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잘 쓰려면>
  
  연말이 다가오는 명동거리에서 자선냄비의 맑고 투명한 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낡고 찌그러진 모자에 옷깃이 닳은 코트를 입은 영감이 다가와 봉투 하나를 넣고 사라졌다. 잠시 후 그 봉투를 열어본 자선단체의 사람은 억대가 넘는 수표가 들어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얼마 후 가난한 노인들이 모여사는 꽃동네 공동식당에 허름한 차림의 영감이 나타나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사람들은 새로 입소한 노인으로 생각했다. 다음날 오후 쌀을 가득 실은 다섯 대의 트럭이 꽃마을로 들어섰다. 전날 밥을 먹었던 영감이 보낸 것이다. 그 영감은 북한의 굶는 사람들에게 쌀을 보내도 된다는 정부의 허락을 받았다. 배를 빌려 수천석의 쌀을 싣고 북의 해주항으로 가려다가 거절당했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자본주의 사업가의 기부는 받을 수 없다는 통보내용이었다. 영감은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들이 굶고 있을 것 같아 그렇게 했다. 육이오 전쟁때 헤어져 평생을 잊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둔 가족이었다.
  
  영감에게 죽음이 다가왔다. 부두노동자로 시작해서 평생 돈이 목적이었던 그는 부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돈은 의미가 없었다. 그는 인생의 목적이었던 돈을 모두 불태워버리거나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마침내 그는 가지고 있던 재산을 한 재단에 모두 기부하고 죽었다.
  
  변호사인 나는 그 재단의 이사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었다. 기부자의 뜻에 맞지 않고 불성실하게 기부받은 돈을 쓴다는 자식의 의뢰를 받고 소송을 대리했었다. 기부받은 사람들의 정성과 성실이 없어 보였다. 죽은 영감은 살아서는 돈에 속고 죽어서도 위선적인 세상에 속은 느낌이었다. 그는 돈을 쓴 게 아니라 버린 것 같았다.
  
  한 종교단체와 대학에 수십억의 기부금을 낸 선배 변호사가 있다. 오랜 법관 생활을 한 그는 노인이 되어도 마음은 착한 어린아이였다. 한번은 그가 분노하면서 내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장인이 평생 의사 생활을 하시면서 재산을 모았어요. 돌아가실 때가 멀지 않았을 때 판사 사위인 내게 그 재산을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처리할 수 있는지를 물으셨죠. 아내가 상속권이 당연히 있었지만 저는 장인에게 그 돈을 기부하시면 더 보람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렸죠. 그 돈이 이 땅의 가난한 청년들을 위해 쓰이면 좋을 것 같다고 했죠. 장인이 나의 말을 들으시고 내가 건의하는 종교단체에 전 재산을 기부했어요. 그런데 기부하고 십년이 지났는데도 그 돈이 언제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가서 알아봤죠. 비밀주의라 그런지 얘기하려고 하지 않더라구요. 그러더니 나중에는 아직 쓰지 않은 그 돈을 그 단체의 고위 성직자기념관을 만드는 데 쓰겠다는 거예요. 그건 아니죠. 하도 화가 나서 소송을 하려고 해요. 대학에 기부한 돈도 어디에 어떻게 썼다고 한 마디가 없어요.”
  
  겉으로 화려한 기부의 이면에 그런 그늘이 있었다. 가진 물질을 주기는 쉽다. 그러나 현명하게 그게 사용되도록 하기는 훨씬 어렵다. 철학이 없이 던져진 돈은 썩어서 독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미국 최초의 재벌 스티븐 브라드의 돈 쓰는 방법을 읽었다. 수전노이고 악덕 장사꾼이라는 소리를 들은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엄마도 없었다. 학교도 못가고 맨날 계모한테 얻어맞았다. 소년시설 그는 밀항하다가 걸리는 바람에 선원이 됐다. 그가 탄 선장실의 책꽂이에는 볼테르 전집이 꽂혀 있었다. 넓은 바다와 볼테르가 그의 선생이 됐다. 성실했던 그는 선장이 되고 선주가 됐다. 그는 자기 배의 이름들을 ‘볼테르 호’라고 지었다.
  
  독립전쟁 무렵 그는 미국 최초의 재벌이 됐다. 재정난에 빠진 정부의 공채를 그가 거의 다 사들일 정도였다. 그는 한 푼을 가지고 다투던 수전노 장사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애꾸에 깡마른 얼굴의 그의 모습은 경건과는 멀었었다. 그런 그의 생애가 최후에 가까웠을 때다. 그는 재산을 쓸 곳에 관해서 생각했다. 볼테르에게서 배운 인생관은 재산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소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오막살이에서 글을 쓰며 살던 토마스 제퍼슨을 찾아갔다. 이주일 동안 그 집에 묵으면서 제퍼슨으로부터 평민교육의 비결을 배웠다. 거기서 착한 기능공을 양성하는 고아원을 겸하는 이상적인 학교를 설립하려는 구상이 나왔다. 그는 돈을 쓰는 것도 재산을 모을 때와 마찬가지로 깊이 생각한 끝에 실행해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의 큰 직업학교겸 공장을 세웠다. 고아 교육의 새 기원이었다. 그는 학교의 규칙도 만들었다. 세상의 자선가에게 기부금을 애원하지 않도록 했다.
  
  진심과 사랑이 없는 위선적인 사람들이 학교 문턱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그의 행적을 보면서 기부를 하는 배경에도 깊은 철학이 있어야 그게 꽃을 피운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