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다운 사람>
  
  사법시험이 존재할 때 삼차시험의 면접관을 한 적이 있었다. 왜 법을 했느냐고 물으면 모두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게 정의라고 대답들을 했다. 나 역시 변호사를 시작할 때 나름대로 힘없고 가난한 사람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빠삐용 같은 고도에 갇혀 있는 존재를 자유의 땅으로 건너게 해 주는 뱃사공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낭만은 곧 금이 갔다. 상습절도죄로 수십 년을 감옥에 있던 대도라고 불리던 인물의 무료변호를 했었다. 그가 가난하고 힘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은 다른 것 같았다. 그는 내게 “프로의 세계는 은퇴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도둑질을 했다. 그는 그 세계에서 귀족이고 영웅이었다. 자부심이 대단했다.
  
  탈주범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을 변호한 적이 있었다. 매스컴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영화계에서는 그를 모델로 작품을 만들려고 했다. 나는 그를 말리는 내용을 담은 강한 편지를 썼었다. 그의 행위는 범죄였다. 저작권을 가진 작품이 아니었다. 그는 참회하고 감사하는 지극히 작은 평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저주가 담긴 답장을 내게 보냈다. 나를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했다. 겉으로는 인권 변호사인 척 하면서 뒤로는 영화를 만들어 돈을 벌려고 하는 악질이라고 했다. 나에 대한 그의 주관적 해석인데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이십여 년이 넘도록 그렇게 한 사실이 없으면 이제 그의 생각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학생 시절부터 막연하게 대중이니 서민이니 국민이니 하는 추상적 개념을 사랑했다. 가난하고 힘없고 불쌍한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 줄 알았다. 나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허위의식도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인식들을 보다 구체화됐다. 내가 변호하고 싶고 나 자신이 그 중의 하나가 되고 싶은 것은 ‘사람다운 사람’이다.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사람이다. 지위라든가 재산이 아닌 영혼의 사람이다. 참된 가치를 영혼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직위나 돈으로 장식하는 가짜 인생이 아닌 사람이다.
  
  1963년에 함석헌옹이 연설했던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는 평생 벼슬이란 걸 해 본 적이 없는 분이었다. 가난했다. 그냥 하나님을 믿고 평민으로 자기의 길을 갔던 사람이다. 그의 연설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내가 미국에 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만날 때마다 먼저 묻는 게 내가 어떤 직위를 가졌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 ‘아이 엠 파머’라고 했어요. 농부라는 소리죠.”
  
  그는 그냥 미스터 함석헌이면 되는 사람이었다. 수필가인 피천득 선생이 살아계실 때 그의 인터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었다.
  
  “한 세기를 살았어. 인간이 사는 데 먹는 것과 입는 게 중요한데 막상 살아 보니까 평생 먹은 양이 얼마 안돼. 또 검소하게 지내면 옷값도 별로 안 들어 작은 돈이라도 넉넉하게 지낼 수 있었어. 그런데 왜들 아귀다툼하고 사는지 몰라. 나는 먹는 양이 아주 작아. 그렇게 하니까 이렇게 오래 사나 봐.”
  
  그는 위대한 평민이었다. 안으로 충족을 느껴 외부에서 무엇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다운 사람을 돕고 싶다. 내가 돕고 싶은 것은 관념적인 민중이 아니다.
  
  노동계급도 아니다. 서민의 영혼 속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귀족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다. 동학 혁명 때 죽창을 들고 나선 백성들 중에는 자기네가 양반을 죽이고 그런 양반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다. 칠십년대 부촌인 압구정동에서 파출부 일을 하고 가난한 동네로 가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녹음한 걸 들어본 적이 있었다. 세상이 바뀌면 주인집 아파트를 내 것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말들이 들어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내면은 사실은 귀족이다.
  
  어떤 대통령은 ‘보통사람들’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또 어떤 대통령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주장했다. 그 대통령들이 말하는 사람이란 어떤 존재였을까.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도와야 할 사람은 ‘사람다운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