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들어 이상하게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사무실도 집도 전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뻘인 그는 글 쓰는 내게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였었다. 나의 서재에는 그가 특별히 복사해서 가져다 준 E.S 가드너란 작가의 평전이 꽂혀있다. 페리 메이슨이란 주인공 변호사를 통해 법정과 세상을 알린 작가였다. 그 책은 나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
  
  법률신문에 부고가 떴다. 그가 이천이십일년 오월이일 아흔네 살로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부고 아래에 그의 간단한 이력이 이렇게 나와 있었다.
  
  <부장판사로 있다가 변호사 개업을 한 김이조 변호사는 일제강점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대 법조인들의 전기자료를 수집해 ‘법조 비화 100선’ ‘잊을 수 없는 법조인’등 여러 저서를 펴냈다.>
  
  그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을 때 근처의 설렁탕 집으로 모시고 가 밥을 먹으면서 나눈 얘기가 기억 저쪽에서 떠올랐다. 그는 판사 때 겪었던 이런 경험을 말했었다.
  
  “어느 겨울날 저녁 열시쯤 집에 들어가니까 누군가 뇌물봉투가 든 사과 상자를 놓고 간 거에요. 그 사람 주소를 간신히 알아서 그 사과 상자를 지고 그 집을 찾아갔죠. 그 사람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더라구요. 골목길에 있던 그 사람 집 앞에서 사과 상자를 머리에 이고 밤 한 시가 넘게까지 서 있으려니까 칼바람에 진눈깨비가 날립디다. 뇌물을 돌려주려는 판사 신세도 참 힘들고 처량합디다.”
  
  그는 공식적인 학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도 대학 졸업장도 없었다. 고시가 조선 시대의 과거같이 어렵던 시절 독학으로 합격한 사람이었다. 학연이 없던 그는 혼자서 판사의 길을 걸어간 것 같았다. 그와 설렁탕을 먹는데 이상한 점이 보였다. 사람들은 탁자 위 작은 뚝배기에 듬뿍 담긴 잘게 썬 파를 넣어서 먹는데 그는 조심스럽게 국물만 먹고 있었다.
  
  “왜 파를 안 넣으시죠?”
  내가 물었다.
  
  “점심 먹고 사람을 만날 건데 입에서 냄새가 날까 봐요.”
  노인의 그 한 마디에서 조심스럽게 살아온 인생길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판사를 그만두고 법조 분야에 대해 글을 쓰고 책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시준비생들에게 법조계의 현실을 알려주는 글이었다.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책을 하나 둘 쓰면서 법조계의 역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법조인은 지조와 양심을 지켜야 합니다. 권력과 결탁하지 않고 돈에 연연하지 말아야죠. 그래서 법조계의 사관이 되어 실록을 쓰기로 결심했어요. 지금 역사의 격동기에 있었던 재판에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는데 의외로 남아 있지 않아요. 그 재판에 참여했던 법관이나 변호사들이 죽은 경우도 많구요. 그래서 그런 집들을 찾아가 자식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자고 하면 어떻게나 찬바람이 도는지 몰라요. 또 자료들도 거의 없어요. 어제도 옛날에 중요 사건을 처리했던 법조인의 사무실을 찾아갔는데 두 시간이나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하더라구요.”
  
  그의 글은 어두운 면에 치중하는 고발성이 아니었다. 법조인들이 따라야 할 긍정적이고 모범이 될 만한 사례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힘이 들었다. 그가 덧붙였다.
  
  “내가 법관을 할 때부터 수집했던 서적을 대법원 도서관과 사법연수원에 이만 권 가까이 기증했고 변호사협회에도 기증했는데 요새 가서 보면 내가 기증한 책을 어디다 치웠는지 찾을 수가 없어요. 그럴 줄 알았더라면 나중에 기증하는 건데 너무 빨리 했어요.”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사람이었다. 팔십대 중반이던 그는 늙은 아내와 둘이서 분당에서 소박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서소문에 있는 합동사무실로 출근한다고 했다. 한 정거장 전인 명동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삼십 분을 꼭 걷는다고 했다. 그리고 자료를 구하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걸어 다녔다. 그는 과거의 재판을 하나하나 그 내막을 파들어 가면서 글을 썼다. 법관 출신이라 핵심을 보는 눈이 강했다. 그는 염소와 양을 구별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원고를 쓰다가 죽었다. 한 방울의 물에도 우주가 담겨있고 온갖 식물도 한 조각의 풀잎으로 대표된다. 그 자신이 후배들이 보아야 할 법조계의 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것 같다. 감사하며 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