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의 블로그에 익명으로 이상한 댓글이 하나 실렸었다. 열등의식이 가득하고 자존감 없는 놈이라고 나를 욕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민생을 살펴온 정치인을 도대체 어떻게 보느냐고 화를 내면서 예전의 현자를 들먹이고 고고한 체 하는 위선적인 글을 더 이상 쓰지 말라고 했다. 대충 나를 잘 아는 정치권에 있는 누군가가 분노해서 써 보낸 것 같았다. 그가 그렇게 화를 낼 만한 글 내용도 아니었다. 대통령 후보가 될 사람들의 경선 토론회 장면의 아쉬움을 썼었다. 검사 출신들이 상대방에게 “이건 모르죠?” 하고 약을 올리면서 ‘빈깡통’이라고 매도하는 경박한 모습이었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사람들한테서 인간의 향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희망인 훌륭한 지도자상을 글로 썼다. 다만 제목을 ‘빈깡통’이라고 달았는데 내용은 읽지 않고 제목만 보고 분노한 것 같았다. 그 글을 쓴 사람은 나의 내면을 너무 잘 아는 것 같았다.
  
  내가 열등의식이 있고 자존감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평생을 노력해도 아직도 그 쓴 뿌리가 남아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저 평범한 노인으로 스스로 소외되어 나의 골방에서 글을 쓰고 인터넷이라는 바다의 물 한 방울도 안되는 작은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작은 일과지만 나름대로 뜻이 있었다. 내가 존경하는 시대의 어른들을 보면 대개 작은 잡지를 내거나 책을 만들었다. 함석헌 선생은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를 만들었다. 장준하 선생은 ‘사상계’라는 잡지로 시대의 닻 역할을 했다. 다석 류영모 선생도 ‘다석일지’라는 매일의 명상록을 쓰고 그게 책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영혼에 영향을 미쳤다. 성자로 알려진 고영근 목사가 살아있을 때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작고 소박한 자신의 작은 방에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다.
  
  내가 존경하는 분들은 그런 비주류에 속하는 분들이었다. 바른 말을 하다가 투옥을 당하기도 하고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나는 약간의 깨달음을 얻은 보답으로 천안의 풍산공원묘지에 있는 류영모 선생의 무덤에 가서 꽃을 한 송이 놓고 온 적이 있었다.
  
  나는 십년 전쯤부터 매일 아침 기도를 하고 글을 한편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글은 나의 명상록이기도 하고 기도이기도 하다. 존경하는 분들이 그랬던 것처럼 블로그를 나의 뒷골목 작은 출판사나 잡지사처럼 여기고 산다. 변호사 등록을 하고 삼십오 년의 세월이 흘렀다. 변호사로 수많은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얘기를 듣고 그들의 애환과 함께 했다. 변호사는 기자나 검사와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야 했다. 기자나 검사는 사회의 그늘진 면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보아야 했다. 변호사인 나는 이 직업을 암흑 속에서도 한 점의 빛을 찾아 그걸 법정과 세상에 알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책에서 이런 장면을 읽었다.한 선생님이 백지에 검은 점 하나를 찍어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물었다.
  
  “여러분 뭐가 보이죠?"
  “검은 점이요.”
  “여러분은 검은 점이 보이지만 나는 점보다 훨씬 넓은 흰 면이 보여요.”
  
  나는 그 예화에 나오는 것 같이 변호사는 그 하얀 넓은 면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검은 점을 같이 보면서 그걸 희거나 회색이라고 궤변을 늘어놓는 게 아니었다. 죄와 고통을 통해서 오는 맑은 샘물 같은 그들의 참회와 깨달음을 나는 보았다.
  
  나이가 들면서 인간존재의 본질에 대해서도 조금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매일 아침 경전을 읽고 옹달샘 바닥에 있는 맑은 물을 바가지로 퍼내듯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게 나의 기도이기도 하다. 나의 작은 깨달음이 주파수가 맞는 소수의 몇 명과 공감한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매일같이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주는 분도 있다. 그 분께 이 글로 감사의 표시를 한다. 또 따뜻한 격려를 보내준 분도 있다. 감사하다. 아주 희귀하지만 어린애 같은 투정을 부리는 분도 있었다. 재미없으니 다른 걸 써보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나의 글을 읽는 사람을 그저 꽃구경하러 온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읽는 사람의 입맛에 맞춰 글을 만드는 입장은 아니다. 글의 조회수나 대중적 인기와도 상관이 없는 나이다.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뿐이다. 직접 보지는 않지만 읽어주는 분들을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는 동지라는 느낌으로 대한다.
  
  나를 비난하는 댓글이 스스로 삭제가 됐다. 그리고 며칠 전 ‘정말 감사하다’라는 한 댓글을 봤다. 이상하게 익명으로 나를 욕하던 그 댓글의 주인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가 소망대로 잘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