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릴 때부터 무척 나쁜(?) 습성이 있었는데 이미 노년이 된 지금도 그 타성은 버려지지가 않는다. 사람의 시신(屍身)을 보았을 때 관계자가 아니라면 누구나가 외면하는 게 당연하며 山 또한 그렇게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주 오래된 무덤에서 나온 시신만은 찾아가서 보는 기이한 습성이 있다. 남의 상처에 붙은 딱지를 떼어먹는 습성을 가진 사람도 있다는데 山 또한 그에 못지않은 엉뚱하거나 모자란 사람일 것이다. 이렇게 된 내력을 그윽이 살펴보면 아무래도 내가 살던 동네 환경 때문이 아니었나 남 탓을 해 본다.
  
  어릴 때 우리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화장막이 있었다. 같은 洞이었으니 같은 동네라 해도 될 정도의 거리였다. 그 화장막 주위는 물론 공동묘지였고 지금도 일부는 그대로 남아있다. 이 공동묘지와 화장막은 왜정 때 일본인이 만든 것인데 요즘의 공원묘지처럼 조성돼 있다. 넓은 잔디 광장도 있고, 예쁜 기물도 여럿 세워놓았고, 앞바다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이는 곳이니 데이트하기에도 딱인 곳이었다. 그래선지 청춘 남녀가 거기에 모여들곤 했었다.
  
  요즘이야 갈 데가 많은 시대이지만 그 시기는 극장 말고는 갈 데라곤 거의 없었고 공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아름답게 꾸며진 공동묘지가 데이트 장소였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일본은 지금도 화장막이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하니 저 화장막은 왜정 때 만든 것이니 더욱 동네 가까이에 두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화장막터에 마산합포고등학교가 들어섰고 공동묘지는 근린공원이 되었다.
  
  거기가 왕복 8차선 대로변으로 변하고, 화장막을 들어내어 학교로 만들고, 공동묘지를 근린공원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공동묘지에 있던 묘지들이 죄다 이전 명령을 받았다. 거기서 놀고 있던 어린 우리는 오래된 시신을 파내고, 칠성판에 옮기는 과정을 날마다 보았다. 오래된 무덤을 파내기 위해 첫 괭이를 꽂아넣기 전에 거의 모든 묘지 주인이 이렇게 말한다 “할버지. 놀라지 마십시오. 할버지를 더 좋은 데로 옮기려 합니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어쩌겠습니까.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또 어떤 때는 묘지 주인이 우리를 불러서 “저기는 우리 어머니 묘지이다. 어머니를 감장(勘葬)하기 전에 붉은 비단 수의를 입혀드렸는데 지금은 어떤지 보고 오라”는 말에 “아저씨 붉은 비단 조각이 좀 남아 있습니다”고 본 대로 말해주면 눈물을 주르르 흘리던 아저씨도 있었다.
  
  그 옆에는 애장(애葬)터가 있었는데 그때야 아이가 죽으면 무덤을 쓰지 않고 돌로 덮는다는 것을 알았다. 오래된 무덤에는 돌들이 비바람에 무너지고 쓰러져서 해골이나 시신이 삐죽이 나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돌 몇 개를 더 들어내서 시신을 이모저모 자세히 살펴보고는 좀 쉬다가 다시 보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다 본 뒤에는 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완성된 무덤으로 만들어 주곤 했다.
  
  오래된 시신을 처음엔 호기심으로 보았지만, 나중엔 그것을 보고 나면 무언가가 내 안에 들어왔다. 그것이 어떨 때는 世事를 뛰어넘은 철학가로 나타나고, 어떨 때는 가슴 충만한 자존감으로 나타나고, 어떨 때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으로 나타나고 또 어떨 때는 화려한 신비감과 함께 나를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으로 만들어 주었다. 동네 환경이 나로 하여금 오래된 시신에 흥미를 갖게 했고, 시신을 목도한 후에 찾아드는 야릇한 감정이 자꾸 시신을 찾아 보게 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간혹 미라가 발견되곤 한다. 그 소문을 들으면 보고 싶은 마음에 먼 데라도 차를 끌고 달려가는데 볼 수가 없다. 외부인의 접근을 막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은 기자라고 거짓말을 하는데 보는 것을 어렵게 허락하면서도 사진 촬영은 안 된다는 조건을 달곤 한다. 이해되는 일이긴 하나 언론의 처사는 이해되지 않는다. 미라가 발견되었다고 떠들썩하게 보도하면서도 미라 사진 한 장을 싣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바에야 취재 경쟁은 왜 하나?
  
  위세 있는 종중에서는 자기네 선대인(先代人)이 미라로 발견되었다며 유투브로 보여주기도 한다. 무덤을 파고, 외곽을 열고, 내관을 여는 장면까지는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정작 미라가 보일 시점쯤에는 화면을 딴 데로 돌려버린다. 미라를 칠성판에 옮길 때도 하얀 천으로 덮었으니 볼 수가 없다. 이러면서 미라가 발견되었다고 자랑 같은 말은 왜 하나?
  
  외국에서 미라가 발견되면 영락없이 그 미라 사진도 신문에 실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미라는 결코 사진으로 옮겨지는 법이 없다. 이게 山에게는 그럴 수 없는 불만이다. 오늘도 조선닷컴은 1000년 전의 미라가 페루에서 발견되었는데 꽁꽁 묶인 채로 발견되었다면서 친절하게 선명한 사진까지 실었다. 외국 미라는 보면서도 우리나라 미라를 보면 안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