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 시대의 화두(話頭)로 떠올랐다. 논쟁이 뜨겁다. 20대 대통령선거 후보 TV토론에서도 불꽃튀는 격론이 벌어졌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특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파생된 단어다. '성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남녀평등 추구의 형평운동(衡平運動)'이다.
  
  계속되는 외침에도 남존여비(男存女卑)의 고루한 인습에 함몰된 고착된 생각은 좀처럼 그 껍질이 벗겨지지 않고 있다. 특정 공동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강대국에 의해 약소국가의 여성들이 당해야 했던 그 신음(呻吟)소리는 세계적 현상이다. 여인들의 슬픈 울음소리는 우리나라 여성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치욕과 아픔이 '공녀(貢女)'와 '위안부(慰安婦)'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공녀'는 국력이 센 나라가 힘이 약한 변방국가들로부터 젊고 예쁜 여성을 강제로 데려가는 것을 말한다. 중국의 역대 국가가 우리의 역대 왕조에 무리하게 강요했다. 공녀는 크게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작게는 집안을 위해 '물건' 취급을 당한 죄 없는 조선(朝鮮) 여인들이 겪어야 했던 억울한 형벌같은 것이기도 했다. '위안부'도 공녀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강대국에 의해 약소국 여성들이 강제로 끌려가서 인권을 착취당한 인권유린의 전형(典型)이기도 하다.
  
  공녀는 중국의 원(元)나라가 고려(高麗) 충렬왕 때부터 공민왕대에 이르기까지 80여 년간 고려의 젊은 여성들을 원나라에 보내도록 요구하기 시작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50여 차례에 걸쳐 한번에 사오십 명씩 데리고 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는 수천여 명의 고려 여인들이 원나라 궁궐의 궁녀(宮女)가 되어 하녀(下女)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한(恨)많은 일생을 살다가 불귀(不歸)의 원혼이 된 것으로 사가(史家)들은 보고 있다.
  
  원나라의 궁녀가 된 공녀 가운데는 간혹 황제의 후궁(后宮)이 된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노예나 다름없는 비참한 생활을 했다. 낮설고 물선 타국에서 부모 형제를 그리며 눈물로 일생을 살아온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원나라가 망하고 명(明)나라가 들어서서도 공녀 요구는 계속됐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朝鮮王朝)가 들어서자 명나라는 태종 8년(1408) 조선조 초기부터 1417년까지 모두 5차례나 요구했다.
  
  1427년부터 1433년까지 세종임금 때까지도 모두 12차례에 걸쳐 요구했으나 5차례는 명나라 사정으로 중단되고 7차례에 걸쳐 114명의 조선 여성을 공녀를 데리고 갔다. 그 이후 인조와 효종 때도 요구는 이어졌다. 공녀 가운데는 명나라 태조의 후비(后妃)가 된 석비한씨(碩妃韓氏) 같은 여인도 있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淸)나라에서도 요구는 이어졌다.
  
  중국의 역대왕조가 조선의 젊은 여성들을 공녀로 데려간 이유는 "조선의 여성은 상냥하고 자태가 예뻤기 때문"이라고 사서(史書)는 전하고 있다. 원. 명. 청 등 중국의 역대 왕조가 황제국으로 행세하면서 고려와 조선을 제후국(諸侯國)으로 얕잡아보고 조선 여인들을 노예나 성노리개감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강요가 있으면 조선왕조는 '진헌색(進獻色)'이란 기관을 만들어 공녀 선발작업을 했다는 가슴아픈 슬픈 기록도 있다.
  
  공녀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위안부'도 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병사들의 성욕(性慾) 해결과 성병 예방을 목적으로 여성들을 동원하여 설치한 시설물을 '위안소'라고 불렀다. 위안소에 수용된 여성들을 예기(藝妓), 작부(酌婦)라 부르기도 했다. 이외에도 매음부, 접객부, 종업부, 영업자 등 여러 명칭으로 부르다가 복잡하고 다양한 과정을 거쳐 '위안부'가 됐다.
  
  '위안부'라는 호칭은 잘못된 것이다. 일제치하 조선의 어느 여성이 스스로 '위안부'가 되겠다고 지원한 사람이 있는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의 젊은 여성들에게 취업을 시켜 준다고 속이고 강제로 데리고 가서 일본군대의 '성노리개'로 만들고 인권을 짓밟은 것 아닌가? 그래서 '위안부'가 아닌 '강제위안부'라고 부르는 것이 할머니들이 겪은 질곡의 일생을 위로하는 길이 될 것이다. 어림잡아 강제위안부의 숫자는 한국인 피해여성 240명, 북한 218명 등 458명이 신고됐으나 실제로는 이삼 천 명이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위안부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근로정신대(勤勞廷身隊)'도 있다. 조선의 젊은 여성들을 군수공장으로 데리고 가서 노동력을 착취한 것이다. 공녀와 위안부, 정신대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찍 결혼(早婚)시키거나 숨어 지내는 경향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다. 일본은 조선의 여성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필리핀 등 동남아 여러 나라의 여성들에게도 수없이 만행을 저질렀다. '강제위안부' 문제는 아직도 일본측의 거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며 끈질지게 투쟁해 온 할머니들도 이제 몇명 남지 않았다. 힘 없던 약소국가 조선의 여성들이 당한 슬프고도 눈물어린 사연은 이루 형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잡혀 간 인질이 60만여 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수많은 여인들이 붙잡혀 갔다가 온갖 고초를 겪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여인들이 '환향녀(還鄕女)'다. 그러나 이들에겐 '환향녀'란 이름이 '화양년'으로 바뀌어 수모와 오명(汚名)에 시달리기도 했다.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등 오랑캐와 왜구들에 의해 짓밟힌 조선 여인들의 슬픈 이야기(女人哀史)는 천추의 눈물이요,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역사의 수모(受侮)다.
  
  나라가 힘이 없고 군왕(君王)이 무능해서 백성들이 당해야 했던 고통과 아픔의 역사는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교훈이다. "나라가 어지러우면 현명한 신하가 생각나고,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가 생각난다"(國難卽思賢臣,家貧卽 思良妻)고 했다. 여성이 억압받는 것은 잘못된 사회구조이다. 버리고 가야 할 부끄러운 유산(遺産)이다. 여성은 우리 공동체 구성의 중심축이다. 특히 '어머니'라는 이름의 여성은 참으로 위대함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