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방향을 바꾸라는 계시>
  
  내가 보기에 딱한 사람이 많다. 몇 년 동안을 고시원에 처박혀 구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내게 물었다.
  
  “도대체 내가 왜 시험에 안되는지를 모르겠어요.”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솔직히 공부하는 능력 부족이었다. 대신 그는 한식요리를 잘했다. 자격증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공무원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로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낙방이라는 사실로 대답하시는 것 같았다. 나도 젊은 시절 사법고시에 매년 떨어졌다. 네 번 정도 떨어지니까 대충 그분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실패는 방침을 바꾸라는 그분의 계시 같았다. 그 다음에도 안 되면 그분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다른 길로 가면 그만이다. 그러다가 다섯 번째 붙었다.
  
  그런 고시가 없어졌다. 대신 의과대학 졸업생이 의사 시험을 치듯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을 친다고 한다. 주관적인 고난은 제도가 바뀌어도 마찬가진가 보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로스쿨 졸업생의 글을 받은 적이 있다. 변호사 시험 응시자격이 다섯 번으로 제한이 되어 있어서 그 이후는 영원한 낭인이 되어 버린다는 내용이었다. 제도를 바꾸어서 그들을 모두 구제해 주어야 하는 것인지 실패가 그들 삶의 방침을 바꾸라는 하나님의 계시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 경우는 하나님이 말로 하시지 않고 사실로 그 뜻을 알려주는 때가 많았다. 지금도 그런 것 같다. 금년 초에는 우연히 강원도의 산불 속에 혼자 갇혀 겁을 먹었었다. 한밤중 시뻘겋게 타오르는 산불과 연기 속에서 그동안 했던 말과 글이 모두 위선 같다는 반성을 했었다. 나는 죽음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죽음에 대한 글을 그럴 듯하게 써왔다. 나는 가짜라는 걸 느꼈다.
  
  전에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의 마음은 풀잎보다도 약했다. 악마 의뢰인을 만나 거지 신세가 될 뻔한 적도 있다. 몇푼 안되는 재산을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했다. 나는 가짜였고 모든 게 위선이었다는 걸 확인했었다. 하나님은 말로 하시지 않고 재난으로 혹은 병으로 혹은 악인을 만나게 해서 그 뜻을 내게 전했다. 사실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 한 목사가 있었다. 그는 뒷골목 작은 건물 지하실을 빌려서 교회를 시작했다. 전단지를 만들어서 집집마다 찾아다녔다. 문을 열어주는 집은 거의 없었다. 어떤 집은 개가 나와 물려고 했다. 어쩌다 그 전단지를 받은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냉소가 흐르기도 하고 조롱이 배어있기도 했다. 밥을 달라고 한 것도 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너무했다. 지친 그는 어느 골목 계단에 앉아 피곤한 다리를 쉬면서 하늘을 향해 말했다.
  
  “하나님 이렇게 힘들 바에야 차라리 감옥에 가서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게 낫지 어디 힘들어서 목사 하겠습니까? 안그렇습니까?”
  
  얼마 후 그는 감옥에서 변호사인 나를 찾았다. 그는 교회에 나오는 어린 여자아이를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의 지하교회에 놀러오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엄마가 낮에 일을 나가면 갈 곳이 없는 아이였다. 그 아이의 엄마가 고소를 한 것이다. 목사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성폭행을 했다는 시간과 장소에 목사의 부인과 딸이 그곳에 있었다. 부인과 딸이 결백을 증명했다. 그가 감옥으로 찾아간 내게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당해야 합니까? 뭘 잘못했느냐 말입니다. 같은 감방에 있는 젊은 폭력범 놈이 나를 조롱하면서 주먹 쓰는 자기가 계집아이 건드리는 더러운 목사보다 낫다고 놀려요. 죽고 싶은 마음입니다. 나를 왜 이렇게 하시는 겁니까?”
  
  그는 하나님에게 할 원망을 엉뚱한 변호사에게 한 것 같았다.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입에서 말이 튀어나갔다.
  
  “복음이 적힌 전단지를 가지고 돌아다닐 필요도 없이 파렴치범이라는 너의 존재 자체가 죄인들에게 훨씬 위로를 주는 것이 아닌가?”
  
  변호사인 내가 할 말이 아니었다. 내가 무엇에 씌워서 말하는 느낌이었다. 내 말을 듣는 그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가 다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복음을 전하려는 나를 왜 감옥에 쳐넣느냐구요?”
  “네가 골목의 어느 집 문 앞에서 말하지 않았느냐? 이럴 바에야 차라리 감옥에 들어가 전도를 하는 게 낫겠다고.”
  
  내 입에서 변호사의 말이 아닌 다른 말들이 계속 튀어나가고 있었다. 그가 이상한 눈으로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며 소리쳤다.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이상한 체험을 한 날이었다.
  
  그는 다음날부터 감옥 안에서 즐겁게 설교를 한다고 했다. 영(靈)인 하나님은 몸이 없으니까 나를 통해 말한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나는 하나님은 소리를 내어 말씀하시지 않고 묵묵히 사실로 말씀하시는 걸 알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의 잘못은 전쟁의 결과라는 사실로 말씀하신 게 아닐까. 그리고 세상 교회의 잘못은 교회의 실정으로 알려주시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