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제작 공방>
  
  나한테 도제식으로 변호사 일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로스쿨 출신 젊은 변호사가 있었다. 나는 그를 가르칠 만한 지식도 기술도 경험도 없었다. 곰곰 생각하다가 내가 처음 변호사 개업을 할 당시의 어려움을 얘기해 주기로 했다.
  
  “사무실을 얻을 돈이 없었죠. 법원 앞길을 가다 보니까 우연히 작은 구두닦이 박스가 보이는 거에요. 그걸 보면서 생각했어요. 그만한 공간이라면 변호사가 일하기 충분하다는 생각이었죠. 작은 책상 하나에 노트북만 있어도 되니까요. 허영심만 없다면 어떤 공간에선들 못하겠어요?”
  
  시내의 화려한 고층빌딩을 빌려 운영하는 대형로펌들을 봤다. 대리석으로 바른 입구부터 은근히 사람의 기를 죽이는 인테리어 장식이었다. 그곳에서 일을 하는 운동권 출신 변호사가 내뱉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비까번쩍하게 해놓고 사기려고 하는 거지 뭐”하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정곡을 찌른 말이었다. 나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겉모습만 보는 세상의 눈길이나 조롱만 감수하면 어려울 게 없었다. 남의 입술 위에서 춤 출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젊은 변호사에게 개업 당시 나의 직업관을 말해 줄 필요가 있었다.
  
  “변호사에는 두 종류가 있어요. 어떤 시험이든 수석을 놓치지 않은 수재 변호사들이 최고의 로펌에 들어가 활동을 하죠. 최고급 승용차에 골프와 헬스클럽 회원권 등 여러 가지 혜택과 엄청난 보수를 받는 생활이죠. 그중 한 친구에게 변호사가 뭐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완벽한 법률 지식으로 의뢰인을 만족시키는 서비스업이라는 거에요. 비즈니스 세계에서 윤리는 그 다음이라는 거죠. 그 말도 일리는 있더라구요. 그런데 찜찜한 게 있었어요. 그 로펌이 외국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드는 걸 본 적이 있거든요. 불법과 탈법을 행하는 도구죠. 내가 일본변호사협회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은 그런 로펌은 법비(法匪)라고 하더라구요. 도둑놈이라는 소리죠. 내게 말해준 친구가 그런 관념까지 두고 말한 것 같지는 않아요. 착한 수재였으니까.”
  
  나는 조용히 내 말을 듣는 젊은 변호사에게 나의 직업관을 말했다.
  
  “변호사라도 각자 그릇이 다르고 역할이 달라요. 나는 번쩍거리는 그런 변호사로 발탁될 능력이나 자격이 없어요. 솔직히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죠. 나는 기준을 낮게 해서 내게 맞는 작은 일을 하기로 했어요.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들어주고 내용증명 같은 법률서면을 써주는 변호사가 되면 어떨까 생각한 거죠. 내가 어려서는 대서소라고 해서 나무 책상 하나 놓고 그런 일을 해 주는 영감들이 있었죠. 서류를 써 주고 수고비로 몇푼을 받아도 땀 흘린 귀한 노동의 대가 아니겠어요? 그렇게 했죠.”
  
  혼자 생각하기는 쉽다. 그러나 섞여 사는 세상이다. 나는 젊은 변호사에게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아래로 내려가겠다고 각오했지만 내 마음의 심지가 되는 그분의 뜻은 다른 것 같았어요. 구두닦이 박스가 아니라 빌딩에 사무실을 얻었어요. 그런데 엉뚱하게 더 심한 박탈감이 엄습하더라구요. 옆 사무실의 변호사는 완전히 기업인 거에요. 브로커들을 고용해서 떼돈을 벌더라구요. 뒤쪽 사무실의 변호사는 검찰 고위직에서 바로 나온 분인데 자기가 재벌의 수사를 중단시켜주면 수십억을 받는다는 겁니다. 내가 평생을 벌어도 그분들 한 달 수입을 따라가지 못할 것 같더라구요. 엄청난 박탈감이 오죠. 기도를 했더니 간단히 해결해 주셨어요. 그들이 돈을 벌면 나는 시간을 번다. 그들이 지폐 한 장을 지갑 속에 넣을 때 나는 지혜의 책 한 페이지를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뭐 이런 거죠. 가치관이 같으면 열등감이나 박탈감이 생기지만 그게 다르면 아무렇지도 않아요. 빨강과 파랑이 색이 다른 거지 우열이 어디 있겠어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욕심 그릇을 작게 해야 마음 편하게 살 것 같았다. 그때 내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자신을 낮추어 그분에게 이르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년쯤 흘렀다.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젊은 변호사가 내게 전화를 했다.
  
  “저 바닷가 포구 근처에 작은 사무실을 냈습니다. 여기서 오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작은 사건이라도 성실히 하면서 살라고 합니다.”
  
  괜찮은 변호사의 탄생이 아닐까.