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를 위한 인생보험 상품>
  
  친구들이 만나 소박한 저녁밥을 먹고 서로의 믿음을 얘기하는 모임이 있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커다란 종이가방에 햄버거를 가득 담아 가지고 왔다. 우리들의 저녁이었다. 그가 탁자 위에 종이가방을 올려놓으면서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 버거킹을 샀어.”
  내가 그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네 버거킹 햄버거네?”
  “그게 아니라 버거킹 햄버거 회사 자체를 샀다고.”
  
  그제서야 나는 알아들었다. 그 친구는 큰 펀드회사의 회장이었다. 그는 은행도 사고 팔았다. 공인회계사인 처조카에게 그를 아느냐고 물었다. 처조카는 그 분은 땅이 아니고 자기 돈을 밟고 다니는 존재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부자인데도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말은 안 하지만 인간이나 세상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고독해 하는 그의 감정을 더러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소년 시절을 같이했던 친구들이 모이는 그곳에 참석하는 것 같았다.
  
  부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비굴하게 아부하면서 가면을 쓴다. 겉으로만 고개를 숙이고 속에는 쇠꼬챙이를 품고 있다. 돈 좀 얻을까 하는 헛욕심이 들끓고 진심은 없는 경우가 많다. 부자처럼 고독한 존재는 없을 것 같다. 부자 역시 금전 앞에 꿇어 엎드리는 초라함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치사한 존재인지를 느낀다.
  
  부자가 가진 금전은 인간을 천하게 보이게 하는 뒤틀린 렌즈 역할을 하기도 한다. 부자들은 이 세상에서 사람다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더욱 더 자신의 고독을 통감하고 인생에 권태를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부자 친구가 가지고 온 햄버거를 먹고 믿음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 끝이었다. 그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하는 일은 큰 회사들을 사고 팔아 수익을 남겨 투자자들에게 주는 일이야. 나 같은 장사꾼이 큰 이익이 남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그걸 하나님이 들어주실까? 아무리 생각해도 안 들어 줄 것 같아.”
  
  내 생각도 그럴 것 같았다. 돈을 벌게 해달라는 부탁은 차라리 영험이 있는 귀신 쪽에 부탁하는 편이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성경 속 사탄은 그에게 무릎을 꿇으면 이 세상의 영광을 주겠다고 했다. 친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분께 매달리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와는 반대로 엄청난 부자였다가 성경 속의 욥처럼 하루아침에 극도로 가난하게 된 선배가 있었다. 전국에 리조트와 사업체가 있었다. 제주도에도 호텔이 있고 여러 마리의 승마용 말과 요트를 가지고 있었다. 실패는 그에게 ‘영혼의 각성’을 가져다 준 것 같았다. 어느 날 저녁 함께 밥을 먹고 난 후 어스름한 길을 함께 걷는데 그가 갑자기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다시 부자가 되고 싶어. 그건 다시 많은 돈을 가지고 잘 먹고 화려하게 살자는 게 아니야. 가난해져 보니까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돈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부자가 되면 좋은 일, 세상에 유익한 일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할 거야. 내 나이 팔십이 넘었는데 부자일 때 그렇게 실천했더라면 그 기억들을 영혼의 보배로 삼아 다음 세상까지 가지고 갈 수 있었을 거야. 그걸 못한 게 정말 후회가 돼.”
  
  그의 말은 절실한 체험에서 나오는 진리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펀드회사의 회장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관여하는 노숙자들이 모인 단체에 와서 강연을 해 보라고 권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신화 속 부자 같은 그를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동시에 그 역시 노숙자를 보고 느끼는 게 있을 것 같았다.
  
  부자 친구는 거절하지 않고 허름하고 어둠침침한 노숙인들의 합숙소에 와서 얘기했다. 한때 억울한 누명을 쓰고 비참한 감옥생활을 했던 것도 다 드러냈다. 그리고 얼마의 돈을 기부했다. 흐뭇했다.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해결되는 구체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인생에는 언제 재난이 올지 모른다. 주택이나 상품에 대한 보험들은 많다. 나는 인생보험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실패했을 때는 실패에 이기고 성공했을 때도 성공에 이길 수 있는 보험. 그것은 종교의 힘이 아닐까. 부자인 친구의 마음에는 어느새 그분의 영(靈)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