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판사의 아들>
  
  중학교 삼학년 겨울 무렵이었다. 나는 대여섯 명의 같은 학교 아이들과 어울려 문집을 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일찍 사회의식에 눈을 뜬 정의감이 강한 아이들 같았다. 문집의 제목을 ‘눈’이라고 했다. 각자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한 편씩 쓰면 그걸 내가 편집하고 인쇄하기로 했다.
  
  그 무렵 신문은 박정희 대통령의 삼선개헌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어른들은 그게 독재로 가는 길이라며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정해진 날짜에 원고가 들어왔다. 그중 한 아이가 쓴 글의 제목이 ‘3선개헌을 반대한다’였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흉흉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친위대인 중앙정보부는 반정부적 성향이 있는 사람들을 끌고 가 탄압을 하던 시절이었다. 어른들은 겁을 먹고 정보기관의 눈치를 보며 입을 막고 귀를 닫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나 역시 찜찜했다. 중학생 다섯 명이 모여 작은 문집을 내는 거지만 처벌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 원고를 쓴 아이는 용기가 대단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 아이는 판사의 아들이었다. 그 아버지가 쓴 독특한 판결도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한 미남인 건달이 해군 장교를 사칭하고 수많은 여대생을 농락한 사건이 있었다. 여성단체들은 희대의 여성 농락범을 엄벌하라고 규탄을 했었다. 담당 재판장인 그 아이의 아버지는 피해자라는 여성들을 향해 ‘보호할 가치가 없는 정조’라고 판결 이유에서 일갈했다. 사회여론이 좌향좌할 때 재판장인 그의 아버지는 우향우하는 사람 같았다.
  
  아들 역시 아버지를 닮은 것 같았다. 그 원고를 내면 나는 또 무기정학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삼학년 초에 한 번 무기정학을 받고 한 달을 학교에 가지 못했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나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까지 내렸었다. 옛날로 치면 위리안치의 귀양을 산 것이다. 억울했다. 모범생만 모여있는 명문이라는 곳에서 무기정학의 이력은 지금의 전과자보다 더 흉한 괴물 취급이었다.
  
  소년이었던 나는 항의할 힘이 없었다. 이상했다. 아무런 주저 없이 나는 역적이 되는 그 원고를 내기로 마음 먹었다. 글씨를 잘 쓰는 친구와 같이 기름종이를 사서 남산도서관으로 갔다. 거기서 친구가 철필로 기름종이에 글을 썼다. 당시의 인쇄방법은 기름종이 아래 백지들을 놓고 검은 잉크가 묻은 롤러로 밀면 백지에 글들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용물이 완성됐다. 문방구에서 검은 도화지를 사고 그림을 그리는 친구에게 부탁해 그 위에 눈의 모습을 디자인하고 제목을 손글씨로 썼다.
  
  그렇게 십여 부의 책을 만들었다. 다행히 그 책은 학교 당국에 걸리지 않았다. 별다른 문제 없이 잘 넘어갔다. 세월이 흘러 우리들은 모두 칠십고개 앞에 선 노인이 됐다. 나는 지금도 판사아들이었던 그 친구의 용기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낸다.
  
  십년 전쯤이었다. 육십을 바라보는 소아과 의사인 그 친구가 변호사인 나에게 소송을 의뢰하러 왔다. 병원장이 나쁜 놈이라는 것이다. 건강한 아이들을 수막염이라고 거짓진단을 해서 수입을 올리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그의 정의감은 한 병원에 오래 있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았다. 환자나 보호자들과도 잘 싸우는 의사였다. 나는 지금도 그의 편이다. 어제는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유튜브 화면에 나오는 함석헌 옹의 오십팔년 전 연설을 들었다. 그는 아직도 화면 속에서 흰 수염을 날리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른 말을 하려면 밥걱정을 하지 말아야 해요. 감옥에 들어갈 걱정도 하지 말아야 해요. 그리고 목숨걱정도 하지 말아야 해요. 강연을 하려고 나오는데 어제 중앙정보부에서 주의를 줍디다. 너무 사람들을 자극하지 말라고.”
  
  그 시절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은 목숨을 건 용기였다. 그의 말이 계속되고 있었다.
  
  “내가 재판을 받을 때 판사가 왜 왔느냐고 묻습디다. 그래서 하나님이 발로 차서 여기로 굴러오게 된 돌이라고 했소.”
  
  예수는 절벽에 떨어뜨리려는 사람들에게 대항하지 않고 도망가지도 않고 그들 가운데를 통과해서 갔다. 성경 속의 용사들도 모두 단독인 것 같다. 혼자서 진리와 정의를 위해 적의 무리를 앞에 두고 그 위험 속에 몸을 내던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