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렸던 전국구 건달 두목 김태촌이 살아 있을 때 그가 고백하는 여러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폐암에 걸렸던 그는 자신의 삶을 누구에겐가 진솔하게 말해두고 싶은 것 같았다. 그는 정치깡패로 전국의 건달들을 모아 신민당사에 난입했던 이런 얘기를 했다. 건달들이 몽둥이를 들고 야당의 당사에 들어가자마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그는 도끼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 당 총재의 방문 앞에 섰다. 공포를 조성하기 위해 그는 도끼로 문을 찍어 넘어뜨렸다. 안이 들여다 보였다. 그 순간 그는 아찔했다. 없을 줄 알았던 김영삼 총재가 의자에 앉아 정면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꿰뚫을 듯한 눈빛이었다. 그런 상황은 서로의 기 싸움이었다. 그는 손에 들렸던 도끼를 높이 쳐들었다. 죽이겠다는 행동이었다.
  
  “까라.”
  김영삼 총재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짧게 말했다.
  
  그 대담한 태도에 김태촌은 속으로 기가 꺾여 버렸다. 도끼로 깔 수도 없고 뒷걸음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난감했다. 그 순간이었다. 황낙주 의원이 번개같이 몸을 날려 김영삼 총재를 안고 창문 쪽으로 가서 몸을 날렸다.
  
  김태촌은 옆 건물의 낮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떨어져 절뚝거리며 가는 두 사람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건달 보스 김태촌의 얘기는 진정성이 있어 보였다. 나는 김영삼이라는 인물은 그런 담력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히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민주화 투쟁 당시 그의 담력은 박정희 대통령을 움찔하게 했다. 김영삼 정권 시절 공보처 장관을 했던 오인환씨는 한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식견과 안목이 탁월했죠. 애국심도 대단했구요. 그 분은 기도할 때마다 민족을 얘기했죠. 박정희 대통령은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했잖아요? 결과로 얘기하자, 결과는 내가 좋게 낼 자신이 있다 이거죠. 그 분은 보통 정치가에게는 없는 혜안과 추진력이 있었죠. 김영삼 대통령의 담력은 대단했어요. 현장에서 싸운다가 그 분의 가장 큰 원칙이었어요.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했을 때 김영삼은 미국방문중이었어요. 주위에서 서울을 가면 위험하다고 만류했는데도 귀국했죠. 귀국하자마자 가택에 연금이 됐죠. 그때 김대중과 이철승은 귀국하지 않았죠.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그 분은 박정희 대통령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유능한 대통령이 되고 싶어 했어요.”
  
  김영삼 대통령은 승부사 기질이 대단한 것 같았다. 얼마 전 나는 김영삼 정권에서 삼년 동안 수석비서관을 하고 장관을 지낸 분을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다.
  
  “옆에서 지켜 본 김영삼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었어요?”
  내가 물었다.
  
  “김영삼 대통령에게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앞서려는 야망이 아주 강하게 느껴졌었지.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모셨었는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모든 게 잘되겠지 하는 자신감도 강했어. 투쟁동지라면 끔찍하게 생각했지. 그런데 옆에서 모셔보니까 찬바람이 일 정도로 무섭고 엄한 면이 있어. 그렇게 충성하던 사람이 사고를 친 경우들이 있어. 수석비서관인 내가 눈치를 보고 그들을 살릴 방안을 보고하면 대통령은 원칙대로 하라면서 냉랭하게 지시했지. 제스처가 아니라 진짜였어. 그걸 보면서 나도 실수하면 여지없겠구나 하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전임 노태우 대통령은 봐주려고 했어. 그런데 자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그렇게 됐는데 어떻게 하겠어? 국민 여론이 나빠졌는데 말이야.”
  
  세종대왕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가 되고 싶었던 김영삼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초래한 실패한 지도자가 되어 역대 대통령 중에서 인기가 가장 낮은 편에 속하게 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었을까? 국가부도를 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제일가는 나라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민주화 투쟁의 상징이었던 그는 자유를 더 회복시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성경에 등장하는 왕들을 보면 단점 없는 인간이 없다. 하나님은 그 단점까지 감싸 안고 사랑한 것 같다. 지도자마다 진창으로 끌어내리고 허우적대는 그들을 보고 즐기는 풍토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