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사람들>
  
  이웃에 사는 작가 김홍신씨의 집에 초대를 받아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소설 ‘대발해’의 원고를 완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부인과 사별하고 그는 혼자 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그가 작품을 쓰던 과정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작품을 쓰는 지난 삼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커튼을 치고 방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쓰고 또 썼죠. 그렇게 집중해서 쓰다가 잠이 들면 꿈 속에서 내가 옛날 전쟁터의 병졸이 되어 싸우는 경우도 있었어요.”
  
  나는 무문관 수행을 하는 스님같은 그의 강한 의지에 놀랐다. 작품에 그렇게 자신의 온 존재를 바쳐야 문학 전집 중 하나에 자기의 이름을 올릴 수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세상에는 나같은 의지가 박약한 아마추어들이 넘어갈 수 없는 프로의 세계가 있는 것 같다. 주변을 보면 어려서부터 바둑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평생을 바둑에 몰입한다. 머리도 좋은 친구들이다. 그래도 입단해서 프로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골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평생을 거기에 미쳐서 산 친구도 프로골프선수 얘기를 하면 자기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고개를 설래설래 흔든다. 자기의 전 존재를 던지는 강한 의지 없이 프로는 될 수 없는 것 같았다. 소설가인 김홍신씨는 이런 말도 내게 했었다.
  
  “제가 쓴 ‘인간 시장’이란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백만 부가 나갔어요. 그 내용 중에는 사회 각 분야의 비리와 부정을 고발한 게 많았어요. 공격이 들어오는데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이 들어오고 누가 돌을 던져 집의 창문이 깨지고 죽는 줄 알았죠.”
  
  그런 고난의 불을 의연히 통과해야 하는 또다른 강한 의지가 필요한 것 같았다. 보통사람들의 기억에 그 이름이 남겨진 다른 유명한 소설가들의 의지와 삶도 비슷한 것 같았다. 나도 소설을 써 보고 싶었지만 아무나 글을 쓰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라미가 멋모르고 상어가 되고 싶어 한 것 같았다. 돌이켜 보면 문학뿐 아니라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프로 공부선수들은 높은 아이큐와 함께 강한 의지도 갖춘 것 같았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 해 암자의 한 방에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친구와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며 고시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우연한 인연으로 만난 친구였다. 같이 일 년을 지내면서 초인적인 의지를 가진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걸 나는 깨달았다. 작은 방에서 책상을 나란히 하고 그와 공부를 했었다. 그가 집중해서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면 책의 종이들이 날카로운 눈빛에 꿰뚫리는 것 같았다. 허약한 그의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아 나오는지 그는 멀리서 부엉이가 희미한 울음을 우는 새벽까지 잠자리에 들 줄을 몰랐다. 처음 며칠을 그에게 지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마침내 항복을 하고 나는 누워버렸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의지박약의 나를 깨달았다.
  
  열등감과 좌절을 느끼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회의가 일었다. 될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절에는 사주를 잘 보는 보살님이 있었다. 그 보살님은 그 친구의 운명이 앞으로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나는 그에게 모든 걸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짐을 싸 가지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 해 군에 입대했다. 같이 공부하던 그 친구는 그 해에 고시에 합격하고 판사가 됐다.
  
  나는 갑자기 목적이 없어지고 바닷물에 떠도는 해초 같은 인생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무슨 목적으로 생사의 거리를 여행하는지도 모르고 도달할 항구도 없는 것 같았다. 불행의 극은 돈이나 집 아니면 친구가 없는 게 아니었다. 진짜 불행은 목적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세상을 다시 살아가야 할까를 고민했었다. 나는 약해진 나의 영혼을 격려하기 시작했다. 나는 틀렸다고 생각하면 틀리게 되고 할 수 있다고 믿으면 된다고 나를 세뇌했다. 패배감은 나를 영원히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약한 의지는 약한 숯불과 같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불러일으키다가 바람이 불어주면 마침내 뜨거운 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어느 날 평생 나에게 희망을 걸었던 함경도 출신 어머니가 이런 말을 했다.
  
  “다 집어치워. 내가 괜히 뒷바라지한다고 헛고생을 했어. 넌 안되는 놈이야. 다 그만둬.”
  
  어머니의 실망에서 나온 그 과격한 말이 영혼에 불을 일으키는 강한 바람이 되었다. 갑자기 오기가 솟았다. 그리고 몇 달동안 내가 혀를 내둘렀던 그 친구처럼 공부에 집중했다. 그리고 간신히 인생의 한 문턱을 넘었다. 비록 약한 의지라 하더라도 불을 통과하면 강한 의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