  지도자의 기본은 인문학적 지식이 풍부한 독서력이 아닐까. 백년 전 일본에 살았던 두 지도자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한 지도자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서구화와 부국강병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 다른 지도자는 천황의 백성들을 민주국가의 국민으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조국의 정신적 성장을 추구했다. 그 두 지도자를 만들어 준 배경은 독서였다. 그중 한 지도자는 자신을 있게 한 독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계역사를 열심히 읽었어요. 나는 인류를 한 개인으로 간주하고 그 발달과 진보를 탐구했죠. 그 다음은 문학이었어요. 거기서 사상을 얻어 그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공급하고 싶었죠. 그 다음은 종교 연구였죠. 여러 종교를 철학적 심미적으로 연구했어요. 그 다음이 성서 연구였어요. 주해서들을 사서 독파하고 성서의 문자로부터 하나님의 진리를 꺼내어 보려고 했죠. 성서에서도 손을 뗄 때가 올 것 같더라구. 그것 역시 기록된 글 임에는 틀림없으니까. 어느 순간 나는 서재가 휴지통같이 느껴지더라구. 완전한 자유는 문자를 떠나서 그 분이 계신 곳에만 있더라구요.”
  
  백년 전을 살았던 그가 어떤 경지인가 짐작이 갔다. 그는 이기적이고 감정적이고 편을 갈라 싸우는 수준 낮은 국민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뭔가 생각했다. 그는 개인뿐 아니라 국가도 경제라는 빵만으로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의 문하에서 요시다 수상이 나오고 수많은 정치가들이 배출됐다. 그는 천황에 대해 머리를 굽히지 않았다. 러일전쟁도 일본의 조선 침략도 국가 이기주의라고 하면서 반대했다. 그의 저력은 평생 끊임없는 독서와 믿음이었다.
  
  이십팔 년 전 스산한 봄날이었다. 주위의 변호사 중에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일이 있어 변호사가 된 홍준표의 사무실에 들렀었다. 그는 대통령이 될 사람이라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와 점심을 먹은 후 돌아오니까 같은 빌딩에 있는 대학 후배인 변호사가 놀러와 있었다. 그 역시 정계로 나가기 위해 지구당위원장이 되어 있었다. 대화 중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생각해 보니까 변호사가 출세하는 길이 세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첫 번째는 정계로 나가 국회의원이 되고 도지사가 되고 대통령이 되는 거지. 두 번째는 허버드대학 같은 곳에 가서 박사학위를 따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로펌을 차리고 돈을 많이 버는 거지.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생각한 게 있는데 그건 현실에서는 아무런 영양가는 없지만 그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어.”
  
  “그게 뭔데?”
  내가 되물었다.
  
  “토스토엡스키, 톨스토이의 고전부터 시작해서 고시공부하듯 그걸 읽는 거야. 누구나 읽어야 하는 게 고전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읽지 않는 게 고전이잖아? 문학 철학 독서 종교 등 엄청난 독서를 하는 거야. 그렇게 책을 읽고 오육십대가 되면 뭔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후배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화살같이 꽂혔었다. 그때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내게 그 말을 해 주었던 후배는 국회의원 선거에 세 번째 도전하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홍준표는 당 대표 도지사를 거쳐 대통령 후보로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한참 후배뻘 되는 사람한테 ‘빈 깡통’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안타까웠다. 다른 후보들도 교양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정치를 하려면 먼저 많은 독서를 해서 인문학적 향기와 배의 바닥짐 같이 중심을 잡는 사상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