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씩 일기장을 들추다 보면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나의 영혼이 이십여년 전 납색으로 반짝이는 서산 앞바다 낚시배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의 경치가 보인다. 수평선 위에는 거대한 유조선이 떠 있고 해변에는 삼성화학 엘지화학의 높다란 공장 굴뚝이 보인다. 나는 재벌 반열에 들어선 건설회사 사장과 나란히 등대섬 옆의 포인트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이다. 그 배에 같이 탄 그의 그룹 산하 사장과 임원 몇명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긴장해서 회장을 살피고 있었다. 나란히 낚시줄을 바닷속에 드리운 채 그가 말했다.
  
  “광화문에 내가 빌딩을 하나 지었어요. 천억 원을 펀딩해 줬는데 괜찮아.”
  그는 흐뭇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정치적 거물인 3김씨에 대해 끈끈한 인연을 얘기하면서 더러는 마구 난도질을 하기도 했다.
  
  “내가 그때 전국구 1번이었어요. 구속되지만 않았더라면 더 뛰어올랐을 거요.”
  
  정치자금의 일부가 노출돼서 대검 중수부에 의해 그가 구속됐던 걸 말하는 것 같았다. 한번은 그가 나와 점심을 먹자고 했었다. 그는 최고급 대형호텔 꼭대기의 호화스런 룸을 빌렸다. 아파트만한 공간의 중앙에 고급식탁이 놓여있고 거기서 웨이터의 시중을 받으면서 둘이서만 식사를 했다. 왕의 식탁 같아서 나는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는 그런 방식으로 사는 사람 같았다.
  
  그렇다고 그의 삶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사는 게 달랐다. 그는 그렇게 살 수 있었다.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가방끈이 짧다고 알려진 그는 어렸을 적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돈을 버는 대로 과감히 정치인에게 투자했던 것 같다. 3김씨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모두 그와 막역한 관계라고 했다. 은밀히 정치자금을 주는 관계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정치권을 발판으로 재벌계열로 올라서고 국회의원도 했다. 그는 바라던 정상에 거의 올라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과거로 돌아간 나의 영혼은 걱정이었다. 몇 년 후 펼쳐질 그의 암울한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고 얼마 안됐을 무렵 북한산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게 된다. 그의 주머니에는 그가 뇌물을 준 국무총리와 대통령 후보가 되는 몇 명 정치인의 이름이 적혀있다. 같이 지옥으로 가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죽기 전 간절하게 박근혜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에 절실한 구조요청을 한다. 스무 번이나 대통령에게 면담요청을 했다. 그러나 그는 냉정하게 거절당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대통령선거전에서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뒤에 나타났던 화면이 뇌리에 떠올랐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치적 보험을 들었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보험금의 지급을 거절한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베트남에 백여 층의 고층건물을 짓고나서 자금 사정이 흔들려 그의 거대한 성이 무너졌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카루스의 날개를 달고 높이 올랐던 그는 그렇게 바닥이 없는 무저갱(無底坑)으로 떨어져 내렸다.
  
  다시 이야기를 돌려 나의 영혼은 그와 나란히 낚시를 하던 서산 앞바다로 간다. 처음 바다낚시를 하는 나는 어설펐다. 미끼로 쓰는 미꾸라지가 손에서 빠져나가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배의 바닥에는 그날 나온 신문이 놓여있었다. 한 국회의원이 자기가 쓴 다이어트에 관한 책을 광고하고 있었다. 그가 능숙하게 미꾸러지를 잡아 낚시에 꿰어 나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무슨 놈의 정치인이 다이어트한 걸 정치적으로 써 먹나?”
  
  그는 자기가 죽을 걸 모르고 있다. 미래에서 돌아간 내가 그에게 알려줄 방법도 없다. 그때의 내가 그의 옆에 서 있다. 그 당시의 나는 그의 영혼에 돈과 권력만 들어있는 걸 별로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의 내가 회장인 그에게 툭하고 한 마디 하는 게 들린다.
  
  “그 정도 성공했고 우리 나이가 됐으면 이제 다른 걸 추구해도 될 때가 아니요?”
  그의 영혼이 메말라 보여서 그때 내가 한 말이었다. 순간 그가 서먹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아들 아직 대학 사학년인데 아직은 그룹 경영할 입장은 아니지.”
  그는 회장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쉬라는 말로 들은 것 같았다.
  
  그는 그후로도 기관차처럼 계속 인생의 궤도를 달렸다. 그러다 탈선하고 뒤집어졌다. 그때쯤 그가 정지를 했으면 어땠을까. 성경 속에서 그분은 돈은 일만악의 근본이라고도 했는데 권력도 마찬가지로 독성을 가지고 있다. 어둡고 추운 북한산의 밤에 그의 죽은 영혼은 어떤 후회를 했을까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