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했던 불편한 자유>
  
  젊은 날 대통령 직속기구에서 잠시 일할 때였다. 정권이 민감하게 신경쓰는 것은 국민의 여론이고 그 여론을 만드는 게 언론이었다. 어느 날 각 신문사와 방송사 부장들을 호텔레스토랑으로 초청해 선물을 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나는 법률담당 변호사인데도 조직은 내게 특수활동비를 맡겼다. 그건 어디에 써도 되는, 영수증이 필요 없는 돈이었다. 장부도 작성하지 말고 모든 걸 머릿속으로 기억했다가 조직을 나갈 때 망각하라는 지시를 받았었다.
  
  언론사 간부들의 식탁 위마다 고급호텔 양복점 티켓과 돈을 넣은 봉투를 놓아두었다. 정권은 고급정보를 미끼로 그들을 유혹하고 촌지라는 당근으로 언론을 순화시켜왔던 것 같다. 언론사 간부들은 너무나 당연한 듯이 선물과 촌지봉투를 받았다. 오랜 세월 그래왔던 것 같았다.
  
  초대받았던 언론사 데스크를 담당한 사람들이 돌아간 후였다. 나는 몇몇 언론인의 식탁 위에 놓인 하얀 테이블보 밑에 숨겨져 있는 촌지와 상품권 봉투를 보았다. 같이 온 다른 언론인 모르게 하는 조용한 거절이었다. 그들의 행위에서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남이 돈을 내주는 골프를 치고 촌지를 받고 정말 자유롭게 비판칼럼이 써질까 의문이었다. 다음부터 촌지를 거절한 언론인이 쓴 컬럼을 보면 달리 보였다. 나는 그에게서 자유를 얻는 한 방법을 배운 것 같았다. 그 기관을 나와서 다시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다가 대한변협의 상임이사를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이웃 사무실의 변호사와 함께 점심을 먹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변협의 이사 한 자리를 하려고 출마하는 회장 후보 옆에 달라붙는 변호사가 많아요. 내가 들으니까 끼리끼리 패를 이루어 해외여행도 공짜로 여러 번 하고 얻어먹을 게 있나봐. 그런 소리를 들었어요. 협회에 돈이 쌓이니까 별놈이 다 덤벼들어 먹으려고 한다니까.”
  
  그렇게 말한 변호사는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법제처장을 지낸 사람이었다. 대한변협 상임이사가 돼보니까 들었던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다른 나라의 변호사제도 연구라는 명목으로 협회에서 비용을 대는 해외여행이 여러 번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변호사제도를 배우러 후진국 몽고에 간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홍콩의 백화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여행에서 빠졌다.
  
  분위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 할까 봐 가는 건 오히려 속박이었다. 나는 마음이 편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당연히 미움의 눈길이 오고 빈축의 대상이 되었다. 무리의 패거리는 자기들과 다른 존재를 그냥 두려고 하지 않는다. 나의 그런 점을 이용하고 싶은 내부고발자도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회장과 같이 해외로 출국했던 국제담당이사라는 변호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도대체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해외세미나를 하는 실무는 국제담당이사인 저 혼자 참석해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굳이 회장이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고급호텔에서 최고급 음식을 먹고 마시고 골프 치면서 변호사회의 예산을 낭비하고 있어요. 도대체 이게 뭡니까?”
  
  그는 내게 여러 가지 사실을 말해 주었다. 협회의 대표가 되는 사람은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세미나에 측근들을 데리고 부지런히 가는 것 같았다. 국내 정국상황이 바뀌고 성명을 하나 발표하려고 할 때도 회장 얼굴 한번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이 쓰는 돈은 지방의 가난한 변호사가 힘겹게 벌어 바치는 회비도 들어있었다.
  
  그걸 따졌다. 나는 예산담당 직원에게 회장의 출장경비를 물어보았다. 담당 직원은 비밀이라고 했다. 비밀이라는 표현 자체가 분명치 않은 어떤 의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때부터 나는 불편한 존재가 됐다. 그리고 공공의 적이 되어 철저한 소외를 맛보았다. 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종종 해왔다. 그래서 기피인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알면서도 고통을 당하면서도 왜 그랬을까. 나는 분위기나 상황에 얽매여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속박이라는 생각이다. 마음이 불편하고 자유롭지 못하다.
  
  헌법에 규정된 억압받지 않는 것만이 자유권은 아니었다. 짐승같이 본능대로 먹이에 대한 욕심대로 행동하는 것도 자유는 아니다. 작은 이익을 보고 모여들어 낄낄대는 인간들도 짐승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자유에는 선악을 판가름하여 악을 피하고 선을 선택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닐까. 올바른 선택 말이다. 자유는 선한 의지를 행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주위에서 차가운 눈길과 비웃음이 올 때 나는 그분께 물어본다. 영적생명 달성의 길 이것을 일컬어 자유라고 해도 틀림없을 것 같았다. 세월이 흘러 몇 년 후였다. 새로 당선된 대한변협회장이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그의 탁자 위에는 예전 회장들이 쓴 예산서류가 놓여있었다.
  
  “내가 살펴보니까 그때 엄 변호사만 해외여행을 안가셨더라구. 많이 불편했겠어. 그리고 여기 보니까 세미나 참석명목으로 돈을 너무 많이 썼더라구.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상한 짓을 해왔던 예산담당 직원도 내보낼 예정이에요. 그 사람 신세 진 것 없으니까.”
  
  내가 선택한 불편했던 자유가 그럭저럭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