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 근처의 재래시장에 갔다. 바지의 길이를 조절하기 위해 옷 수선 가게를 찾기 위해서였다. 낡은 건물 아래 그릇 가게, 떡집, 보리밥집, 옷가게들이 어깨를 비벼대며 나란히 있었다. 어둠침침한 시장안은 거미줄 같은 미로가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옷가게 문가에 선 오십대 말쯤의 여자에게 물었다.
  
  “옷을 수선하는 가게 없어요?”
  “토요일 오후라 모두 문을 닫았는데 아마 그 가게 여자는 지금도 있을 거에요. 따라오세요.”
  
  그 여자는 내 앞에서 성큼성큼 미로를 걷기 시작했다. 그냥 손짓으로 가르쳐 줘도 될 텐데 앞장을 섰다. 혼자서는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여자는 미로를 한참 가다가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단층 가건물 귀퉁이의 초라한 옷 수선 가게를 알려주고 갔다. 안으로 들어갔다. 베니어판으로 만든 벽에 색바랜 벽지가 붙어있고 그 앞에 손때묻은 낡은 미싱이 보였다. 군데군데 슨 녹이 세월의 깊이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내가 바지 수선을 부탁하자 그 여자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바지단을 접어 둥글게 만 후에 미싱에 박고 있었다. 뒤에 앉아 기다리던 나는 그 여자의 일하는 등에서 평화시장 봉제공장의 미싱을 돌리는 소녀의 등이 겹쳐 떠올랐다. 아마도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옷 수선을 하신 지 오래 됐어요?”
  내가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 같아 이곳에 왔는데 벌써 여기만 해도 이십 년이 넘었네요. 이 시장에 지금은 사람들이 별로 오지를 않아요.”
  어느새 그 여자는 일을 끝내고 바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얼마죠?”
  내가 물었다.
  
  “삼천 원이요”
  “천원 더 받으세요”
  “어이구 이렇게나 많이? 감사해요.”
  
  그 여자의 얼굴에 진심으로 감사한 표정이 떠올랐다. 요즈음 서울에서는 거지도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에 감사하지 않았다. 그 여자의 내면에 노동에 대한 어떤 신성한 충만함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십 년 가까이 변호사를 해 오면서 나는 내 직업을 어떻게 생각해 왔을까. 작은 사무실과 책상 그리고 노트북을 옷 수선 가게 여자의 녹슨 미싱같이 사랑해 왔을까. 위를 보면 불행해지고 아래를 보면 만족해 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경박한 나의 시선도 항상 위를 향해 비교하면서 은근히 열등감을 느꼈다. 같이 고시 공부를 하고 같은 해 합격한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고 대통령 후보가 되는 걸 보면서 세상의 관념이 흘러들어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법정에서의 역할도 마찬가지였다. 법정은 화려한 연극무대이기도 했다. 붉은 등받이 의자에 검은 법복을 입은 판사는 임금역할을 맡은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변호사는 그 밑에서 굽실거리는 조연이었다. 연극에서 하녀역을 맡은 여자가 나는 이 역할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 하고 주제를 모르는 항의를 하듯 주인공이 아닌 내 마음이 불편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다른 길을 모색한 적도 있었다. 다른 분야에서 들어오라고 손을 내밀면서 나를 유혹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곳은 모두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허영과 야망이 섞여 내가 기획한 것은 성공한 적이 없었다. 하나님이 내게 강요하고 내가 그 분의 명령이라 믿으면서 한 것이라야 성공했다. 내가 스스로 나서서 공명심이라는 불순물을 포함한 채 어떤 시도를 하다가 실패와 치욕을 불러오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그분이 주신 천직이었다. 그걸 받아들일 때 그분은 일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우연히 책을 통해 일을 잘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영국의 의사였던 서머셋 모옴은 런던 근처의 빈민가에 왕진을 다니면서 그 비참한 삶들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을 글로 썼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의사였던 크로닌은 자기가 체험한 의사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진정한 소명을 소설로 형상화했다. 세계적 고전이 된 그들의 작품에는 어떤 영기(靈氣)가 서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작품을 통해 나는 변호사인 내가 일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변호사는 수 많은 사람들의 애환과 절규를 듣는 직업이었다. 그들과 공감하면서 사회적인 문제점을 법정과 세상에 내놓는 직업이었다. 그 방법이 말과 글이었다. 글쓰기가 나의 직업에 부수해서 그분이 내게 명령한 일인 것 같았다. 허영심에 세상에 나를 포장하기 위해 글을 쓴 적도 있었다. 그런 글은 아무런 울림이 없는 문서 공해였다. 마른수건을 쥐어 짜듯이 메마른 나의 마음으로 쓰는 글은 쓰레기였다. 내가 모르는 사이 마음 깊은 곳에서 떠올라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어지는 글들이어야 했다. 그런 글 들만이 죄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가난한 자를 달랠 수 있었다. 그게 나의 체험이다.
  
  옷수선 가게의 녹슨 미싱 앞에 앉은 여인을 보면서 나는 직업이란 그 분의 선물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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