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바다에 가까운 교도소에 가서 유명한 건달 두목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사람들은 겁을 먹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짐승 수준의 인간도 많이 만났다. 법의 밥을 먹기 위해서는 흉악범이라고 겁을 먹으면 안됐다. 던져주는 돈을 허겁지겁 받으면 안 된다. 그 속에 낚시가 있어 아가미를 꿰이기 쉽다. 내가 만났던 건달 두목이 말했다.
  
  “재심을 맡아 주시면 제가 최신 승용차를 사드리고 몇억을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낚시 밑밥이었다. 나는 그를 풀어낼 능력이 없었다. 세상은 괴물로 보이는 그가 나오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돈으로는 안 되고 작더라도 선을 행한 게 있으면 말해 보세요. 부하에게 베푼다거나 과시하기 위해 선심을 쓴 거는 빼고 말이죠.”
  하나님이나 세상이나 그의 반성과 선행을 요구할 것 같았다.
  
  “사회에서 엄청나게 나쁜 일들을 많이 했는데 감옥에 들어와서 냄비같이 잠시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사람마다 갈 길이 따로 있나 봐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고작 한 일이 내가 솔선해서 청소를 했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 목욕을 할 때 등을 밀어줬어요. 역시 그런 잡일이 나한테는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그는 자신에 대해 상당부분 체념한 것 같기도 했다.
  
  “본인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이 극도로 그를 혐오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 멍에에서 빠져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 같았다.
  
  “저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잘 압니다. 뉴스에 보도된 제 흉한 모습을 직접 봤습니다. 세상에서 던지는 욕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급한 성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폭력을 휘둘러 인격을 인정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제가 늙고 병들어 죽을 때가 되면 이 세상에서 한 사람도 나를 부축해 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요.”
  
  “뭐를 추구해 왔어요?”
  “어릴 때 아버지가 깡패에게 당하는 걸 봤죠. 그 순간 힘이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계기로 권투도 배우고 악도 길렀죠. 실전에서 싸워오면서 전국 조직의 최고가 됐어요. 원색의 폭력은 핫바리 힘이더라구요. 그 위는 정치 권력, 사법 권력이 있었어요. 재벌이나 종교가 가진 돈의 힘도 있었죠. 그런데 그 권력들이 자기들은 다 깨끗한 척 위선을 부리면서 뒤로는 다 나를 이용하더라구요. 본질은 나보다 더 더러운 놈들이 많아요.”
  
  그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었다. 나는 눈에 한 서린 독기가 남아있는 그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는 누구든지 때려 눕히고 칼로 찌를 수 있는 원색의 힘을 가졌다. 그와 같은 사람을 대할 때 나약한 변호사인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런 때가 종종 있었다. 여러명을 죽인 흉악범을 만날 때도 있었다. 은근히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겁이 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때려죽일 힘을 달라고 하지 말고 맞아 죽을 용기를 달라고 해라. 그걸 주마.’
  
  그게 답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기도는 즉각 응답이 오곤 했다. 법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판사가 왕같이 보일 때면 속으로 기도했다. 그리고 눈을 뜨면 그들은 주먹만큼 작아져 있었다. 하나님 앞에 근육의 힘은 달려오는 수레바퀴 앞에 양손을 들고 맞짱뜨려는 사마귀쯤 되는 게 아닐까.
  
  그 후 그 건달두목은 석방이 됐다. 그는 다시 악마의 입김을 쏘인 것 같았다. 악마는 그가 계속 밤의 세계 대통령인 걸 즐기게 하는 것 같았다. 그의 작은 악을 큰 악같이 만들어 세상에 보도되게 했다.
  
  어느 날 뉴스를 통해 그의 죽음을 알았다. 화면 속 영정사진 안에서 그는 독기가 없어진 헐거운 눈으로 세상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의 영혼을 하나님은 어떻게 처리하실까 궁금했다. 정확히 죄를 저울에 달아 그를 지옥으로 보내실까. 아니면 죄는 덮어주시고 그가 행한 작은 선만을 기억하실까. 그는 감옥 안에서 청소하고 목욕할 때 다른 사람의 등을 밀어준 걸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어린 싹이 햇볕을 받아 물썩 자라나는 것처럼 그의 작은 선이 자라나게 하셨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를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하나님과 악마 사이에서 줄을 타는 것 같아 보였다. 하나님은 부축하시고 악마는 넘어지게 하려는 것 같았다. 이제 그의 영혼이 저 세상에서 만나는 분은 어떤 분일까. 선을 보는데 예민하고 선을 남기고 악을 덮어주려고 하시는 걸 볼까. 수많은 악보다 한 가지 제대로 된 선이 없는 걸 안타까워하시는 걸 보지는 않을까.
  [출처] 건달 두목의 작은 선행|작성자 엄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